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티조선이 국민적 선택을 받지 못한 이유작년 11월 한 강연회에서 전북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강준만 교수는 “안티조선 운동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었지만, 최종적으로 국민들이 신문선택에서 호응을 해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강 교수는 “정치인들이 표로 심판받듯이 안티조선 운동도 문제가 있는지 검토하여 기존의 방식이 아닌 다른 방식을 모색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안티조선의 깃발 아래 언론개혁 진영과 지식인들이 조선일보의 기고 및 인터뷰를 거부하고 강도 높은 절독운동까지 벌였지만, 조선일보를 보고 있는 국민들이 여전히 존재하는 만큼 안티조선은 일부 실패했고, 결과적으로 다른 방식을 모색해봐야 한다는 뜻이었다.본래 안티조선은 조선일보로 상징되는 학맥과 지연을 통한 패거리 조직에 균열을 내어 자유로운 비판과 의사소통이 살아있는 언론민주주의를 이룩하겠다는 미디어 운동으로 시작했다. 하지만 안티조선은 김대중, 노무현 정권을 만나며 급속도로 권력화 되었고, 사실상 출세와 신분상승을 위한 정치적 운동으로 변질되고 말았다. 두 명의 대통령을 만들어내면서 안티조선 세력은 국가기간 요직에 두루 임명되었고, 조선일보를 비판하면 출세한다는 공식이 자연스럽게 성립되었다. 굳이 예를 들
영화기자 A의 하루 영화기자 A는 오늘도 출근하자마자, 급히 컴퓨터를 켰다. 조금이라도 늦으면 다른 기자들보다 늦게 기사를 올린다는 조바심은 메일을 로그인하는 키보드 손놀림을 더욱 빠르게 했다. 각 영화 홍보사에서 보낸 보도자료들이 넘치는 모니터를 보며, A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침에 기사 양을 어느 정도 채워야 오후에 조금 쉴 수 있기 때문이다. A 는 날렵한 솜씨로 빠르게 보도 자료를 드래그 해서 메모장을 거친 뒤, 기사를 업데이트 했다. 유난히 아침에 부산을 떨긴 했지만, 맡은 바 소임을 다했다는 생각에 커피 한 잔을 마시는 A의 입가에는 미소가 흘렀다. 하지만, 그 기분도 잠시. 곧바로 편집국장의 호출이 떨어졌다. 아뿔싸, 그제서야 A는 기사를 급히 올리는 데만 신경 쓴 나머지, 다른 매체의 기사를 살펴보지 않았음을 알아차렸다. 수십 군데 언론사, 수백 명에게 보도자료가 뿌려지는 까닭에 먼저 기사를 올리는 기자가 1등이고, 나머지 기사는 전부 중복이기 때문이다. 편집국장에게 혼쭐이 난 A는 30분만 일찍 일어났어도, 보도자료를 먼저 기사화 할 수 있었다는 아쉬움에 입술을 깨물었다. 점심시간 때까지 4건의 기사 밖에 쓰지 못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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