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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의 저력을 보여준 남북협상

북한의 유감표명이 담긴 합의문 우리의 굴욕이 아닌 북한의 굴욕이다


[김승근 칼럼] 북한의 목함지뢰와 포격도발로 조성된 군사적 긴장국면이 남북고위급 접촉이 25일 새벽에 극적으로 타결되면서 국민들은 한시름 놓게 되었다. 북한의 무력 도발에 분노한 국민들은 전쟁이 나면 용감하게 나가 싸우겠다는 각오가 대단했지만 그러나 전면전이든 국지전이든 전쟁이란 많은 피해를 낳기 때문에 불안감이 없다고 할 수 없었다. 북한이 예전과 달리 판을 깨지 않고 3박4일간 마라톤회담을 했다는 것은 그만큼 절박하다는 것이고 우리 정부도 끈질기게 협상에 임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한마디로 성공적인 협상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런데 일부 사람들은 이번 결과를 놓고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우리와 북한이 합의한 내용을 보면 유감표명만 있을 뿐 사과가 없다는 것이다. 재발방지 약속도 없으니 하나마나한 합의문이 아니냐는 거다. 더 나가서 굴욕적이라는 말까지 한다. 심정적으로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지뢰를 깔고 남한 군인을 죽이려던 것이 우리이고, 그 점에 사과하며 앞으로 재발방지를 약속하겠다” 이런 내용을 담았으면 오죽 좋았으랴!

하지만 상대가 누군가. 세계의 둘도 없는 깡패국가소리 듣는 북한이 아닌가! 그런 북한에게 사과하고 재발방지 약속하라고 당당하게 큰소리치면 얼마나 좋겠냐만, 속은 시원할지 몰라도 아마 북이 진즉에 판을 깨고 나가서, 전쟁하자고 더 크게 위협했을 것이다. 북의 뻔한 행동이 예상되는데 그 정도로 밖에 협상 못했냐고 질책하는 건 현실적이지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

북한의 유감표명은 지뢰도발 만방에 고백한 것으로 북한 김정은에게 큰 치욕

박근혜 대통령은 이번 협상결과에 대해 “정부가 북한의 도발에 단호히 대응한다는 원칙을 일관되게 지켜나가면서 다른 한편으로 대화의 문을 열고 문제의 해결을 위해 노력한 결과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듯, 나 역시 이번 회담 결과는 우리 정부가 참을성 있게 끌고 나간 결과이고, 지금 이 상황에서 우리가 거둘 수 있었던 최선의 협상결과가 아닌가 생각한다.

공동합의문에는 “북측은 최근 군사분계선 비무장지대 남측지역에서 발생한 지뢰 폭발로 남측군인들이 부상을 당한 것에 대해 유감을 표명했다.”고 되어 있다. 북한은 자기네들이 저지른 명백한 사건에도 오리발을 내밀기 일쑤였다. 천안함 폭침은 말할 것도 없고 연평도 도발도 사과는커녕 무조건 우리에게 덮어씌우고 책임을 몰아가는 상식이 없는 진단이다. 북한이란 집단이 어떤 집단인지 안다면, 남북협상에서 유감 표명을 끌어낸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안다.

또 지뢰도발 사건은 남측의 자작극이라고 북한주민들에게 중상모략하던 북한 아닌가. 그런 북한이 유감표명을 했고, 공식적으로 밝혔으니 이것 자체만으로도 북한주민과 우리 국민 세계에 자신들이 지뢰도발 사건을 일으킨 주범이라는 사실을 만방에 밝힌 것이나 다름이 없는 것이다. 합의문은 유감표명만 되어 있으나 그 자체로도 북한과 김정은이에게는 큰 치욕이고 우리에게도 큰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유감이냐 사과냐를 가지고 우리끼리 논쟁하거나 싸울 필요는 없다고 본다.

재발방지 문구는 없어도 재발방지책은 담았다

재발방지 문제도 마찬가지로 본다. 합의문에는 재발방지라는 문구는 없다. 단지 “남측은 비정상적인 사태가 발생하지 않는 한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모든 확성기 방송을 8월25일 12시부터 중단하기로 했다.”라고 되어 있다. 하지만 “비정상적인 사태가 발생하지 않는 한”에 모든 것이 담겨져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북한이 다시 도발하는 것은 비정상적인 사태이고, 다시 도발한다면 대북방송은 언제든 다시 재개할 수 있다는 뜻도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뻔뻔하게 큰소리치던 북한이 결국 대북방송에 무릎을 꿇었다는 점을 볼 때, 북의 가장 약한 아킬레스건이 바로 대북방송이란 점도 알았으니, 우리 정부는 이 약점을 쥐고 앞으로도 북한이 어리석은 도발을 해오고 위협할 때 써먹을 수 있는 더 큰 무기도 확보한 셈이니 회담문에 ‘재발방지’ 문구가 안 들어가 있다고 회담이 굴욕적이라거나 우리가 또 양보한 게 아니냐고 생각할 이유가 없다.

중요한 것은 합의문을 북한이 잘 지킬 수 있도록 앞으로가 더 중요하다는 점이다. 합의문 5항은 “남과 북은 올해 추석을 계기로 이산가족 상봉을 진행하고, 앞으로 계속 하기로 했으며, 이를 위한 적십자실무접촉을 9월 초 가지기로 했다.”이고 6항은 “남과 북은 다양한 분야에서의 민간교류를 활성화하기로 했다.”인데, 이게 ‘사과냐 유감이냐’의 문제나 ‘재발방지’ 문구가 빠져 있다는 것보다 더 훨씬 중요하다.

남북협상은 현실적으로 최상의 결과, 앞으로가 더 중요하다

북한은 추석 때 이산가족 상봉을 진행하면서 또 어떤 요구를 해올지 모른다. 또 억지를 쓰고 또 무력위협이 있을 가능성도 있다. 이때에 우리 정부는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신중히 고민해야 한다. 적십자실무접촉도 마찬가지다. 돈이 궁한 북한이 이런 저런 이유로 뜯어먹겠다고 요구를 해올 수 있는데 우리가 들어줄 수 있는 것과 들어줄 수 없는 것들을 고려해서 북한의 요구대로 끌려가지 않는게 중요하다.

사실 6항이 가장 심각한 내용이라고 보는데, 남과 북이 다양한 분야에서 민간교류를 활성화하기로 했다는 점에서 5.24조치를 어떻게 할 것인지 우려스럽다는 거다. 우리 정부가 민간교류에만 매달려 국민의 정서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아서는 곤란하다. 그리고 5.24조치 역시 박 대통령이 밝혔듯, 원칙을 일관되게 지켜나가면서 성과를 내도록 해야지 성과물에 집착에 실수를 해서는 곤란하다. 이번 회담의 진짜 결과는 내 생각에 6항의 합의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지에 달렸다고 과언이 아니라고 본다.

이번 남북회담은 표현면에서 아쉬운 면은 있어도 실패한 협상이라거나 굴욕적이라거나 한 협상은 아니다. 우리 정부가 인내심있게 현실적으로 가능한 최상의 결과를 냈다고 본다. 다만 앞으로가 더 중요하다. 많은 국민이 다른 분야는 몰라도 외교나 남북관계에서만큼은 잘한다고 인정한 박근혜 대통령이니만큼, 현명하게 일관성 있는 원칙을 갖고 퍼주기가 아닌, 북한의 궁극적인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는 교류와 협력이 이루어지길 바란다.

미디어그룹 ‘내일’ 공동대표, 뉴스파인더 대표 김승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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