최근 당청간의 갈등이 최고조로 치닫고 있는 가운데 노무현 대통령의 임기 말 레임덕 현상도 가속화 되고 있다. 한편 노 대통령은 28일 “임기를 다 마치지 않는 첫 번째 대통령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희망한다"고 발언해 정치권의 미묘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노 대통령은 이날 오전 열린 청와대 국무회의에서 ‘전효숙 헌재소장 임명동의안’을 철회한 배경을 설명하면서 이같이 밝히고, “임기동안 직무를 원활히 수행하기 위해 이런저런 타협과 굴복이 필요하다면 해야 할 것"이라는 의사를 내비쳤다.
그는 "현재 대통령이 갖고 있는 정치적 자산은 당적과 대통령직 2가지 뿐”이라면서 “만일 당적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까지 몰리면 임기 중에 당적을 포기하는 4번째 대통령이 될 것이고 이는 아주 불행한 일”이라고 했다. 이어 “가급적 그런 일이 없도록 노력하겠지만 그 길 밖에 없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고도 했다.
한편 이를 두고 정치권의 해석이 분분한 가운데 ‘중도에 대통령직을 사퇴할 가능성을 시사 한 것 아니냐’는 극단적인 해석도 나오고 있지만, 최근 불협화음을 보여 온 여당과 수많은 386세력, 진보개혁진영 시민단체 등을 향한 ‘경고의 메시지’라는 이야기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나를 따르지 않으면 정권을 보수 측에 넘겨줄 수도 있다"는 말이다. 특히 친노직계 의원은 "대통령이 직접 '하야'라는 표현을 쓰겠다는 것을 측근들이 말렸다"고 밝혀, 파문은 점점 더 커질 전망이다.
정계개편 주도권 욕심 나타내는 盧, 거국 중립 내각 가능성 없어
*사진설명 :최근 당청간의 갈등이 최고조로 치닫고 있는 가운데 노무현 대통령의 임기 말 레임덕 현상도 가속화 되고 있다. 한편 노 대통령은 28일 “임기를 다 마치지 않는 첫 번째 대통령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희망한다"고 발언해 정치권의 미묘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노무현
이와 관련, 민주당 이상열 대변인은 이날 논평에서 “‘노 대통령은 “대통령 못해먹겠다’, ‘임기를 못 마칠 수도 있다’며 대통령직을 걸고 국민을 협박할 것이 아니라 즉각 탈당하고 거국중립내각을 구성하는 것이 노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의 정치실험이 실패로 끝난 마당에 마지막으로 취할 수 있는 선택이요, 초심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한나라당 이재오 최고위원은 이날 평화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노 대통령을 향해 ‘자진하야’를 촉구하기도 했다. 지난 2004년 탄핵역풍 이후, 한나라당 지도부로서는 처음이다. 그는 “대통령이 잘 하면 1년 금방 가지만 지금처럼 하면 지금까지 해온 4년이나 마찬가지로 어렵다"며 "정부여당의 지지도가 8%라는데 100명 중 8명만 지지한다는 것 아니냐. 이래 가지고 정권 유지가 되겠냐"며 이같이 말했다.
이 최고위원은 "대통령 본인이 담백하게 더 이상 국정을 담당할 능력이 없다, 여당도 여당으로서 더 이상 국정을 운영할 능력이 없고 국가에 불안과 국민에게 절망만 주니까 조기에 정권을 그만 두겠다, 그러면 헌법에 보장된 절차에 따라서 선거하면 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이 ‘자진하야’하고, ‘거국내각구성’을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 노 대통령은 지난달 이해찬 전 국무총리, 문재인 전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 등을 포함한 청와대 정무특보단을 구성, 사실상 향후 정계개편에서의 주도권을 행사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나타냈다. 이날 발언도 ‘물러선다’는 의미가 아닌, 노 대통령 특유의 정치적 승부수라는 것. 그런 그가 거국중립내각을 구성해 스스로 정치 입지를 극도로 좁히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정치권의 대대적인 분석이다.
제2의 탄핵정국의 시작? 한나라당 전여옥 최고위원은 27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청와대의 ‘여야정 정치협상회의’ 제의에 대해 “노 대통령이 국민으로부터 탄핵국면에 놓여 있기 때문에 ‘긴급구조요청(SOS)’을 한 것으로 해석되지만 야당분열까지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정치적 무리수로 가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그는 현 정부가 사실상 탄핵 당하고 있다고 전제한 것이다.
국민일보 한석동 논설실장은 지난달 18일 ‘성공한 대통령 되기의 조건’이라는 칼럼에서 현 상황을 진단하며 탄핵을 언급, “노 대통령 탄핵안은 기각됐어도 대통령 궐위가 불가피할 정도는 아니라고 헌재가 판단했을 뿐이지 적시했던 노 대통령의 과오들까지 무혐의 처리한 것이 아님을 반추해볼 필요는 있다”고 말했다.
한편 노 대통령의 ‘헌법 위반 발언’은 한 두 번이 아니다. 2005년 광복절 60주년 경축사에서 “국가 권력을 남용해 국민의 인권과 민주적 기본 질서를 침해한 범죄에 대해서는 민·형사상 시효의 적용을 배제하거나 조정할 수 있다”고 하여 소급입법에 의한 처벌을 시사해 위헌 시비에 휘말린 바 있다.
문화일보는 지난 13일 사설에서 노 대통령을 향해 ‘전효숙 카드’를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노 대통령이 '전 소장'을 밀어붙이면 그 헌재에 헌법소원 등 헌법재판이 제기될 상황"이라며 "위헌 인사를 강행한다면 '직무수행에 있어서 헌법과 법률을 위배한' 탄핵사유일 수 있다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더구나 "임기를 마치지 못할 수 있다"는 발언 자체가, 대통령직의 성실한 임무 수행을 선서하는 헌법 제 69조를 위반한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 다수의 국민여론은 부동산 정책 실패, 서민경제파탄 등으로 현 정권에 대한 불만이 극도로 악화돼 있으며, 남은 1년이 빨리 지나가기만 바라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상황으로까지 치닫고 있는 가운데 노 대통령이 임기를 채울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일각에서는 노 대통령이 무리하게 정계개편을 주도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내고 있는 만큼 헌법위반, 선거개입 발언 등으로 인해 탄핵정국이 다시 대두 될 수도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대통령 탄핵소추안은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 2004년 3월, 그때와는 상황이 확연히 다르다. 국민여론도 여론이지만, 탄핵에 맞서 노 대통령의 방패막이 노릇을 했던 열린우리당 창당 주역들은 창당실패를 인정하면서 노 대통령과 선긋기에 나서고 있는 형국이다. 급기야 여당 내 에서는 노 대통령과 확실히 결별하기 위해서는 대통령을 버려야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현재 139석의 열린우리당 의원 중 40명만 돌아서면, 사실 상 언제든지 탄핵 가결이 가능한 정족수가 채워진다.
최근 탈당한 한 여당인사는 “진보진영이 대권은커녕 차후 야당노릇이라도 제대로 하려면, 노대통령을 탄핵으로 심판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연말 정국은 정치권의 의도와 관계없이 급속히 제2의 탄핵정국으로 흘러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