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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년 헌법 무너지고 유신헌법 부활"

후임자 조항, 유신헌법에서 따왔다 고백한 노무현 정권

72년 헌법이란 바로 악명높은 유신헌법

"잔여임기 기준을 2년으로 할 것인가 하는 논의도 있었던 게 사실이지만 논의끝에 1년으로 정했고, 72년 헌법에도 같은 규정이 있었다. 임기 1년 미만의 대통령이 나올 수도 있지만 그건 어쩔 수 없다"

정부 헌법개정추진지원단의 임상규 단장의 연합뉴스 기자와의 일문일답 내용이다. 87년 직선제 헌법 개헌 당시 제1야당 대표 간사를 맡았던 박찬종 전 의원이 “대체 잔여임기가 1년 미만인 경우 후임자 선출없이 총리 대행체제로 간다는 기준이 뭐냐. 왜 2년은 안 되냐”는 의혹에 대한 근거를 제시한 셈이다. 바로 72년도 헌법의 후임자 선거 조항에서 차용했단 말이다.

임 담장은 왜 하필이면 72년도 헌법이라는 생소한 이름을 사용했을까? 72년도 헌법이란 최근 노무현 정권에서 이에 입각한 모든 판결은 무효라며 맹비난하던 바로 그 악명높은 유신헌법이다. 아무래도 유신헌법에서 후임자 조항을 차용했다는 말을 하기가 쑥스러워서 그런 것일까?

72년도 헌법, 즉 널리 알려진 유신헌법은 1972년 12월 27일에 제정되었다. 유신헌법의 대통령 관련 제 4장, 제 47조에는 “대통령의 임기는 6년으로 한다”고 나온다. 문제가 되는 후임자 선거 규정은 제 45조 2항이다.

“대통령이 궐위된 때에는 통일주체국민회의는 3월이내에 후임자를 선거한다. 다만 재임기간이 1년미만인 때에는 후임자를 선거하지 아니한다”

또한 제 48조에서는 권한 대행에 관한 규정을 설명한다.

“대통령이 궐위되거나 사고로 인하여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때에는 국무총리, 법률에 정한 국무위원의 순위로 그 권한을 대행한다”

이번에 노대통령이 공개한 개헌 시안 제 68조의 “대통령이 궐위된 때에 전임 대통령 임기의 남은 기간이 1년 미만인 경우에는 후임자를 선거하지 아니한다”와 “이를 국무총리가 대행한다”와 사실 상 같은 내용이다.

실패한 대통령의 정권 재창출 및 국정마비 초래 우려

이 조항에 대하여 박찬종 전 의원과 민주당의 심재권 전 의원은 87년 직선제 정신을 훼손한 위헌이라고 비판하였다. 공직의 경우 ‘대행’이라는 개념은 후임자 선거를 준비하는데 그쳐야하고, 그 때문에 현행 헌법의 대통령 대행 체제에서 60일 이내에 재선거를 치르도록 규정해놓았다는 것이다. 반면 유신헌법과 노대통령의 개헌안은 국민의 선택을 받지 않고, 전임자가 찍어놓은 국무총리가 무려 1년 간 선거준비가 아닌 국가 통치를 하도록 해놓은 것이다. 말이 대행이지, 이것은 사실 상 국민으로부터 선출되지 않은 자가 대통령직을 수행하는 것이다.

이러한 조항 때문에 두 가지 문제가 심각하게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 첫째는 임기 중 실정으로 국민의 지지를 잃어버린 대통령이 자의적으로 총리를 선임한 뒤, 자진 사임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국민들은 차기 선거에서 정권을 심판할 기회를 놓치게 된다. 현재 국민으로부터 버림받은 노무현 대통령이 기회만 있으면 대통령직을 내놓겠다며 으름장을 놓는 상황을 보면 이는 단지 가정이 아니다. 만약 개헌안이 지금 적용되고 있다면 노무현 대통령은 후임 총리를 지명한 뒤 마음놓고 하야한 뒤, 총리가 대통령직을 수행하여, 대선까지 갈 수 있다. 국민들이 심판할 노무현 정권은 선거 당시 현실 정치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신임 대통령으로서 하니문 기간을 누린 그는 야당의 후보들보다 두발짝 앞서서 대선을 치르게 된다. 이는 2004년 탄핵 당시 대통령 대행을 하며 전 국민의 인기를 모았던 고건 전 총리가 좋은 사례가 될 수 있다. 만약 2004년 12월에 대선이 있었다면, 확률상 고건 총리의 당선 가능성은 앞도적으로 높았을 것이다.

두 번째의 경우는 더욱 심각하다. 국민적 동의를 받지 못한 국무총리가 1년 간 대통령 대행직을 수행하면서, 국정이 크게 흔들릴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청와대는 후임 총리는 대통령이 아닌 엄연히 대통령 대행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지금이라면 한미FTA, 북핵 등 국가 운명을 좌우할 사안에 대해 대행자가 소신껏 이를 처리할 수 있겠냐는 말이다. 극단적인 경우 얼마든지 헌정중단, 국정마비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놀랍게도 바로 이러한 사례가 노대통령이 차용한 유신헌법 당시 벌어졌다.

27년 전, 노대통령 개헌안의 위험성을 입증한 최규하 전 대통령

1979년 10월 26일에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한 뒤, 당시 최규하 국무총리는 대통령 권한 대행직을 승계했다. 그뒤 12월 6일 유신헌법에 따라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즉 대행자가 다른 경쟁자 없이 손쉽게 대통령직에 오른 것이다. 그러나 다음해 8월 16일에 당시 실 권력자인 전두환에 의해 힘없이 물러나게 되었다.

물론 최규하 전 대통령의 경우 잔여임기가 1년 이상 남아, 대행직을 거쳐 정식 대통령에 오르기는 했다. 그러나 당시 유신헌법의 선거규정 상, 통일주체국민회의라는 간선제 방식으로 당선되었기에, 어차피 국민의 선택이 없었다는 점에서는 대행이나 별반 차이가 없었다. 그때까지 국민들에게는 유신헌법 이전의 대통령 직선제에 대한 의식이 살아있었기에 최규하는 이름만 대통령일 뿐, 국민의 관심은 전두환, 김대중, 김영삼 등 당대의 실력자들에게 쏠려있었다.

국민의 지지가 전혀 없는 국무총리가 대행직에 1년 간 머물러있다고 상정해보라. 한미FTA, 남북정상회담, 사학법 등등 수많은 갈등 사안을 놓고 권력과 권력이 충돌하는 상황에서 제대로 된 국정운영을 수행할 수 있겠는가? 최규하 전 대통령과 같이 극단적인 경우가 아니더라도, 정상적인 헌정은 불가능할 수 있다. 최규하 전 대통령은 대행자가 손쉽게 대통령에 오르고, 직선제를 통하지 않은 허수아비 대통령으로서 헌정을 유지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유신헌법과 현재의 노대통령 개헌안의 심각한 문제점을 모두 보여준 셈이다.

이러한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기 위해 민주화의 열망을 담은 87년 대통령 직선제 헌법이 마련되었고, 어떤 일이 있든 대통령 궐위 시 대행 체제를 60일 미만으로 막아놓았다. 그리고 이 헌법 체제 하에서 더 이상의 헌정 중단은 없었다.

정략적 목적으로 정.부통령제 제외시킨 것이 화근

혹자는 설마 2007년 이후에 그런 드라마틱한 일이 벌어지겠냐며 고개를 저을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일개 법률이 아닌 헌법이다. 헌법은 1%의 가능성조차도 미연에 방지해야 하는 국가운영의 기본 정신이자 틀이다. 정.부통령제만 도입하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음에도, 정략적 목적으로 이를 빼놓아, 국정의 위험을 초래하는 이 개헌안을 왜 노대통령은 목숨을 걸고 통과시키려 하냐는 말이다.

미국의 경우 정부통령제 하에서는 대통령 궐위 시, 부통령이 승계하고, 공석이 된 부통령은 대통령이 추천하여 하원에서 인준을 받는다. 이러한 규정 때문에 제럴드포드는 단 한번의 직접 선거 없이, 부통령을 거쳐 대통령이 된 유일한 사례가 되고 있다. 이 때 미국에서는 큰 논란이 일기도 했었다. 그러나 지금의 노대통령의 개헌안은 정.부통령제라는 안전장치가 있는 미국과 비교하면 100배는 위험하다. 국정을 실패한 뒤, 조금만 머리를 쓰면 얼마든지 잔여임기 조항을 악용하여 차기정권을 창출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가능성은 노대통령이 매일 같이 보여주고 있다. 대체 조기 하야한다고 얼마나 국민들을 협박했던가.

노대통령이 의도적으로 유신헌법을 따른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이미 한창 경선 체제로 돌입하는 한나라당의 상황 상, 결코 정부통령제를 받을 수 없을 게 뻔하니, 개헌의 명분을 쥐기 위해 정략적 목적으로 정.부통령제를 제외시키면서 일을 크게 키우고 말았다. 그 스스로 고시생 시절 유신헌법을 공부한 게 부끄럽다고 고백했지만, 그는 자신도 모르게 그 시절 배운 유신헌법을 35년만에 불러오고 말았다.

이러한 제 2의 유신헌법을 노대통령을 비롯한 민주화세력이 지지하고 보수세력이 거부하는 역사적 아이러니 역시 그가 초래했으니 웃어야 할지 울어야할지 모르는 일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정략적 목적의 개헌안은 87년의 민주화와 직선제 정신을 파괴하고 있고, 이는 박찬종 전 의원과 심재권 전 의원의 분석대로 위헌 소지가 너무 크다. 과연 이래도 “대선 후보들이 차기에 개헌약속을 하지 않으면 발의를 밀어붙겠다”는 그 거룩한 뜻을 접지 않을 셈인가?

대체 무엇을 위해서? 민주화? 과거사 정리? 민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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