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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박근혜와 정치벤처의 역사적 대결

한민족 폐습인 정치벤처 대 창조경제를 위한 기술벤처의 대결 이야기



심상근 칼럼리스트

한국에서, “박 과장!”, “박 과장님!”, 혹은 “김 이사!”, “김 이사님!”, 혹은 “조 국장!” , “조 국장님!”, 이라고 부르는 대신, 아래 위 가리지 않고 상호 “영철!”, “철호!”, “석현!” 이렇게 부르면 세상이 어떻게 변할까?

우선, 출세한 사람들이 엄청 김 새 할 것이다. 몇 년 각고 끝에 승진했는데, 승진 전과 똑같이 “영철!”, “철호!” 이렇게 호칭하면 김이 샐 것이다.

미국은 그러하다. 존댓말 하댓말도 원래 없지만, 직책이나 지위를 호칭에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그냥 이름을 상호 부른다” “Tom!”, “Joe!”

즉, 문화적으로 미국에는 계급이 없다. 직책 이름은 그냥 직책 이름이다. 무슨 일을 하는지 만 설명한다. 대통령도 계급이 아니다. 직책이 대통령이다. 다만, 자기 나라를 대표하므로 경의를 깎듯이 표한다. 그러나 계급은 아니다. 장관 이하 고급공무원들, 회장 이하 사장과 임원들, 모두 계급장이 없다. 사람 대 사람으로 상호 예의 있게 대한다.

미국에서 국회의원이 상점에서 콘돔을 쓸쩍하다가 걸렸다. 경찰이 호출되었고 조서를 꾸미고 입건이 되었다. 그리고 유명인사이므로 물론 전국적으로 보도되었다. 즉, 국회의원이 계급이 아니다. 직책이 국회의원일 뿐이다. 만약 한국 식으로 “나 국회의원인데!”라고 호통을 쳤다던가, “이러지 말라고…”하며 무마를 꾀했다면 훨씬 무거운 죄로 입건된다. 심지어 수갑을 채울 수도 있다.

미국에서는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에 당선되어도 축하 동창회 같은 것은 절대로 안 연다. 그런 짓은 누구 머리에 떠오르지도 않는다. 각자, 국민으로서 국가 앞에 따로 선다. 즉 미국인들은 시민이다. ‘시민’은 그 나라의 최고의 지위이다.

호칭도 안 변하고, 경찰도 안 봐주고 동창들도 안 알아주고, 그러면 왜 출세하지? 실질적으로 변하는 것은 딱 하나뿐이다. 출세하면 공식수입, 즉 봉급이 오른다. 대충 그뿐이다. 물론, 중요한 직책을 수행하는데 따르는 만족감이 있고 주위에서도 존경한다. 그러나 물질적 것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뇌물이라던가 kickback (감사 표시로 주는 돈)은 원칙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실질적으로 그런 일은 통계 상 전혀 일어나지 않는다. 만에 하나 혹은 그 이하이다.

동봉한 도면1은 위에서 이야기한 바를 보여준다. 한국의 경우, 좋은 학교 졸업하여 출세하면 [공식수입 + 음성수입 가능성 + 아부 받기], 이 세 가지가 뭉치로 들어온다. 반면 미국에서는 공식수입 이외 다른 두 가지 혜택은 완전 영, zero, null, zip이다. 근 40년 미국에서 백인들과 함께 일했던 입장에서 이야기하는 것이니 믿으셔도 무방하다.

내가 한국 나이 70인데도 보기에 50대로 보이는 이유 중 하나는, 어른 대접, 높은 사람 대접을 받지 못해서 그러하다. 개발부장으로서 박사 열 명 정도에 수십 명 직원들을 데리고 일하던 때에도 모두가 나를 “Sang!”이라고 불렀다. 윗사람이고 아래 사람이고 동일하게 이 호칭으로 불렀다. 한국 식으로 “Director Sheem!”, 이렇게 부르면 어깨가 으쓱하고 좋았을 터인데, 그 상것들은 모두가 “Sang!”이었다.

그리고 고개를 숙이는 자가 없다. 한 손 올리고 “Hi!”, “good Morning!”이다. 등까지는 몰라도 고개 좀 숙여주면 기분이 엄청 업 될 터인데, 한 놈도 그러지 않았다.

좋은 점은, 어른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애들처럼 서로 부르고 대하므로 만날 애 같은 기분이다.

한 선배는 미국 연구소 직장에서 일년 간 말미를 얻어서 한국의 한 연구소에 부소장으로 재직하다 돌아왔는데, 싱글벙글이었다: “한국에 가니 인사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기분이 좋더라고! 출근 길에는 정문에서부터 경례 받고, 모두가 “부소장님!”하면서 굽실굽실 인사를 하는데 하루 수십 번 그렇게 인사를 받으니 살맛 나더라고!”

이는 물론 우스개 삼아 이야기한 것이지만, 미국에서는 대통령이 되어도 사람은커녕 개 한 마리 고개 숙여 인사하는 적이 없다. 인사한다는 것이 손 내밀어 악수하거나 손 올려 “Hi!” 하는 것이다.

그리고 미국 직장에는 회식이라는 것이 없다. 크리스마스 때 부부동반 파티 정도가 고작이다. 무슨 좋은 일 있으면 점심 때 피자집에 가는 경우가 있지만 이 것도 일년에 몇 번 안 된다. 모두가 오후 6시 종치면 집으로 직행이다. 토요일 일요일도 거의 100% 마누라와 코를 대고 지낸다. 동창회는 몇 년 혹은 10년에 한 번 정도 열리지만 그 것도 부부동반이다. 99%, 거의 모든 행사는 부부동반이 원칙이다.

동봉한 도면1으로 돌아가면, 한국에서는 출세하면 알아 모시는 것은 자동이다. 그 근본적 이유는, 애초, 덕을 볼 기대감 때문이었다. 수백 년 간 수직적 상하관계를 통하여 물질적 사회적 혜택이 분배되었으므로 그러는 것이다. 그 것이 습성화된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인들은 부정부패거리가 생기면 거의 모두 공범이 될 용의가 있다. 건설부 고위관리가 동기동창이거나 선배이면 불법 유출한 부동산 정보를 제공 받고, 반대급부로서 그의 몫도 챙겨주면서 알짜 부동산을 사들인다. 그런 경우, 애국심을 쳐들면서 그런 일에는 안 끼겠다고 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나의 죽마고우 하나는 결코 그런 짓을 안 하는데, 이는 그가 바보이기 때문이다. 대부분 그보다 영리하다.

이를 나는 ‘정치벤처’라고 부른다.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성행하는 ‘기술벤처’와 사촌 간이다. 다만, 기술 대신 정치가 그 기반이다. 장차관, 고급관료에서부터 면사무소 직원까지 거의 모두가 눈만 뜨면 연관되는 가장 친근한 사업이다. 조선왕조 내내 창궐하던 사색당파가 대표적 정치벤처이다. 정치를 기반으로 하여, 그 것을 꼬투리로 하여 경제적 수익을 올린다.

물론, 나라는 가난해지고 발전이 없다. 부정부패는 공기처럼 만연한다. 도면1의 우측에는 공공재산과 공적 정보 등을 상징적으로 ‘석탄더미’로 나타내었다. 개구멍을 통하여 이를 훔치는 것이 ‘정치벤처’의 요체이다. 수백 년 이 짓이 경제활동의 주축이었다. 과학기술에 관련된 연구개발은 전무하였다. 협잡하는 정치기술만 발달하였다.

그래서 1961년 5월 16일 박근혜 대통령의 아버지가 한강 다리를 건넌 것이다. ‘정치벤처’를 탱크의 힘으로 억누르고 과학기술기반의 경제부흥을 시작하였다. 그런 노력은 한민족 역사 수백 년 동안 처음이었고, 무에서 유를 창조하려는 노력이었다. 그 결과 박통은 ‘한강의 기적’을 이루었다. 그 것이 죄라면 죄이어서, 세상을 하직하고 육영수 여사 곁으로 갔다.

박통이 이룬 ‘한강의 기적’은 그 후 재벌기업들이 계승하였다. 재벌은 정치의 도움 없이도 굴러갈 만큼 컸다. 죽일 놈, 살릴 놈 하지만, 재벌기업들의 성공이 아니라면 한국은 필립핀과 다를 바가 거의 없다. 박통이 혁명을 일으킨 당시, 필립핀은 한국보다 훨씬 더 잘살았다.

박통이 간 후, 재벌들은 정치에게 잡혀 먹히지만 않으면 고맙고 장땡이었다. 정치인들에게 비자금을 뒤로 건네주면서 연명하였다. 요즈음에는 세상이 밝아져서 그런 짓은 안 하게 되었는데, 그 대신 정치인들은 여야 막론하고 재벌을 잡아먹지 못해 안달이다. ‘경제민주화’가 재벌을 미워하고 해체하는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는 박근혜 대통령이 후보시절부터 아마 30번은 반복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어제 김종인은 박근혜 대통령이 경제민주화를 실천할 것이라고 어느 모임에서 언급하였다. 그의 뜻은, 박근혜 대통령이 재벌을 칠 것이라는 의미이다. 그런 의도가 아니다라고 30번 이야기했어도, 그는 못 들은 척, 반대 이야기만 한다. 나의 잣대로는, 그는 거짓말쟁이이다.

재벌들이 외화를 벌어들여 나라 경제를 돌리는 동안, 박통 이후 정치가들과 관료들은 ‘정치벤처’로 돌아갔다. ‘한보사태’가 대표적 예이다. 박통 이후 처음으로 들어선 민주주의 정부에서 일어난 일이다.

그 ‘정치벤처’는 그 기반이 ‘끗발’이다. 중앙정보부(국정원)의 실질적 권한과 여당 국회의원들의 공천권이 실질적으로 현철 씨에게 갔다는 것이 당시 짜르르한 소문이었다. 그런 끗발이 없으면 ‘한보사태’ 같은 대형사고는 일어나지 않는다.

몇 년 전 뉴스에 보도된 바에 의하면, 4대강 사업 주체의 대표들이 대부분 당시 대통령의 동창들이었다고 한다. 4대강 사업이 실제로 ‘정치벤처’일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한 대목이다.

박통이 간 후부터 30여 년, 경제는 대체로 재벌기업들이 돌리고, 정치가들은 1961년 5월 16일 이전, 그리고 조선왕조 시대로 돌아가서, ‘정치벤처’에 골몰하였다고 나는 분석한다. 정치가들이 억울하다고 해도 어쩔 수 없다. 글쟁이로서의 명예를 걸고 내놓는 나의 분석이다.

동봉한 도면1의 우측 상단에 보인 자막, “훔칠 수 있는데 왜 힘들여 캐느냐?”는 박통 이후의 상황을 대변한다. 재벌기업들을 제외면, 한국 내에서 연구개발로서 외화를 벌어드리는 경우는 통계적으로 영에 가깝다. 기술로서 돈을 버는 재벌기업들은 일종의 섬과 같다. 자체적으로 자생하는 존재들이다. 그 섬들을 제외하면, 과학기술 기반으로 외화를 벌어들이는 면에서 한국은 필립핀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 것이 통계이다. 중소기업들도 대부분 재벌들이 필요한 것들을 조달하는 입장이다.

문제는, 한민족 문화에서는 ‘나라 것’을 훔치는 것은 죄도 아니다. 죄의식을 안 느낀다. 수백 년 그랬었기 때문이고, 나라 것은 아무의 것도 아니라는 의식이 만연해 있다. 재벌들이 외화를 잘 벌어드리므로 도둑질할 거리도 덩달아 규모가 엄청 커졌다. 그리고 동창관계, 인척관계, 동향관계를 통한 ‘개구멍’들이 사방에 있다. 정치벤처 천국이다.

그러기 때문에, 99% 그 이유로 인하여 교육열이 살인적이다. 그 정치벤처 도둑질의 태반이 동창연줄로 실행되기 때문이다. 한 다리 끼려면 무조건 명문 학교 나와야 한다.

한국에서 고등학교 3학년 교실에 가서, “서울대학교에 가고 싶은 사람 손 드세요! 손 들면 입학허가 해줍니다!”하면 100명 중 100명 모두 손 들 것이다. 반면, 미국의 한 고등학교 3학년 교실에 가서, “하버드대학 가고 싶은 사람 손 드세요! 손 들면 입학허가 해줍니다!”하면 100명 중 서너 명만이 손 들 것이다.

그 차이는, 한국의 경우, 동봉한 도면1에 보이듯이, 봉급이 많은 것은 중요하지 않다. 별거 아니다. 음성수입, 즉 부정부패가 수십 배, 수백 배 이상이 될 잠재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장관, 차관, 국장, 국회의원, 시장, 이런 것 하는 동창들과 한통속이 되면 수십억, 수백억, 심지어 수천억도 벌 수 있다. 명문학교 나온다고 모두가 그럴 수 있지는 않지만 모두가 잠재력과 가능성은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무조건 명문 학교에 가고 볼 일이다.

반면, 하버드대학교 나온다 해도 검은 수입이 생길 확률은 완전 영, zero, nil, zip이다. 출세하면 봉급이 높아질 것이다. 그리고 그 것이 경제적으로 모두이다. 그 외에는 없다. 그러므로, 하버드 안 간다. 한국에서도 서울대학교 가는 것이 봉급 좀더 높아질 것뿐이라면 서울대학교 가려는 동기가 엄청 꺾일 것이다. 그 정도 수입 더 올리려면 서울대학교 꼭 갈필요 없다. 뭐 아예, 대학교를 갈 필요도 없다. 전문대학에 가서 기술을 배워 작은 장사를 하는 것이 돈은 더 벌 것이다. 그리고 미국에서는 출세해도 알아주는 놈 한 명도 없다. 만날 이름만 찍찍 불러대고, 고개 하나 숙이는 놈 없고, 콘돔 훔치다 걸려도 봐주는 경찰 하나도 없다. 모두가 오후 6시 되면 집으로 간다. 저녁 대접하는 놈 하나 없다. 그러면 왜 잠 제대로 못 자고 성적 올려 일류대학교에 가야 하는 건데? 맞다! 그 것이 미국인들의 생각이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하버드에서 오래도 안 가고, 아예 4년제 대학진학률이 28%이다. 한국의 경우 82%이다. 완전 서커스이다. 그 근본이유는 동봉한 도면1이 설명해준다. 정치벤처 천국이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과학기술기반의 창조경제를 강조하고 있다. 이에 산업계도 기대감을 가지고 호응하고 있으며, 삼성전자 이건희 회장은 1조원 이상의 투자 계획으로서 이에 호응하고 있다. 박정희 정부 이후 동력을 잃었던 과학기술기반의 경제부흥 노력이 재가동된 것이다.

이에는 정치문화적 구조조정이 필수이다. 도2에 보인 바와 같이, 전통적으로 인재들은 정치를 지렛대로 한 부정부패적 치부에 100% 몰려있었다. 박정희가 의도적으로 재벌기업들을 키워 국제무대로 내보낸 후 재벌기업 중심의 경제가 크게 히트를 쳤고, 그 결과 박통 이후 도2에서 보인 바와 같이, 인재들 중 많은 부분이 재벌산업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도2에서 보인 바와 같이, 아직도 정치벤처는 왕성하며 많은 인재들을 유입하고 있다. 이러한 정치벤처는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가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정치벤처가 존재하는 한 기술벤처는 융성할 수가 없다. 땅 짚고 헤엄치기 식인 정치벤처가 존재하는 한, 이빨 빼는 것 이상으로 힘든 기술벤처에 들어올 우수인재들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박근혜정부의 가장 큰 목표는 군자의 정치를 실현하고 부정부패를 말소하는 것이다. 최종목표는, 도2에 보인 바와 같이, 정치벤처를 기술벤처로 대치하는 것이다.

이 목표는 달성하기 극히 지난하다. 수백 년 굳어진 문화와 싸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국민들은 거의 모두가 동창관계를 고리로 활동반경을 넓히고 있다. 동창 중 정치가와 관료가 있는 경우, 그들을 매개로 하여 크고 작은 비리들이 자행된다. 이는 공기처럼 만연되어 있고, 수백 년의 붕당문화로 익숙해져 있다.

미국에서 중국계는 모이면 투자와 첨단기술분야 이야기에 골몰한다. 미국첨단기술계는 실제로 중국계 그리고 인도계에 의하여 거의 완전히 장악되어 있다. 우수인재의 80% 이상이 그들이다. 반면 미국에서도 한국계는 모이면 누가 높고 누가 낮고 그런 이야기에만 골몰한다.

미국백인들이 특히 괴이하게 여기는 것은, 한국계는 처음 만나면 상호 누구를 아는지에 대하여 30분 이상, 심하게는 몇 시간을 이야기하는 습성이다. 그러한 대화를 통하여 공통적으로 아는 인사들을 거명하고, 그 것을 매개로 하여 인간관계를 설정한다. 힘깨나 쓰는 인사들을 많이 알고 있는듯하면 알아 모시고, 아니면 상대조차 하지 않는다. 이는 한민족 모두가 정치벤처에 가담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관대작들뿐 아니라 일반인들도 모두가 그러하다. ‘동창의 동창의 형님’까지 쑤석거리며 인적관계를 과시한다. 그런 이야기 빼놓으면 쓰러진다.

이러한 정치벤처 문화를 어떻게 척결하여 부정부패를 말소시키고 기술벤처 천국을 만드느냐, 이 것이 박근혜정부에게 가장 큰 과제이고 가장 중차대한 과업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적어도 4년여 간 그 틀을 만들어 놓아야 한다.

부언하자면, 현재, 정치벤처의 챔피언은 안철수이다. 두리뭉실, 듣기 좋은 이야기를 늘어놓으면서, 실제로 아무 것도 믿는 것이 없으면서, 오직 대통령이 되어 이름을 남기려는 목적으로 국민을 농락하여왔다. 그의 기술벤처기업은 국내 수요자, 특히 정부 수요자들을 상대로 돈벌이를 해왔고, 외화벌이를 하려는 노력은 완전히 실패하였다. 그러자 그는 눈을 정치로 돌려 정치벤처에 올인하고 있는 중이다. 안철수의 정치벤처가 성공하는 순간, 대한민국의 정치는 실제로 조선왕조 시절로 돌아간다. 기술벤처는 그에게 오직 정치벤처를 위한 수단일 뿐이다.

이찬진과 더불어, 기술벤처를 조금 성공하여 이름을 날리면 그를 기화로 정치벤처로 진로를 바꾼 예이다. 실제로 안랩주식 농간으로 2만원 이하의 주식이 십여 만원으로 폭등하며 요요를 하는 탓에 피눈물 쏟은 개미투자자들이 많다. 정치벤처를 척결하려는 노력 대신, 그 것을 최대로 이용하고 있다. 안철수는 실제로 대한민국에게 가장 해롭고 비애국적인 존재라고 나는 생각한다. 글쟁이로서 양심을 걸고 하는 이야기이다.

심상근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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