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영의 압승을 여유 있게 축하할 겨를조차 허용되지 않았다. 대통합민주신당의 대통령 후보자로 결정되기 무섭게 그가 본헤드 플레이(Bonehead Play)를 저지른 탓이다. 저러니 정동영이 콘텐츠가 부족하다는 비판을 듣는 거다. 무엇이 그를 통합신당의 대선후보로 만들었는지 정녕 모른단 말인가? 놈현스러운 인간 같으니라고.
어떤 사람이 내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정동영이 대통령 될 수 있겠어요?” 국민원로는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글렀어요. 노무현한테 전화했다가 쿠사리나 먹고 있으니….” 하루쯤 속으로 삭이면 부아가 가라앉을 걸로 알았다. 정반대였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정동영의 소행이 얄밉고 괘씸하다. 경선에서 획득한 득표수 가운데 내가 던진 한 표는 빼라. 차라리 손학규 주게.
‘놈현스럽다’는 국립국어원이 편찬한 신조어 사전에 등재된 단어다. “기대를 저버리고 실망을 주는 데가 있다”는 의미다. 청와대가 발끈하는 바람에 사전이 회수되는 소동이 벌어졌다. 청와대가 노발대발했다는 소식을 접한 국립국어원이 알아서 긴 결과다. 사전은 회수할 수 있을지언정 언어까지 거둬들일 수는 없을 터. 놈현스러운 족속들은 끊임없이 등장하므로. 노무현이 놈현스러워지는 데는 대통령으로 당선된 다음 짧게는 수개월, 길게는 몇 년의 세월이 걸렸다. 반면 정동영은 후보 선출 단 하루 만에 놈현스럽게 변했다. 몽골기병의 속도와 기동성을 엉뚱한 곳에서 흉내 낸 셈이다.
정동영은 착각에서 얼른 벗어나야 한다. 유권자들은 정동영이 좋아서 찍은 게 아니다. 노무현이 싫은 까닭에 정동영을 밀었을 뿐이다. 경찰에게 핍박당한 사실을 정동영은 영광으로 여겨야만 한다. 경찰청 노빠들이 설쳐댄 덕분에 노무현의 최대 정적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명박의 지지율을 지탱하는 원동력의 8할은 노무현 정권에 대한 민심의 환멸과 염증이다. 노무현이 진짜로 미워하는 정치인이 이명박이 아니란 점을 일반대중에게 효과적으로 인식시킬 필요성이 시급하다.
그러나 정동영은 노무현에게 먼저 전화를 걸어 갖은 아양을 떨었다. 유력 정당의 대권후보로 공식 지명된 인물이 현직 대통령에게 거는 의례적인 전화가 아니었다. 정치는 결국 상징싸움이다. 형식이 내용을 규율하기 일쑤다. 10분 동안 이루어진 전화통화는 노무현을 향한 정동영의 충성과 복종심을 입증하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노무현과의 비타협적 투쟁을 희망하면서 정동영을 응원했던 수많은 민초들은 느닷없이 뒤통수를 맞고 말았다.
정동영은 노무현과 척을 지면 대통령 선거에서 승산이 없다고 계산한 듯하다. 정동영의 판단을 존중한다. 부분적으로만. 청와대의 지원을 확보하지 못하면 가뜩이나 희박한 승률마저 절반으로 줄어든다. 허나 이것 또한 확실하다. 아니, 확률 100퍼센트의 진실이다. 노무현과 손을 잡으면 희박한 승률이 반토막이 나는 걸 넘어 아예 ‘0’이 된다는 게. 노무현과 연합하면 Nothing이고, 노정권과 결별하면 Something 내지 Anything이다.
정동영 진영에 한 수 가르쳐주겠다. 노무현 부산정권이 대통령 선거에서 끌어올 수 있는 표는 정확히 11만 표다. 영남친노세력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자랑하는 영남 30프로는 순전히 사기다. 어째서 11만 표일까? 대한민국서 대통령이 직접 임명할 수 있는 인사자리는 약 3,000개 가량이라고 한다. 쿠션 넣어서 좌우할 수 있는 직책의 숫자는 이의 열 배쯤이다. 바꿔 말하면 노무현 정권 덕택에 취직을 하거나, 승진이 되거나, 직장에서 잘릴 위기를 모면한 부류와 그 가족들만이 신당의 국민참여경선에서 이해찬을 찍었다는 뜻이다. 이게 10만 표다. 나머지 1만 표는 노무현이 무슨 짓을 하건 무조건 옹호할 경상도 골수노빠들 표다.
정동영 이 화상아! 겨우 11만 표 구걸하자고 노무현에게 스타일 구겨가며 전화질을 하냐? 노란 목도리 두르고 청와대 앞에서 석고대죄도 하지 그래? 당신이 아무리 고개를 숙여도 경선에서 이해찬에게 투표한 11만 표는 절대 정동영에게 오지 않는다. 왜 그런 줄 아시는가? 당신 전라도잖아. 서역국을 위시한 친노성향의 인터넷 정치웹진들에서 호남에 퍼붓는 저주와 악담을 좀 보란 말이다.
정동영은 치유와 통합을 얘기한다. 정동영으로 인해 상처받은 사람들을 보듬어 안으라는 노무현의 성화에 굴복한 것이다. ‘웃찾사’와 ‘개그콘서트’ 담당 PD들에게 충고하겠다. 노무현과 정동영의 전화녹취록 구해서 편집 없이 방송해보시라. 시청률 대박 날 테니까.
정동영과 노무현의 대화수준, 그게 바로 이른바 범여권의 사고수준이다. 서민대중과 호남인들의 가슴에 대못질을 한 노무현이 되레 자기가 상처받았다고 꾀병을 부리고, 엊그제까지만 하여도 노무현 정권을 잡아먹을 듯이 눈알을 부라리던 정동영이 친노들의 상처를 치유하겠답시고 돌팔이 의사 노릇을 자청한다. 개성공단 100번 방문하고, 평화시장 매일 들르면 뭐하나. 노무현하고 폰팅 한 번 하면 전부 도로아미타불 되는데. 정동영이 전화방 서비스를 몰래 이용하다가 들켰어도 지금보다는 덜 놈현스러워졌으리라. 이해찬이 이야기한 한 방에 갈 사람은 다름 아닌 정동영이었구나.
정동영이 노무현 밑으로 다시 기어들어가든 말든 상관없이 국민원로는 영남친노들과 끝까지 싸울 작정이다. 그들이 얼마나 형편없는 족속인지를 폭로하는 일에 힘쓸 계획이다. 친노세력이 거국적으로 밀던 이해찬이 참패하자 노무현 후원회장인 이기명 왈, “패자의 승복도 중요하지만 승자의 아량도 중요하다.” 친노들은 양심은 물론 자존심도 없는 모양이다. 이기명은 배알도 없나? 만약 경선에서 이해찬이 이겼다면 나는 치사하게 이해찬 캠프더러 나 받아달라는 소리는 결코 안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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