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버랜드 전환사채(CB) 저가발행' 사건 항소심 16일 공판에서 2004년 대선자금 수사 당시 삼성그룹 이학수 부회장 등의 진술조서를 증거로 낸 것을 두고 23일 법조계 안팎에서 `묘수(妙手)'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물론 에버랜드 변호인단은 대선자금 수사 때 진술이 에버랜드 CB 발행과 직접 관련이 없고 진술 시기가 에버랜드 CB 발행 시점과 8년이나 차이가 난다는 점 때문에 검찰이 낸 자료는 증거 가치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호인이 검찰이 낸 증거에 쉽게 부동의하지 못할 것이라는 게 검찰 안팎의 관측이다.
검찰은 16일 공판에서 이학수 부회장과 김인주 사장의 2004년 피의자신문조서와 진술조서를 증거로 제출했다.
검찰은 이들 조서에 "`이건희 회장이 김인주 구조본(당시) 팀장에게 개인재산 관리를 맡겼고 김 팀장은 박재중(사망) 전무에게 실무를 처리토록 했다'고 진술한 부분이 들어있다"고 했다.
검찰은 "김씨 조서에는 김씨가 이 회장의 개인재산을 관리해 왔고 박 전무 등 2~3명을 담당자로 지정해 이건희 회장 자녀의 주식ㆍ예금ㆍ채권도 관리했다는 취지의 진술이 들어 있다"고 주장했다.
변호인측은 이에 "시기적으로 (에버랜드 CB 발행) 한참 후에 작성됐고 이 사건과 무관한 사건 기록 같다"면서도 부동의 결정을 하지 않고 "내용을 검토해 다음 기일에 증거 동의 여부를 포함한 답변을 하겠다"고 밝혔다.
변호인측의 고민이 예상되는 것은 검찰이 낸 증거에 동의하든, 부동의하든 어느 정도 부담을 안을 수 밖에 없다는 점 때문이다.
증거에 동의하자니 이 회장의 재산 관리 부분에 대한 간접 증거가 재판부의 에버랜드 전현직 사장에 대한 유죄 판단 근거 자료로 활용될 가능성이 있고 부동의하자니 검찰이 두 임원에 대해 증인신청을 할 것이 뻔해 자칫 이학수 부회장 등이 법정에 서는 상황이 올 수 있기 때문이다.
부동의해서 두 임원이 법정에 설 경우, 두 임원은 이미 대선자금 재판에서 증거로 채택된 검찰의 수사 내용에 대해 입장을 밝혀야 하는 곤혹스런 처지에 놓이게 돼 변호인 입장에선 달갑지 않은 카드일 수밖에 없다.
실제 검찰 관계자는 이런 상황을 예견한 듯 "변호인측이 부동의 하기 힘들 것"이라며 "부동의하면 증인 신청을 할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하지만 검찰이 낸 대선자금 수사 조서 역시 에버랜드 CB가 이재용씨 남매에게 배정된 것이 이회장의 지시에 따른 것임을 직접 증명하는 증거가 아니라는 점에서 여전히 변호인단에 반격의 여지가 있다.
또 2004년 조서에 개인재산 관리에 대한 언급이 나오긴 하나 문제의 시점인 `1996년 12월' 이학수-김인주-박재중으로 이뤄지는 재산관리 라인이 작동했다는 사실이 분명히 언급되지 않은 점도 향후 재판부의 판단에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서울=연합뉴스) eyebrow76@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