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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와 박태준의 철학적 삶, 이해안돼?

한국 헤리티지 재단을 설립해야

한국사의 영웅 박태준을 추모하며

포항제철의 신화 박태준 명예회장이 84 세로 영면했다. 삼가 명복을 빈다. 그에게 남겨진 재산은 없다. 딸집에 얹혀살며 마지막 수술비도 없어 아들이 부담했다. 가슴이 메인다. 전 포스코 명예회장 박태준은 한국 현대사의 5대 인물 중에 능히 들어갈 위인이다. 필자는 박정희, 정주영, 박태준, 김영삼, 김대중 등을 한국 현대사를 이끈 5대 인물로 꼽는다. 시대가 영웅을 낳는다고 했던가? 한국 현대사를 크게 산업화 시대와 민주화시대로 나눌 때, 앞의 세 인물은 산업화의 영웅들이고 나머지 두 명은 민주화의 영웅들이다. 물론 마지막 인물 김대중을 두고 영웅이 아니라 효웅이자 민족의 반역자라는 평가도 많으나 이는 후일 역사가들의 평가를 더 거쳐야 할 숙제다.

박정희와 박태준

박태준과 박정희는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흔히 박정희를 정치가, 박태준을 기업가로 부르고 있지만 필자는 이 두 위대한 인물이 살아간 ‘주체성을 갖춘 철학적 삶’을 특히 높게 평가한다. 박정희나 박태준은 정치계와 기업계에서 최고의 지위까지 올라갔지만 보통의 인간들이 가진 물욕과 사치, 그리고 나태함의 유혹을 스스로 통제하며 살아간 일종의 초월자적 삶의 행적을 보여 주었다. 또 개인주의를 넘어 이기주의가 판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잘 이해되기 힘들, 이른바 사명(Misson)에 충실한 삶을 살았음을 알 수 있다. 생(生)의 어느 시점에서 민족과 국가를 위한 사명을 스스로 인식하고 이를 위해 자신의 삶을 불태우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使命)을 띠고

초등학생 때 외웠던 국민교육헌장이 생각난다. 박정희 정부 때 발표하고 전 학생들에게 암송하도록 한 헌장이다. 한국인들에게는 영국의 마그나 카르타보다 훨씬 중요한 헌장이었고 필자는 최남선의 기미독립선언문과 함께 한국 역사상의 명문으로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민족중흥, 자주독립 더 나아가 인류 공존번영의 가치까지 함께 선언한 이 헌장을 보자.

“우리는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조상의 빛난 얼을 오늘에 되살려, 안으로 자주독립의 자세를 확립하고, 밖으로 인류 공영에 이바지할 때다. 이에, 우리의 나아갈 바를 밝혀 교육의 지표로 삼는다.” - 국민교육헌장.1968년.12월.5일 -

박정희의 사명의식은 많은 것에서 확인할 수 있지만 무엇보다 국민교육헌장에 잘 드러나 있다. 박정희의 진정한 오른팔이라고 할 수 있는 박태준의 경우는 “짧은 인생, 영원한 조국에” “제철보국(製鐵報國); 제철산업으로 국가에 보답한다”라는 표어로도, 그 유명한 "우향우 정신"에도 잘 드러난다. 포항제철의 건설의 시작과 국민교육헌장반포가 같은 해 1968년에 일어난 점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 이 두 일에는 사명(使命)이라는 얼개로 촘촘히 엮여 있다.

연평해전으로 수 십 명의 젊은이들이 죽어갈 때도 이웃 일본에서 태연히 월드컵을 즐길 줄 알았던 '특이한 우두머리'까지 가져보았던 역사가 있는 한국에서, 박정희와 박태준 같이 민족 공동체의 번영을 위한 사명감에 충일했던 리더를 가질 수 있었던 건 큰 행운이라 할 만하다. 이런 진정한 영웅들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한국의 부흥은 없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빈곤과 궁핍으로부터의 자유

미국 현대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국민이 누려야 할 4가지 절대 자유로 ‘빈곤과 궁핍으로부터의 자유(A freedom from want)’를 빼놓지 않았다. 그는 1944년 대통령 연두교서에 특히 '궁핍으로부터의 자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힘주어 말했다.

"우리는 한가지 사실을 명확히 깨닫게 됐다. 진정한 개인의 자유는 경제적 보장과 독립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빈곤한 사람은 자유인이 아니다(Necessitous men are not free men)"

박정희와 박태준은 대한민국 국민에게 이 중요한 자유를 누리게 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다. 두 영웅이 공통으로 가졌던 사명은 5000년 역사상 누구도 이루지 못한 빈곤퇴치와 경제부흥이었다. 이 두 인물은 스스로 그 사명을 자각하고 그 사명에 부끄럽지 않는 삶을 살아간 위인들이다. 세계 석학들이 한국에서 민주화가 성공한 근본 요인으로 무엇보다 경제적 성공을 먼저 들고 있는 이유 또한 루스벨트 대통령의 명언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박정희와 김일성-개발독재 아무나 하나?

진중권같은 사이비 지식인들 몇몇은 박정희의 업적을 폄훼하기 위해 “독재하면서 경제개발하는 건 매우 쉬운 일”이고 그 예로 “독재자 히틀러도 경제를 발전시켰다”고 했지만 이는 철저한 무식에서 나온 말에 불과하다. 독재권력을 가진다 해서 경제개발까지 쉽게 성공시키지 못한다는 건 북한의 경우만 봐도 잘 알 수 있다. 김일성과 김정일은 박정희와 비교조차 불가능한 무소불위한 권력을 휘둘러 왔음에도 북한 주민들에게 보장한 건 번영이 아니라 수백만에 달하는 아사자와 탈북자를 양산한 일 뿐이다. 남한과 북한이 보여주는 반세기 역사는 동일한 민족구성원일지라도 이를 이끄는 리더의 사상과 능력의 차이에 따라 얼마나 판이한 결과가 나올 수 있는지를 세계에 확연하게 보여준다.

박정희와 히틀러 비교 ; 무식한 게 자랑인가?

‘히틀러가 집권할 당시 독일은 산업 학문 법률 문화 예술 과학기술 등 모든 분야에서 이미 세계 최일류 선진국대열에 있었다’는 건 한국의 대표적 진보학자 백낙청 교수도 지적한 바 있다. 이 사실은 히틀러 평전 서문에도 자세히 나온다(히틀러 평전- 요아힘 페스트 著, 6쪽). 박정희나 히틀러 둘 다 6.25와 1차 대전으로 잿더미가 된 상태에서 출발한 것은 표면적으로 보면 동일해 보일 법도 하다. 하지만 두 나라의 상황은 너무나 달랐음을 아는 사람은 다 안다.

대한민국은 세계 전쟁에 참여할 능력조차 없었던 이름 없는 엑스트라 신세였다. 외세의 힘으로 식민지 상태를 겨우 벗어난 철저한 후진국 상태와 세계 최고 수준의 장갑차와 군함을 만들어 세계 1차대전을 일으킬 정도의 선진 기술을 갖춘 강대국이 패전한 경우를 동일시 할 수 있는 건 철저한 무식의 소치다. 알만한 지식인이면서 이런 레토릭을 쓰는 사람이라면 그는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비열한 인격의 소유자임에 틀림없다. 게다가 독일은 한국보다 지하자원도 훨씬 풍부했고, 주변에 선진국들이 몰려있어 소비시장도 무진장 널려 있었다. 한국 정부가 제철소를 세운다고 할 때, 한 야당 의원이 “제철공장을 짓는다 해도 원료도 없고 기술도 없고 쓸 곳도 없다” 고 반대한 것도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이런 반대를 무릅쓰고 제철소 건설을 추진하고 성공한 건 우리 민족에게 고기보다는 그물을 만들고 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 주어야 한다는 혜안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박정희가 현재 한국에 횡행하는 포퓰리즘의 유혹에 넘어간 정치인이었다면 이런 계획은 시도조차 안했을 것이다. 무모한 계획을 세워 실현하기로는 스티브 잡스 이상 가는 리더들이 한국사에도 있었던 것이다. 이 얼마나 자랑스러운 민족인가?

히틀러와 GNP의 허실

무엇보다 경제성장의 잣대로 이용되는 지표인 GNP에 대한 지식을 조금만 갖추어도 박정희와 히틀러의 비교는 어불성설이며 무식함과 비열함에서 비롯된 모략이자 헐뜯기임을 안다. 국민총생산을 의미하는 GNP에는 국민의 복지와 전혀 동떨어진 탱크와 살인가스 등 세계 문명을 파괴하는 대량 살상무기를 생산해도 그에 비례해서 올라간다는 건 상식이다.

다 알겠지만 히틀러가 집권 후 박차를 가한 일이 바로 전쟁무기 생산이었으며 이는 결국 독일 국민에게 게르만족의 영광을 준 게 아니라 세계사의 죄인이라는 멍에를 지게 했다. 하지만 박정희는 전쟁무기가 아니라 보릿고개라는 굶주림을 해결하는 방식의 진정한 경제개발에 성공했고 더 나아가 한국인들이 세계에 나가 더 이상 주눅들 이유가 없을 만큼 자부심을 갖게 했다. 히틀러만 없었다면 독일은 분단도 없었을 것이며 과학기술 경제뿐만 아니라 현재 왕따 신세를 못 면하고 있는 문화예술계 마저도 세계 일류 국가로 행세하고 있을 것이다. 박정희가 히틀러처럼 이웃국에 침략이나 일삼았다면 현재의 한류도 없을 것은 불문가지다. 이처럼 박정희와 히틀러가 자기 민족에게 남긴 업적은 하늘과 땅 차이임을 확인할 수 있다.

팩트에 대한 인식능력조차 못 갖춘 가짜 지식인 진중권의 히틀러 발언 이후, 이런 허위 모략을 담은 레토릭이 온 인터넷에 떠돌고 있다. 무식하고 비열한 수법을 자랑삼아 사용하는 인간이 지식인 행세를 할 수 있도록 방치하는 게 그 사회의 질을 얼마나 떨어뜨리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카네기와 박태준

박태준은 1968년에 착공하여 무려 25년의 역사를 거치며 2100만t의 생산규모를 가진 광양제철을 완공하고 현재 포스코는 연간 3700만t이라는 조강능력을 자랑하는 세계 굴지의 제철소를 설립하여 초고속 경제개발 방식의 롤 모델로 등장시켰다. 박태준 명예회장이 만든 제철소의 누적생산량과 연간 생산능력치를 산술적으로 비교하더라도 세계적으로 유명한 철강왕 카네기의 경우보다 훨씬 대단한 업적이다.

음모론과 편집증

<문명의 충돌>로 유명한 정치학자이자 문화인류학자, 그리고 문명사학자인 사무엘 헌팅턴은 부흥하는 문화권일수록 그 흥망의 원인을 내부에서 찾아 혁신과 개방을 하는 길을 걷지만, 쇠락하는 문화권일수록 외부에 시선을 돌려 ‘음모론’과 ‘편집증’에 골몰하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그는 전자의 경우로 메이지 유신으로 세계 초일류대국이 된 일본을 들고, 후자의 경우로는 종속이론과 해방신학 등으로 에너지를 소진시켜 세계사에서 점점 뒤처지고 있는 남미국가들을 예로 들고 있다.

이렇게 상반된 운명을 걷게 되는 이유로는 그 문화권의 리더들과 지식인, 그리고 성직자들의 영향력이 매우 크다고 했다. 박정희 콤플렉스라는 폐쇄회로 속을 맴돌며 팩트 조차 거부하는 사이비 지식인들과 정의사제구현단 같은 이상한 성직자들이 활개치고 있는 한국의 경우도 결코 가볍게 여길 문제가 아니다.

세계에서 9번째로 무역 1조 달러를 달성하는 국가가 자유무역을 위한 FTA를 반대하는 시위로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는 것도 불가사의한 일이다. 이 모두가 공동체를 위하는 사명감도 없이 오직 권력쟁취욕구에만 혈안이 된 정치 모리배들과 그릇된 지식인들이 활개치고 있기 때문이다.

주체성과 영웅

그릇된 신념을 가졌던 히틀러는 독일 국민들에 그야 말로 재앙이었지만 올바른 사명감을 가진 박정희, 박태준 같은 인물들은 한국 민족에겐 축복이었다. 한국의 경제부흥은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한 경우로 세계 역사에서 유래가 없는 일이기에 사무엘 헌팅턴 및 세계의 무수한 개발경제학자들이 한결같이 기적(miracle)이라 칭하며 경탄하고 있다.

이런 기적을 이끈 리더들을 우린 영웅이라 불러 마땅하며 이들의 생각을 지지하며 잘 수용할 줄 알았던 한국 국민들 또한 위대한 민족으로 부르기를 주저할 이유가 없다. 부자일수록 남의 성공에 시샘보다 축하를 잘 하듯 자신감이 강한 사람일수록 남의 업적을 칭찬하는 데 인색하지 않다. 필자가 박정희와 박태준을 대단한 영웅으로 평가하는 건 그들을 터무니없이 숭배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나온 게 아니다. 주체성을 갖춘 한 인간으로서 스스로에게 솔직해기 위함이다. 역사상의 인물인 박정희에 대한 터무니없는 악평은 거의가 지독한 무지와 박정희에 대한 심한 열등감에서 나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필자는 이를 두고 오래 전에 '박정희 콤플렉스'라고 명한 바 있다. 독재냐 민주냐 하는 정치적 판단은 누구나 주관적으로 쉽게 평가할 수 있는 문제다. 하지만 경제에 대한 판단은 과학적인 영역으로 수치나 경제지표를 잘 알고 이를 객관적으로 비교 평가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사람들이나 제대로 할 수 있는 분야다. 세계적인 석학들이나 교육 수준이 높은 계층일수록 박정희의 진면목에 대한 평가가 더 높아지는 이유다.

두 인물의 철학적 삶

절대 권력자 박정희의 검소한 생활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레닌, 스탈린, 장개석, 김일성, 카다피 등 세계 각국의 무수한 독재자들이 다 했던 일이 개인 우상화였다. 그러나 박정희는 자신의 우상화를 위한 동상 하나 세우지 않았다. 동시대 유명 정치인들이 흔쾌히 수집하는 명예박사학위도 전부 거부했다. 그래서 박정희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동상과 박사학위 없는, 그야말로 특이한 독재자였다. 박태준도 살아 생전 동상 건립을 스스로 거부했고 기업가로서의 박태준은 신앙처럼 고집했던 ‘소유와 경영의 분리’에 대한 신념에 충실한 삶을 살았다.

그는 포스코 회장 재임 중은 물론 퇴임 뒤에도 포스코 주식 보유를 철저히 거부했다. 일례로 88년 포스코 직원 1만9419명이 발행 주식의 10%를 우리사주로 배정받을 때도 그는 단 한 주도 받지 않았다. 박태준이 “철저히 사욕을 버리고 나라의 부(富)를 쌓는 데 일생을 바친 국가대표급 전문경영인”이라고 평가 받는 건 너무나 당연하며 이 또한 그의 투철한 사명의식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최근의 사회분위기로 보면 쉽게 이해하기 힘든 삶이다.

박태준과 안철수

박태준이 보통 사람 정도의 사익이라도 취하는 삶을 살았다면 그는 주식만으로도 수천억에서 수조 이상의 재산을 가진 재벌이 되고도 남았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 인간 박태준에겐 재산이 없다. 그래서 그는 안철수 현 서울대 교수처럼 세상을 떠들썩하게 할 만한 기부도 하지 못했다. 게다가 안철수는 철저히 국내시장에 안주하며 제로 섬 게임을 했지만, 박태준은 그야말로 해외 시장을 누볐다. 안철수는 세계 IT업계에 명함도 못 내밀 정도로 미미한 존재지만 박태준은 철강 분야에서 카네기까지 제친 세계 1위의 인물이다. 인간 박태준은 이미 많은 것을 기부했다. 그 방식이 너무 조용했을 뿐이다. 마지막 남은 10억의 물질적 재산까지 다 기부했을 뿐만아니라 그의 삶 전체를 우리 사회에 기부했다. 지나친 거품은 부작용을 낳는다. 우리가 한국 현대사의 영웅들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있었더라면 안철수 현상에 낀 거품도 훨씬 적었을 것이다. 철(鐵)의 사나이 박태준은 한국인의 영혼이라는 뜨거운 용광로에 자신을 온전히 녹이며 살았다. 한국도 이젠 이런 분들의 리더십과 철학을 기리고 연구해서 사회에 건강한 에너지로 전파시킬 수 있는 헤리티지 재단 같은 걸 설립해야 한다. 그래서 한국 사회에 대한 터무니 없는 저주와 자학의 주술을 극복하고 공동체의 건강성을 강화시켜야 할 때다.

글/김휘영 문화평론가

P.S) 위 칼럼은 데일리안에 게재된 본인의 <칼럼>'산업화라는 용광로에 스스로를 녹인 박태준'을 수정보완한 것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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