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효숙 헌법재판소장 임명동의안 처리가 여야 간 합의를 좁히지 못한 채 사실상 무산되면서 헌재소장이장기간 공백사태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열린우리당 김한길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원내대책회의에서 “헌재공백상태를 마감하기 위해 오늘 본회의에서 반드시 임명동의안이 처리 돼야 한다”는 입장을 강력히 표명했으나, 한나라당은 “위헌적 편법적 절차를 그대로 둔 채 표결에 참여할 수 없다”는 주장을 재차 거듭했다.
오후 2시에 열린 본회의 시작부터 여야의 팽팽한 신경전이 이어졌다. 한나라당은 직권상정을 막기 위해 ‘헌법파괴, 원천 무효’, ‘헌법파괴 하지 말라’등의 푯말을 들고 본회의장 국회의장석을 점거하고 농성을 벌였다.
*사진설명 :한나라당 의원들이 19일 의장석 점거하고 농성을 벌이고 있다. ⓒ빅뉴스
이러한 가운데 이날 오후 열린우리당 김근태 의장과 김한길 원내대표, 유인태 의원 등 당 지도부들은 국회의장실을 방문하고 임채정 의장에게 '직권상정'을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이번 캐스팅보드를 쥐고 있는 민주당, 민주노동당, 국민중심당 등 비교섭 3당 원내대표는 이날 오후 다시 회동을 갖고 한나라당에게 중재안을 받을 것을 요구했다. 비교섭 3당은 회동에서 여야 합의 없이 여당 단독으로 처리하지 않을 것과, 이날 표결에 참여하지 않을 것을 분명히 했다.
민주당 김효석, 민주노동당 권영길 원내대표는 회담이 끝난 후 기자회견을 갖고 “민간인 신분의 전효숙 후보자가 법사위에서 헌법재판관 청문회를 거친 뒤 국회에서 임명동의안을 처리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야3당의 중재안을 끝내 거부했다. 한나라당 김형오 원내대표는 “야3당 중재안을 받지 않기로 했다"며 "헌법적·법률적으로 전효숙 헌법재판소장의 임명이 절차를 위반했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없으며 이 원칙은 흔들리지 않는다"고 강경 입장을 밝히며 사실상 본회의 처리는 무산됐다.
조순형 “전효숙 사퇴하거나, 노 대통령 지명 철회하라”
이러한 가운데 전효숙 헌재소장 후보자를 둘러싼 지명 절차의 문제점을 가장 먼저 제기했던 민주당 조순형 의원은 19일 ‘KBS라디오정보센터 박에스더입니다’에 출연해 “전효숙 후보자가 사퇴하거나, 노무현 대통령이 지명을 철회하라”고 주장했다.
조 의원은 지난 6일 인사청문회에서 “전 후보자가 헌법재판관이 아닌 민간인 신분이기 때문에 헌재소장에 대한 인사청문회 자체가 무효인 만큼 법사위에서 별도의 인사청문회를 열 필요가 없다”며 처음 적법성을 제기했었다.
그는 “전 후보자 사태는 국회, 대법원, 헌법재판소의 공동책임이기도 하지만 1차적인 책임은 노 대통령에게 있다”며 “위헌위법의 이런 임명동의안을 처리할 수 없다는 게 우리 민주당 입장”이라고 밝히며 ‘한나라당’과 뜻을 같이 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이어 조 의원은 “전 후보자 임명동의안의 국회처리는 비관적이며 한나라당이 반대하는 본회의 처리에도 반대한다”고 덧붙였다.
조 의원은 야3당이 절충안으로 제시했던 노 대통령의 사과 문제를 언급하며 “비서실장이 대통령을 대신해서 사과를 했는데 사과 주체가 잘못됐다”며 “법적으로 대통령을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은 비서실장이 아닌 국무총리”라고 지적했다.
조 의원은 전효숙 후보자에 대해 “헌법을 수호할 의지와 소신이 있어야 하지만 가장 기본적인 여건이 결여돼 있다”며 비난을 서슴지 않았다. 그는 “지난번에 대통령의 뜻이라고 해서 민정수석비서관이 전화 한 통화했다고 해서 그냥 헌법재판관 사퇴하는것을 봐서는 헌법을 수호할 의지와 소신이 없어 보인다”고 평했다.
여야 날선 책임공방 이어져 전효숙 임명동의안 처리가 지난 4일, 8일에 이어 19일 역시 본회의도 회부되지 못한 채 결국 파행으로 치닫자 여야는 ‘책임론’을 거론하며 정치공방으로 이어가고 있다.
열린우리당 김한길 원내대표는 “한나라당의 거부 이유가 결국은 절차적 문제가 아니라 전효숙 개인 이라는 것이 드러났다"며 "헌재 소장의 자질은 표결을 통해 검증하는 것인데 한나라당은 원천적으로 이런 법의 의도와 절차를 모두 무시했다"고 비난했다.
노웅래 공보부대표는 브리핑을 통해 "한나라당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 또 다른 헌재소장의 탄핵이며 헌법파괴다“고 말했다. 그는 ”오늘은 사실상 제2의 탄핵기도를 한 역사적 날로 기억돼야 한다. 꼴통 전시회를 보는 거 같아 부끄럽고 참담하다"고 맹비난했다.
한나라당 주호영 공보부대표는 브리핑을 통해 국민을 대신해 헌정질서가 제대로 운영되고 있는지를 감시하고 비판하려는 한나라당의 노력을 '국정의 발목을 잡는다'고 뒤집어씌우는 열린우리당이야말로 적반하장"이라고 밝혔다.
그는 “오늘 이 사태는 부적격 인사를 헌법 절차를 어겨 가며 헌재소장이라는 막중한 자리에 임명하려 한 노무현 대통령과 전효숙 후보자에게 전적으로 책임이 있다"고 반박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