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워치】김휘영의 문화평론= 개봉 한 달 반 만에 한국 관객 1000만 동원에 성공한 <겨울왕국>의 열기는 전 세계 흥행에서 1조원 매출을 넘긴 지 오래다. 어디가 그 끝일 지 모를 정도다. 무엇이 이런 성과를 가능하게 했을까? 아니 정확히 말해서 한국에는 왜 이런 영화가 출품되지 못하고 있는가가 필자의 주된 관심사다. 언뜻 보기에 한국에도 이와 비슷한 영화가 있었다. 개봉시기만 비슷한 게 아니라 겉모양, 형식도 매우 비슷했다. 맹추위로 온 세상이 눈과 얼음으로 뒤덮인다는 설정을 가진 <겨울왕국>과 제목마저 비슷한 <설국열차>다. 한국 최고의 감독이라고 자타(?)가 공인하는 봉준호가 한국 영화 역사상 최고의 제작비인 무려 450억원을 들여 만든 영화다.
겨울왕국과 설국열차 - 비숫하지만 너무나 다른 영화
<겨울왕국(Frozen)>과 봉준호의 <설국열차(Snowpiecer)>는 온 세상이 흰 눈에 뒤덮인 배경은 비슷할지라도 내용은 너무 다른 영화다. 아니 차원이 다른 영화라 해야 올바른 표현이겠다. 미학적으로 전자는 미(美)를 담았지만 후자는 추(醜)를 카메라에 담았다. 전자는 '밝음'을 담았지만 후자는 '어둠'을 담았다. 하나는 사랑과 우애를 담았지만 나머지 하나는 분노와 적개심을 담았다. 전자는 포스트 모던시대의 탈이념을 표방했지만 후자는 케케묵은 이념에 찌들어 있다. 인류 철학사의 잣대로 본다면 무려 30년 이상 봉감독의 생각이 뒤쳐져 있음이다. 이것들만 다른 게 아니다. 기술적으로 전자는 변화와 혁신을 한껏 담았지만 후자는 곰팡이 냄새 풀풀 나는 고리타분함을 담았다. 색채로는 전자는 총천연색 그래픽의 향연이었지만 후자는 흑백의 암울한 그림자가 너울거려 음침한 공동묘지에나 어울릴 듯한 모노컬러가 주정조다.
한국 영화계의 기술적 환경
물론 <겨울왕국>이 가진 특성들-미(美),밝음,사랑과 우애, 포스트모던한 탈이념-이 <설국열차>가 가진 속성들- 추(醜), 어둠, 분노와 적개심, 낡은 이데올르기-보다 훨씬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글로벌한 흥행에도 유리함은 물론이다. 우리 한국인들은 현재 이런 패러다임의 차이를 제대로 반영한 두 영화가 어떤 결과를 가져오고 있는지 우리 눈 앞에서 확인하고 있는 중이다. 문제는 한국의 영상미디어 기술이 봉준호감독이 설국열차에서 내보인 특징들을 답습해야 할 정도로 낙후되어 있느냐에 있다. 전혀 아니다. 오히려 대한민국의 영상미디어 기술은 세계 최일류의 단계에 오른 지 오래다. 총천연색 칼러 영상의 경쟁력은 ‘뽀로로’의 세계적 성공에서 잘 증명되었고, 제작환경마저 세계 최일류 수준의 환경을 갖췄다. 이는 최근 헐리우드의 <어벤져스2> 제작팀이 하필이면 한국에서 영화를 제작하겠다는 취지를 밝힌 사실에서도 명백하게 드러난다. 이들은 한국은 세계 최첨단 IT기술력과 멋진 고층빌딩 숲을 가진 나라이기에 최첨단 기술영화를 찍기에 참 좋은 환경을 갖췄다고 했다. 정확한 말이다. 우리는 스파이더맨이나 슈퍼맨이 초가집이나 기와집 위를 날아다니는 건 웃음이 터져나올 만큼 황당한 설정이라는 걸 안다. 인구 천만의 도시 서울 강남에는 타워 팰리스, 글라스 타워, 테헤란로의 빌딩 숲 등 이들의 활동과 너무나 잘 어울리는 배경들이 즐비하다. 우리 영화인들은 매일 보고 다니면서도 왜 이를 모르고 있는 것일까? 혹시 일부러 모른 척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반성
헐리우드에서도 인정하는 기술력과 또 탐내는 멋진 환경을 갖추었음에도 왜 한국에는 늘상 봉준호 류의 고리타분한 영화들이, 그것도 대규모 자본을 바탕으로 하여 출품되어 나오는 걸까? 이건 환경 탓이 아니다. 명백히 사람들 즉 한국 영화인들 탓이다. 단도입적으로 이들의 생각이 너무 고리타분하고 낡아빠졌기 때문이다. 이런 한국 영화판에 7년 전 한 이단아가 나타났었다. IT 기술에 기반한 혁신적인 영화 <디워>를 출품한 심형래 감독이었다. 그런데 이때 한국 영화의 역사를 주도해야할 입장에 서 있던 봉감독마저도 이를 격려하기는 커녕 비아냥으로 대했음을 우리는 기억한다.
봉준호 천재론?
봉준호는 국내 영화계에서는 앞으로도 그나마 활약하겠지만 세계시장을 목표로 한다면 오히려 심형래 같은 감독들 휘하에 들어가 조연출이나 편집 정도를 맡아 자신이 가진 섬세한 기술을 발휘해야 할 정도의 수준에 있는 사람이라 보아야 정확하다. 이 차이는 심감독과 봉감독간의 시각과 패러다임의 간격에서 온다. 미시적인 관점에서는 봉준호가 심형래보다 많은 장점을 가졌을지 모르지만 정작 훨씬 더 중요한 거시적인 관점에서는 봉준호가 심형래의 그것에 한참을 못 미친다는 걸 누구나 확인하지 않을 수 없다.
안현수가 파벌싸움의 희생양이었다면 심형래는 충무로 파벌 뿐 아니라 찌들어진 정치색의 희생양이었다. 영화인들 모두가 합심하여 정치색에 대항하여 심형래 감독의 도전을 옹호했어야만 했는데도 오히려 영화인들이 심형래감독을 죽이려는 데 앞장섰다. 이에는 영화인들, 공영방송을 위시한 미디어, 영화잡지 등 무두가 한통속이었다. 하긴 한국 영화감독들 자체가 이미 정치색에 찌들어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기에 이는 어찌 보면 당연히 예상되는 일이었다.
제임스 카메룬과 디즈니의 혁신
영상미디어 산업이 최첨단 산업임에도 한국의 영화인들은 대부분 시대에 매우 뒤쳐진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것이야말로 한국 영화계가 진정으로 고민해야 할 문제다. 한국의 거의 전 산업이 기술혁신을 거듭하면서 세계 1류의 대열에 합류했는데 영화계만은 혁신은 남의 일이고 여전히 '먼 산 불구경하듯' 한다. <타이타닉>이란 지극히 클래식한 구성의 영화로 세계 최고의 흥행을 이루어냈던 제임스 카메룬이 자신의 위치에 안주하지 않고 또 다시 자신의 흥행기록을 경신한 것 또한 기술혁신에 기반한 3D 영화 <아바타>였다.
2014년 아카데미상을 휩쓴 <그레비티>또한 기술혁신의 산물이다. 2008년, 멕시코 출신의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계획을 들은 데이빗 핀처 감독은 "지금은 불가능해, 5년 후면 모를까"라고 말했는데 정확히 5년 후인 2013년에 완성되었다. 기술이 발명될 때까지 쿠아론은 기다려야 했고, 심지어 자기 자신이 직접 만들어낸 기술도 있었다. 제작과정 3D 기술자문을 지원한 제임스 카메론 역시 프리 프로덕션 단계에서 "시대를 뛰어넘는 미친 짓"이라고 혀를 내둘렀을 정도라고 한다. 우리는 쿠아론 감독이 미국 본토 출신이 아니라 한국보다 훨씬 후진국인 멕시코 출신이라는 데 방점을 둘 필요가 있다. 쿠아론 감독 이외에도 비헐리우드 출신임에도 세계 영상시장에서 혁혁한 성과를 거둔 감독들은 많다. <반지의 제왕> 감독은 뉴질랜드인이며, 심지어 <미션 임파셔블>의 오우삼 감독, 아카데미상에 빛나는 <와호장룡>의 이안 감독은 홍콩, 중국 출신이다. 또 나이트 샤말란 감독은 인도 출신이고 아시아 시장을 주름잡아온 서극 감독은 베트남인이다. 이들 국가 중에 대한민국보다 선진국은 하나도 없고 한국보다 영화 인프라를 잘 갖춘 곳도 없다.
세계 8대 부국으로 손꼽히고 반만년의 찬란한 문화유산을 가진 한국에서는 왜 이런 감독이 나오지 않고 있는가를 우리 영화계는 반성해야 하지 않을까? 환경 탓은 이제 너무나 구차한 변명이라는 걸 자인해야 할 것이다. 영화가 아닌 다른 분야, 스포츠 뿐만 아니라 심지어 영화보다 더 어려운 한류 드라마와 K-pop 등에서는 이미 세계적인 한국인들이 넘쳐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한국에 세계적인 흥행감독이 없는 건 어느 모로 보아도 한국 영화인들 자체의 소양과 능력문제이지 결코 환경 탓이라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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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천재론은 천재들에 대한 모독
인류 역사를 통해 드러난 천재들은 기본적으로 자기 확신이 매우 강한 존재들이다. 이들의 자기확신은 가히 오만하다고 불릴 정도여서 많은 오해와 박해를 받기도 하는 데, 갈릴레이가 종교재판정을 나오면서 한 말 ‘그래도 지구는 돈다‘는 이를 잘 시사한다. 설사 스티브 잡스처럼 괴팍한 성격을 가졌을 지라도 이들은 한 시대의 앞에서 모진 비바람을 맞으면서도 시대를 이끈다. 즉 천재는 언제나 시대의 앞(frontier)에 있지 시대의 후미진 뒷골목에 있지 않다.
평론가로서의 필자가 봉준호의 <설국열차>를 관람한 후, 좀 호되게 비판해 주어야겠다고 판단한 건 그의 작품 <설국열차>가 형편없었음에만 있는 게 아니다. 극 중 대한민국 최고 배우인 송강호가 담배광고를 하는 참상을 목도하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저게 뭐냐?" 일순간 필자는 귀를 의심했다. 분명 그냥 담배도 아닌 <말보로>였다. 함께 필자의 귓창으로 추괴하게 후벼 들어온 멘트.
“지구상에 마지막 남은 담배, 말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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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의 자격, 아니 한국 최고 감독의 자격
무엇이 이런 PPL 광고격인 설정을 가능하게 했을까 ? 리얼리티? 아니다. 이것 말고도 충분히 가능했고 이 짧은 광고 부분이 없었어도 극의 흐름은 전혀 이상 없었다는 건 본 사람은 다 안다. 그럼 무엇인가? 많은 사람들은 돈 문제였을 것으로 추정한다. 광고업계의 한 친구에게 물어보니 저 정도의 광고라면 광고비로 적어도 400억 정도는 받아야 정상이라고 한다. 그 근거로 요즘 각종 상조회에서 영화티켓을 공짜로 주면서 광고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한다. 티켓비용을 5000원으로 저렴하게 잡고 관객 수를 800만명만 잡아도 400억은 기본아니냐는 견적서였다. 더구나 광고모델이 대한민국의 최고 배우인 송강호이니만큼 400억도 너무나 부족한 계산서라고 한다. 저 상태로 세계시장에 나간다면 적어도 3~4천억원은 받아야 할 광고라고 한다. 그런데 봉감독은 최소 400억원의 돈이라도 받았을까? 협상에 약한 한국인들의 속성상 아마 불가능했을 것이다. 필자 말은 돈이라도 제대로 받았다면 덜 황당했으리라는 점이다. 하여간 봉준호 감독과 제작사가 광고비를 전혀 받지 않으면서도 이런 설정을 했다면 그 독특하고 고매한(?) 철학에 절로 존경심(?)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만일 돈이 목적이었다면 이는 봉준호감독이 450억원이라는 대한민국 역사상 최고의 자본을 들인 영화에서 흑자를 낼 정도로 흥행에 자신이 없었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어느 쪽이든 간에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무엇보다 형편없는 수준에 있는 봉준호 감독의 작가로서의 자존심이 이 일을 가능하게 했을 것으로 필자는 본다.
과연 이 광고효과는 엄청났다. 필자가 <설국열차, 말보로>를 검색어로 쳐 보니 무려 856개나 나온다. 20개 정도 캡쳐했지만 그 중 몇 개만 올린다. 과연 봉준호는 이런 결과가 나올 지 몰랐단 말인가? 사실 이 장면은 봉준호가 한국 관객을 제대로 무시한 대목임에 틀림없다. 봉준호가 그렇게 대단한 인물인가? 필자가 보기엔 봉준호 감독은 영화흥행을 위해서 광고홍보 기법으로 지나치게 과대광고를 해 온 결과, 거품이 잔뜩 낀 사람임에 불과하다. 한국의 많은 감독들 중 평범하기 그지 없는 감독들 중 한 사람에 불과하다. 그리고 어떻게 영화감독이 한국 최고 배우를 한같 담배광고의 소모품으로 사용할 정도로 정신이 외출할 수 있다는 말인가?
최근 조사결과에 의하면 영화 속 유명인이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보면 시청자도 담배를 피우고 싶은 욕구가 무려 39배나 증가한다고 한다. 봉준호는 제발 한국 최고 감독이라는 브랜드를 외국에 내놓지 말았으면 한다. 외국인들이 행여라도 이 브랜드 홍보를 곧이 곧대로 믿는다면 한국 최고 감독이라는 사람이 기껏 미 제국주의 국가의, 그것도 인류의 건강을 해치는 대가로 돈을 버는 데 혈안이 된 상품의 대표격인 담배 광고를 자신의 작품에 스스럼없이 하는 자존심도 없는 인간이라고 받아들이게 될 개연성이 높다. 이는 대한민국 영화계 전체에 대한 모독이며, 크게 보면 이런 일을 감행해도 무사하도록 방치하고 있는 대한민국 국민 전체의 시민의식과 문화의식 수준에 대한 모독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는 일이겠기에 말이다.
왜 이런 반응이 많이 나오는지는 다음의 뉴스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물론 말보로는 대한민국의 930만 관객에게 더할 나위없는 광고효과를 누렸음은 틀림없다. 보통 ppl 광고처럼 담배갑(case) 등의 이미지가 아니라 대한민국 최고 배우의 입에서 직접 말보로 라는 브랜드 명이 그것도 '지구상에 마지막 남은 담배'라는 기막힌 멘트와 함게 나오게 했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있으랴? 그런데 휘뿌연 담배연기 속으로 사라져 간 것은 무엇이었을까?
'자존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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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17세 관람가와 한국의 15세 관람가- 혹시 부패 커넥션의 결과물?
필자는 <설국열차>가 최근 미국에서 최악의 등급이라 할 R등급(17세 이상 관람가)을 받을 건 미리 예상했다. 당연한 결과다. 그리고 이것이야 말로 헐리우드의 힘이고 헐리우드 영화가 세계시장을 지배할 수 있는 근간으로 작용하는 건전한 힘이기도 하다. 이는 한류 드라마가 범아시아권을 지배할 수 있는 근간이 과거 군사정부 때의 엄격한 규제 때문에 작가들이 선정성이나 폭력성보다는 작품성에 매달릴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이 있는 이유와도 상통한다. 알 사람은 알겠지만 헐리우드의 이런 엄격한 등급 결정은 자본이 어떤 종류의 영화에 투자되어져야 하는지에 대한 길잡이 역할을 하고 있다. 이를 알면 한국에서 <설국열차> 에 무려 450억원이나 투자한 일은 자원의 비효율적 배분이었던 것이다. 적어도 이 정도의 자본을 투자받았다면 감독이 좋은 등급을 받을 수 있도록 영화를 구성해야 함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고 이는 감독의 기본적인 능력에 속하는 사항이기도 하다. 필자는 <설국열차>를 세계에서 최고의 풍경을 자랑하는 도시 프라하에서 세트를 마련하고 촬영했으면서도 프라하의 그 수려한 경관을 한 컷도 영화 속에 살려내지 못한 것도 도무지 이해가 안된다. 필자는 무역 사업차 프라하를 직접 가 보았기에 프라하의 그 아름다운 풍경을 영원히 잊지 못한다. 카를교 위에서 찍었던 사진은 가장 아끼는 사진 중 하나다. 이는 봉감독에게 이 프라하의 수려한 경관과 스토리를 잘 결부시켜 엮어낼 만한 미적 상상력이 부족한 것이 원인이었으리라 본다.
더군다나 한국의 15세 관람가 판정은 아무리 좋은 의도를 갖고 이해하려 해도 도저히 이해가 안된다. 마약청정국이라는 걸 자랑으로 내세우는 대한민국에서 청소년 아니 인간의 건강에 해로운 담배광고가 공공연히 행해지고 심지어 향정신성 약물까지 공공연히 나오는 영화가 15세 이상 관람가라니? 도대체 이 당시 한국의 영등위는 어떤 인물들로 구성되어 있었기에 이렇게 황당한 판정을 했단 말인가? 이건 정말 국회에서 청문회라도 열어 철저히 진상파악을 해서 응당의 처벌을 받게 하여야 한다. 그래서 다시는 이렇게 어처구니 없는 일이 반복되어서는 안될 일이다. 이게 만일 모종의 자본이 개입된 부패커넥션의 결과이든 아니든 간에 이것이야말로 한국 영화계가 헐리우드에 비교할 수 없이 후진적인 구조를 갖고 있다는 증명서다. 많은 한국 사람들은 <설국열차>가 봉준호 감독의 작품이 아니었다면 이런 등급을 받는 것이 불가능했을 것을 잘 알고 있다. 또한 막강한 자본으로 한국 영화계를 좌지우지하는 권력을 쥐고 있는 CJ가 뒤에 있지 않았어도 거의 불가능했을 것으로 판단한다. 참으로 부끄러운 한국 영화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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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의 배신
이 말보로 사건은 대한민국 최고의 감독이라는 전혀 어울리지 않은 감투를 뒤집어 쓴 봉준호 감독이 이에 조금이라도 걸맞게 처신하지 못하고 오히려 이를 이용해 한국 관객들을 철저히 배신한 행위라 할 수 있다. 물론 봉준호 감독의 격조높은 자존심이 그것을 가능하게 했으리라 본다. 놀라운 점은 이런 영화가 개봉됐음에도 어느 한 언론 미디어도 이 부분에 대해 제대로 비판하는 기사를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아무리 봉준호와 CJ가 한국 영화를 좌지우지 하는 갑의 입장에 있는 사람일지라도 이건 좀 심하지 않은가?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말이 실감난다. 오히려 모 TV에서는 봉준호가 천재니 어떻니 하는 프로를 방영한다. 물론 영화홍보 목적이라는 건 다 안다. 필자는 인류 역사에서 능력을 인정못받는 천재들을 본 적은 있어도 자존심 없는 천재는 본 적이 없다. 그리고 스스로 자존심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그렇게 대우해 주어야 세상이 정상적으로 작동한다. 이들에게 오히려 지지와 찬사를 보낼 정도로 노예근성을 가진 민족의 문화는 융성은 커녕 점점 쇄락하게 될 것은 불문가지다.
이런 우스꽝스러운 일을 목도하면서 필자의 귓전에는 국민 배우 송강호가 무명 시절 <넘버 3> 에서 손가락을 치켜들고 한 말이 유독 강하게 울려 온다.
"이건 배신이야, 배신!" (1부 끝)
/ 김휘영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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