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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이 브리핑실 문을 차고 들어왔을 때"

노무현 정권의 분열 정책에 언론계 속수무책


2004년 12월, 국가보안법, 신문법, 사학법, 과거사법 등 이른바 4대 개혁입법으로 여야가 정면 충돌할 때였다. 당시 여당의 강경론을 주도하던 국회의원 세 명이 국회 브리핑룸을 문을 차듯이 밀고 들어왔다. 그러더니 훗날 장관을 지내기도 했던 한 의원은 전체 기자를 향해 “이 기사를 쓴 사람 손 한번 들어보세요”라며 비아냥거렸다. 4대 입법을 직권상정하지 않고 있던 당시 김원기 국회의장에 대해 “국회의장을 뽑는 방식을 바꿔야 한다”는 자신의 발언이 보수신문에 의해 왜곡 보도되었다는 것이다.

그 기사를 작성했던 기자가 긴급히 브리핑룸으로 들어왔다. 이미 뒤에 포진되어있던 보좌관들과 해당 기자와의 말싸움이 시작되었다. 브리핑룸은 몇몇 기자들과 보좌관들 간의 몸싸움으로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어버렸다.

신입기자들은 선배들로부터 “경찰서에 문을 차고 들어갔다”느니, “취재처 사무실을 뒤집어 엎었다느니”하는 이미 전설의 고향이 되어버린 무용담을 가끔 들을 것이다. 그러나 정치인이 기자들의 공간인 브리핑룸에 들어와 난동을 부렸다는 말은 무척이나 생소할 것이다. 사람이 개를 물어야 뉴스가 된다면, 바로 이것이야말로 뉴스꺼리였다.

그날 신문사와 인터넷매체는 해당 의원의 해명 내용을 그대로 보도했다. 브리핑을 할 당시에도 그랬고, 보도된 기사를 봐도, 대체 어떤 발언이 어떻게 왜곡되었다는 건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아무리 다시 읽어봐도 첫 보도와 해명보도에는 차이가 없었다.

최근 노무현 정권과 언론계는 기자실 통폐합 관련하여 첨예한 갈등을 빚고 있다. 이번 만큼은 진보와 보수의 이념에 관계없이 언론의 권위를 위해 합리적인 대응을 하는 듯했다. 그러나 6월 17일 전 국민 앞에서 생방송으로 진행된 노대통령과 언론인과의 대화에서 보여준, 언론단체장들의 태도는 매우 실망스러웠다.

국민들이 언론에 바라는 건 무엇일까? 아니 대체 국민들은 왜 그토록 언론을 불신하는 것일까? 정파와 이해에 관계없이 상식적인 판단에서 옳고 그름을 구분할 수 있는 일은 많다. 진영에 따라 일 더하기 일이 삼이 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나 노무현 정권 들어 국민들은 언론이 상황에 따라 일 더하기 일이 삼이라고 보도한다고 믿고 있는 듯하다. 오보도 아닌 것을 오보라 주장하며 행패를 부린 정치인이 믿었던 것도 바로 언론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아니었을까?

대통령과의 대화에 참석한 언론단체장들은 기자실 통폐합 관련 언론계가 발표한 성명서와 보도내용을 그대로 직언하지 못했다. 오히려 “우리는 언론통제란 성명서는 한번밖에 내지 않았습니다”라느니, “취지에 적극 공감한다”라며 대통령이 듣기 좋은 말로만 일관했다. 그 자리에서 대통령은 “패널들이 잘못 나왔네요” 등등의 언론 비하 발언을 마음껏 되풀이했다. 국민들 눈에 언론인들은 “뒤에서만 욕하고 권력 앞에서는 꼼짝 못하는 존재”로 비추어지지나 않았을까?

기자실 통폐합 문제는 인터넷 등 다 매체 시대에 제한된 공간의 브리핑룸을 어떻게 민주적이고 효율적으로 운영하느냐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선과 악의 종교적 명제가 아니라 효과적인 방법을 찾는 합의적 사안이란 것이다. 그러나 논쟁이 지속되면서 이상하게도 “기자들은 기자실에서 죽치고 고스톱이나 치며 담합하는 존재”라는 점만 자꾸 부각되고 있다.

언론은 노무현 정권 들어 진보와 보수 각각의 정파를 대변하며 이전투구로 싸웠다. 명분은 언론개혁이었다. 그러나 노무현 정권이 끝나갈 지금 시점 언론의 권위는 추락되었고, 국민적 신뢰도는 더 떨어졌으며, 언론시장도 크게 위축되었다. 영광이 있다면 상처 뿐인 영광이다. 그러다 급기야 대통령으로부터 “다음 정권에서 기자실이 부활 못하도록 대못질을 해버리겠다”는 말까지 들었다.

2004년 12월, 한국 언론계가 정상적이었다면, 그리고 각자의 편집방향이 다르더라도, 최소한 일 더하기 일은 이라는 상식적인 판단에 대해서만큼은 국민들로부터 그 신뢰를 인정받았더라면, 과연 정치인들이 국회 브리핑룸에서 그런 난동을 부릴 수 있었을까? 설사 그렇더라도, 언론 스스로의 이익이 아닌, 국민 세금으로 국민의 알 권리를 확보하려 만든 브리핑룸을 지키기 위해 모든 언론인들이 그 정치인들을 내쫓을 수 있지 않았을까?

당시 멍하니 상황을 지켜만 봤던 필자는 구조조정으로 길거리로 내쫓기는 동료 언론인들 소식을 들을 때마다, 노트북을 내던지고, 해당 정치인의 멱살을 잡아 끌어냈어야 했던 게 아닌가, 후회할 때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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