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YP 박진영이 부랴부랴 2PM 박재범 사태에 대한 입장을 남겼다. 주로 정치 매체를 운영하고 국회 출입 기자 생활을 해봤던 경험 탓에, 정치인의 언어와 논객의 언어, 그리고 학자의 언어를 체감적으로 구분하게 된다. 이번 박진영의 글은 대중을 자유자재로 현혹시킬 수 있는 최소 4선 국회의원 수준의 정치적, 정략적 언어로 얼룩져있다는 것이 나의 판단이다. 온갖 현란한 정치적 언어기술을 걷어내고 분석하면, 박진영이 표명한 입장은 다음과 같다.
박재범이 잘못한 게 없다면 왜 중도하차 시키는가
1. 박재범이 쓴 마이스페이스의 글을 보고 박진영 본인은 전혀 놀라지 않았다. 원래 처음부터 그런 불량기 있는 친구였기 때문이란다.
2. 박진영 본인과 JYP의 노력으로 연예관계자와 팬들의 사랑에 감동받아 박재범은 새로운 인물로 태어났다.
3. 이제 막 행복해질 즈음에 삐딱했던 예전 글이 공개되어 박재범이 박진영 본인과 동료, 그리고 회사에 미안하여 스스로 탈퇴하여 미국으로 돌아갔다.
4. 박진영 본인은 박재범의 결정을 존중하니, 팬들도 따라주길 바란다.
박진영 본인의 판단으로는 박재범은 전혀 잘못한 게 없다는 것이다. 박재범이 한국에 대해 안 좋은 감정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서 스카웃했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박진영이 해야할 일은 팬들과 대중을 설득하여 박재범이 활동을 지속할 수 있도록 노력을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박진영은 박재범이 미국에 돌아갈 때까지 단 한 번도 이런 노력을 하지 않았다. 박재범 스스로 간다니까 “잘가. 다음에 여론 좋아지면 다시 보자” 하고 끝내버린 셈이다. 잘못한 게 없는데 왜 중도하차시키냐며 팬들이 반발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박재범이 중도하차 하려면, 박진영이 전면에 나서서 최대한 대중에 설득을 구하고, 그래도 그래도 안 되면 그만두는 것이다. 물론 박진영은 이 모든 선택과 결정은 박재범이 했다는 명분을 제시했다. 즉 본인이 그만두겠다니, 자신은 다른 방법이 없다는 뜻이다.
일반적으로 노예 착취 수준의 후진적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한국의 아이돌 그룹의 현실로 볼 때, 박재범 개인의 판단에 전적으로 의존했다는 박진영의 주장을 믿을 수 없다. 박재범은 미국의 랩퍼들처럼 자생적으로 시장에서 성장해서 한국에 온 것이 아니다. JYP의 철저한 상술에 의해 기획된 상품이다. 특히 아직 2년차라면 자율적 판단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추정하는 게 맞다. 그러나 이는 박진영과 박재범 둘 밖에 모르는 일이니 그렇다고 치자.
그러나 이를 인정한다면 박진영이 반드시 해명해야할 것이 있다. 박재범이 자율적 판단으로 미국으로 돌아갔다면, 현재 박재범의 신분은 자유인이어야 한다. 과연 그럴까? 내가 박진영의 언어가 4선 지역구 정치인의 언어라 이야기한 것도 이 때문이다. 박진영은 박재범과의 계약 상황에 대한 설명을 했어야 했다. 가장 핵심적인 계약 상황을 설명하지 않고, 온갖 사적인 정담을 늘어놓으며, 이를 피해간 것이다.
박재범은 계약 상으로 절대 불리한 위치일 가능성이 높다
단적으로 물어보자. 현재 박재범은 JYP 소속인가 아닌가? 다시 말하면 박재범과 JYP의 7년짜리 계약이 현재 유효한 것인가 아니면 종료되었냐는 것이다.
만약 계약종료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박재범이 미국에 가 있다면, 박재범은 박진영의 허락없이는 절대 가수 활동을 할 수 없다. 박진영이 계약서만 공개해주면 곧바로 파악할 수 있겠지만, 국내는 물론 미국에서도 활동이 불가능할 것이다.
또한 동방신기와 SM과의 계약으로 볼 때, 지금의 사태는 박재범 본인의 자책이기 때문에 계약 상황은 절대적으로 박재범 측에 불리하다. 현재 벌써부터 2PM의 광고계약이 해지된다는 말들이 나오고 있다. 정상적인 기업이라면 매국노로 찍힌 아이돌그룹에 자사의 광고를 맡길 가능성은 없다. 이러한 귀책 사유가 모두 박재범에 돌아가게 되면, 박재범이 타 기획사로 이적하여 활동하는 것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해진다. 막대한 손해배생액을 JYP 측에 지불해야하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지금의 동방신기처럼 되는 것이다.
박진영이 본인의 글에서처럼 모든 판단을 박재범에 맡겼다면, 그가 박재범을 계약에서 풀어주면 된다. 그럼 박재범이 미국에 있다가, 여론이 좋아지면, JYP와 다시 계약을 하여 2PM에 합류를 하던지, 아니면 다른 기획사와 계약해서 국내로 복귀할 수 있다. 즉 박진영이 계약을 해지해줘야지 박재범의 판단에 전적으로 맡겼다는 박진영의 말을 신뢰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JYP 측에서는 2PM에 꽤나 많은 투자를 했을 것이다. 2PM은 이제 막 수익을 올릴 시점에서 치명타를 맞았고, 계약서 내용으로나 법적인 귀책사유의 상당 부분이 박재범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박진영이 자선사업가가 아닌 이상, 박재범을 풀어줄 이유가 없다.
박진영은 말장난 그만하고 다시 정확히 답변하라
그러나 꽃놀이패를 쥔 쪽은 역시 박진영이다. 모든 판단을 박재범에 맡겼다는 명분으로 본인은 비난의 책임에서 빠져나가고, 국내에서는 언론플레이를 통해 동정여론을 확산시켜나가면서, 나머지 멤버로 2PM을 끌고 나갈 수 있다. 그러다 여론이 조금 더 좋아지면, “박재범 복귀 무대” 이런 테마 하나 만들어서 다시 한번 도약을 시도해볼 수 있다. 반대로 여론이 안 좋아지면 박재범을 미국에 묶어두고, 2PM이 해체될 즈음에 거액의 민사소송도(계약서 내용이 공개되면 간단히 확인할 수 있는 일)해버릴 수 있다. 이때까지 박재범은 그 어떤 기획사와도 활동이 어렵다.
박진영이 정작 해야할 말은 자기들끼리 알 만한 추억 타령이 아니라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첫째, 박진영이 밝힌 대로 박재범이 잘못이 없고, 박재범의 불량한 의식에 대해 이미 다 알고 있었다면 박진영이 대중 앞에 나와서 박재범을 대신하여 용서를 빌고 계속 활동시켰어야 했다.
둘째, 죽었다 깨도 박재범을 데리고 2PM 활동을 못하겠다면, 박재범과의 계약을 해지하여 그를 자유의 몸으로 풀어주었어야 한다. 물론 약간의 손배상은 어쩔 수 없을 것이다.
셋째, 자기는 먹기 싫지만 남주기 아깝다면, 공개적으로 박재범과의 계약은 유효하며 잠시 미국에서 자숙의 시간을 갖다가 반드시 다시 국내로 데려오겠다고 선언했어야 한다.
넷째, 이도 저도 아니라면, 솔직하게 여론에 따라서 데려올 수도 있고, 안 데려올 수도 있다는 입장을 밝혔어야 했다.
이런 주요 핵심 내용이 모두 빠져있으니, 박진영의 언어는 정치꾼의 언어라는 것이다. 억울하면 말장난 그만하고 다시 한번 정확히 답변해보기 바란다. / 변희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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