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가 돌아가신 바로 다음 날, 이모님도 같은 집, 같은 빈소에서 세상을 떴다. 나로서는 막말로 줄초상을 치른 셈이다.이모님은 그림에 능했고, 일제 때 사범학교를 나와 도쿄에 유학할 정도로 인텔리 여성이었다.귀국 후에는 언니(내 어머니)가 시집간 금산 부근의 시골 갑부 집에 시집가, 지주 집 종가 며느리가 됐다.6. 25가 나던 해 여름의 일이다.수 천마지기 논밭을 둘러보던 이모부 앞에 소작인 김모가 나타났다.이모부는 소작인 김모를 만나자마자 욕설과 함께 귀싸대기를 올려붙였다. 간 밤 논길의 물을 대라는 명령을 어기고 다른 집으로 물꼬를 터 준 것이다.논두렁에 쳐 박힌 김모는 그 길로 도망쳤고, 얼마있다 6.25가 터졌다.6,25가 나자 이모부는 그 소작인의 보복이 무서워 집을 떠나 동가식서가숙했다.도망친 김모가 동네 동맹위원이 돼 빨간 완장차고 나타났기 때문 이다. 9.28 수복으로 석 달만에 금산 읍내에 있는 우리 집에 불쑥 들른 이모부는 잠자리에 들기 전, 나도 그 얘길 똑똑히 들었지만, "내일은 집에 가서 다리좀 쭉 펴고자야겠다"고 했다. 다음 날 밤 새벽, 그는 소원대로 자기 집 담장 옆에서 다리를 쭉 펴고 눕는 신세로 바뀌어 있었다.이모부의 귀가
그는 내가 평소 아름답다고 여기는 친구 가운데 하나다. 수년 전 조선일보가 주관한 동인문학상에 이 순신(李舜臣)을 소재로 쓴 소설 《칼의 노래》로 입상한 작가 겸 언론인 김 훈이 바로 그다. 그와는 한국일보 기자로 20여 년, 또 시사저널 을 창간하며 6년 남짓 함께 일한 적이 있다. 그는 늘 폐부를 찌르는 글로 나를 감동시켰다. 흡사 제 인육(人肉)을 맷돌에 갈아, 거기서 나오는 즙을 잉크 삼아 써대는 글이 김 훈의 글이다. 80년대 그가 한국일보 문화부 문학전담 기자로 장기집필한 문학기행은 타 언론사에 근무하는 문화부 기자들의 필체를 송두리 채 바꿔놓을 정도로 기찬 글들이었다. 취재 장면 하나 하나를 그는 어느 시인도 엄두 못 낼 절대음감으로 묘사해냈다. 하다못해 취재 길, 그가 탄 기차의 차창(車窓)밖으로 명멸하는 원경(遠境)의 야산(野山)마저도 그의 펜이 닿으면 "순한 짐승처럼 꾸벅꾸벅 따라 오는 산(山)들"로 둔갑한다. 생김새도 헌칠했다. 늘씬한 키에 사려 깊은 눈매는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그 입술…" 을 쓴 시인 고(故) 박 인환을 그대로 닮았다. 어쩌다 주기(酒氣)가 오르면 그의 아름다운 눈은 화장 발이 잘 받는 30대
중국 용정 시 외곽을 해란강이 관류합니다.물이 줄고 강폭도 좁아 강이라 부르기에는 초라하나 강변을 차로 달리는 한국 여행객은 절로`강가에서 말 달리던` 선구자가 됩니다.일송정은 인근 연길 시에 닿기 앞서 정자 형태로 나타나는데, 강행군 출장의 여독 때문일까 아니면 차안에서 홀짝인 중국 소주에 취해서일까, 정자 계단에 드러누워 그대로`거친 꿈`에 빠져들고만 싶습니다.정자 옆 간이 찻집에 들려 일송정을 내다봅니다. 그리고 생각해 봅니다. 선구자란 무엇일까. 서울에 돌아와 춘원 이 광수의 '민족개조론'을 새삼 꺼내 읽음도 그래서 입니다.우리나라 최초의 종합 잡지 `개벽`에 연재되면서부터 시비의 도마 위에 오른 이 글은 구절 한마디 한마디가 쓰립니다. 민족이 뭔지를, 왜 민족에게 마지막 기대를 걸지 않을 수밖에없는지를 춘원은 망국을 목도한 반도의 지성답게 슬프게 증언하고 있습니다.이 글은 일본관헌의 사전 검열을 통해 독자들에게 전달됐습니다. 사전 검열은 받아본 사람만이 그 사정을 압니다. 3공과 5공 시절 서울의 신문기자들은 계엄령만 터졌다 하면 물묻은 신문대장을 들고 권총 찬 장교들 앞에 열 지어 순서를 기다렸습니다. 동료기자가 쓴 한 단의 문장, 단 한 줄의 제
작가 황순원의 말 속에 눈을 찌르는 대목이 나온다. 그의 소설 「나무들 비탈에 서다」는 6·25 전란 속을 뒹굴던 당시 한국 젊은이들의 얘기다. 작품에는 여러 주인공들이 군복 차림으로 등장한다. 그 주인공 가운데 하나가 산속의 까마득한 낭떠러지 밑을 내려다 보다 무심코 말을 내뱉는다. "어이,추워!" 이 말 한마디로 주인공은 소설속에서 계속 「시인」이라는 별명으로 통한다. 주인공 이 벼랑위에서 느낀 공포를 작가는 바로 그 시대에 대한 공포로 본 성싶다. 그리고 이 공포를 "어이,추워!"라는 한 마디로 시화한 것이다. 군인을 시인으로 바꿔 놓은 것이다. 환난을 그대로 방치하지 않고 오히려 그 환난과 직접 부딪쳐 극복한 것이다. 그건 마치 밤이 깊을수록 별이 더 빛나는 것과 같은 논리다.당시 전란의 슬픔을 삭이려던 작가의 사랑이 이 한마디 말 속에 담겨 있다. 말은 생명체다.뛰어난 말일수록 말하는 사람의 영성이 드러난다. 세상을 내다보는 통 찰력과 사랑이 묻어 나온다. 사막의 아름다움을 "그곳 어딘가에 샘이 숨겨져 있기 때문"으로 본 프랑스 작가 생 텍쥐페리의 말은 한갓 말로 그치지 않는다. 삶 그 자체다. 그가 달빛 쏟아지는 그곳 사막을 「어린 왕자」를 시켜
김승웅 (빅뉴스포럼 대표) =지금의 FTA 타결... 좀 쉽게 생각하고 좀 더 쉽게 풀자. 타결의 최대 현안이 됐던 자동차 시장개방 문제부터 생각해 본다. 독자 여러분을 우선 미국 자동차판매시장으로 직접 안내한다. 워싱턴에 특파원으로 부임한 다음 날, 광고란에 적힌대로, 자동차 거래상(Car Dealer)에 전화를 건즉 한시간이 채 못돼 종마처럼 건장하고 잘 생긴 딜러(Dealer) 한 사람이 싱글벙글 달려왔다. 나더러 여권을 소지하라더니 곧바로 날 태우고 자기네 딜러 가게가 위치한 워싱턴 DC근교 게이더스버그로 안내했다. 드디어 거래가 시작됐다. 이야기는 지금부터다.일제 토요타의 주력 차 `캄리`(Camry)가 맘에 들기에, 우리식으로 한 5백 달러 정도 가격을 후려쳐봤으나 딜러상은 요지부동이었다. `종마`는 별실 속에 숨은채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 지네 매니저 방을 들락날락, 거짓말 안보태고 일곱 차례 그 짓을 반복하더니 기껏 깍아준 가격은 1백 달러에 불과했다. 이 사이 시간은 두시간이 흘렀다. 사지 않겠다는 내 입장을 펼치고, 집으로 돌아갈 뜻을 비쳤다. 순간 `종마`의 표정이 홱 달라지더니 올때와는 달리 집에 데려다 줄 생각도 안했다. 여권을 돌려달라
앞서의 내 글 "너, 갸르송 이놈!"을 읽으신 두 분의 반발이 거셌다. 나의 글이 너무 호언장담으로 비친 듯싶다. 나의 과거 언론계 친구 문창재(文昌宰) 전 한국일보 논설실장이 먼저 반기를 들었다.“형, 여러번 전화 주셨는데 즉각 달려갈 거리에 있지 못하여 죄송했습니다. 노느라 너무 바빠서 자주 서울을 비우게 된 것 용서 바랍니다. 신나게 놀고 나서 사람노릇을 할까, 우선 사람노릇부터 하고 놀까, 이건 문제도 아닌 문제잖아요? 또 한번 죄송. 꾸벅" "띄우신 잘 읽었습니다. 허나 5년 안에 프랑스를 따라잡고 몇십년 안에 세계 2위 대국 반열에 오르게 된다는 자신감은 너무 나간 것이 아닌가 싶네요. 그 근거라는 것도 그렇고, 설사 신빙성 있는 근거라 할지라도, 또 본인의 감상이 그렇다 해도, 파리를 극복한다는 말에는 좀 거시기한 데가 있지 않나, 이런 생각이 듭니다" "만나서 벌겋게 마시면서, 적나라하게 토론하는 과정에서 해답을 찾아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곧 한번 연락 올리겠습니다 4월 꽃 향기에 취한 밤에 문창재 올림" 나의 대학동기인 대학교수 조 모박사의 지적은 더 따끔했다. 변하지 않은 파리를 내가 탓한데 대해 “변화무쌍함이 변화하지 않음보다 더 우월하다
김승웅 (빅뉴스포럼 대표)=정치(권력)와 경제는 따로 노는 것이 아니다. 정치가 바로 경제다. 미 백악관-재무부 관계를 놓고 설명해 본다.미 재무부는 백악관과 담 하나 사이로 붙어있다. 국방부가 멀리 포토맥 강(江) 건너편 펜타곤에, 또 국무부가 찻길로 15분 떨어진 포기 바텀(Foggy Bottom : 안개가 자주 낀다 해서 붙인 별명)에 위치해 있는 데 반해, 재무부만은 백악관 지척에 놓여있다. 재무부는 백악관의 부속 건물이라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심지어 재무부와 백악관 사이에는 비밀 지하통로까지 부설되어 있어, 역대 대통령 가운데 바람 잘 피던 케네디나 존슨 대통령의 총희(寵姬)들의 경우 이 비밀 지하 통로를 통해 백악관의 밀실 아지트에 발을 들이기까지 했다. 우연히 그리 된 것이 아니라, 아예 워싱턴 DC라는 도시를 지을 때부터 그렇게 만들어졌다. 프랑스의 랑팡(L'enfant)이라는 유명 건축가가 워싱턴 DC를 만들 때 역대 유럽 왕조, 그중에도 프랑스 부르봉 절대왕조의 대장성을 그대로 흉내내 재무부를 백악관 왕조 바로 곁에 설치한 것이다. 왕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금고(Treasury)였기 때문이다. 미 재무부 장관은 말 그대로 `금고 지기`로,
지난 연말 파리 출장을 다녀와 적이 놀랐다. 이렇게 변하지 않는 도시가 세상에 또 있을까 싶으리만큼 파리는 십수년 전 내가 국내 모 일간지의 특파원으로 그곳에 장기 체류하던 그 때 그 모습 그대로였다. 생 제르망 거리로 나서니 한 쪽 모퉁이의 카페 '뒤 마고'(Deux Magots)도 그대로고, 문을 밀치고 들어선 즉 시끌 법석대는 실내 정경 역시 예전과 똑 같다. 불어로 '붉은 원숭이 두 마리'라는 이름의 이 카페를 나는 특히 좋아했는데, 그 곳은 실존철학자 사르트르와 그의 계약 결혼녀 보봐르가 즐겨 출입했던 곳이다. 또 툭하면 공원의 비둘기를 잡아 끼니를 채우던 가난뱅이 작가 헤밍웨이가 죽치고 앉아 원고를 메우던 곳이었다.허나 커피를 주문하고 나서 나는 심한 회한에 빠져들었다. 파리에서 보냈던 특파원 생활 5년을 그대로 허송한 듯한 박탈감에 빠져든 것이다. 혹시 파리에 짓눌려 살았기 때문은 아닐까. 그게 사실이라면, 도대체 파리의 무엇이 나를 그리 매료했고, 무엇을 그리 무서워했기에 파리 5년을 그토록 과공(過恭)일색으로 살았단 말인가. 파리의 찬란한 인권 때문일까. 일응 그럴 만도 하다고 느낀 건, 내가 파리에 첫 발을 들일 당시 서울은 신군부 하의 독
김승웅 (빅뉴스포럼 대표) = '미국, 유럽 등 선진국 직업종류 약 7만개...한국은 5만개' '외국에 존재하되 한국에 없는 미지의 직업들 개발, 보급' '클린턴의 경우 직업창출 공약 경제 호황으로 절로 이뤄져' '일자리 정책 따로 세우기보다 집권자가 좋은 경제정책 펴면 해결' '일자리 창출'에 대한 어원적(語源的) 접근 파리에만 있고 이곳 서울에 아직 없는 직업이 하나 있다. 불어로 `레스토라퇴르(Restaurateur)`라는 직업이 그것인데, 우리 말로 번역하면 `복원사(復元士)`를 뜻하는 단어로, 수십 수백년돼 탈색했거나 마모된 그림이나 조각, 문헌을 원래의 모습대로 복원시키는 전문가를 일컫는다. 이 복원사가 되기 위해서는 오랜 기간의 학업과 실습 그리고 경험이 필요하다. 예컨데 탈색된 그림을 원본대로 복원하기 위해서는 당초 그림에 사용된 물감의 종류와 성분을 감별해 낼줄 알아야 하고, 그 물감을 찾아 낼 수 없을 경우 어떤 화학성분을 조합해야만 원래의 물감과 같은 선명도나 농도를 재현할 수 있는지를 만들어 낼 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모자란 `일자리 창출` 위해 우선 고려해 볼 수있는 어원적(語源的) 접근의 하나로, 이처럼 외국에 버젓이 존재하되 우
김승웅='한국이 처한 상황 7%성장만으론 해결 안돼' '북핵, 보혁, 개헌...수치 응용이 힘든 예측 불가능 사회' '경제수치 하나만으로 부흥의 황금률로 삼는 건 무리' '계량화할 수 없는 싱싱한 기백이 가장 중요한 요소'"7% - 3만 달러, 어렵지만 길은 있다"는 한국 경제연구원의 노 성태 원장님의 주제발표에 대해 나는 전적으로 동감한다. 이렇게만 된다면 우리는 일단 위기의 늪을 벗어 날 수 있다. 지금의 노무현 정부하에서 이 수치를 기대하기란 이미 물건너 간 얘기일테고, 차기 정부의 출범과 함께 이를 달성해도, 아니 더 너끈하게 잡아 오는 2012년 안으로만 달성된다 쳐도 우리는 일단 한 숨을 돌릴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여기서 보다 본질적인 문제를 제기하고 싶다. 어렵지만 "7%성장, 3만 달러"만 달성하면 만사 형통인가로 압축된다. 얼핏 비경제적인 주제인데다 노 원장님의 주제 범위를 크게 일탈하는 사안으로 비칠 소지가 적지 않다는 점, 나 스스로 인정한다. 그럼에도 이를 굳이 제기함은 지금 한국이 처한 상황이 단순히 7% 경제 성장률이나 1인당 3만 달러소득의 달성 하나만으로 해결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주제 발표자께서는 위 수치의 달성이 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