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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인터넷에는 나찌가 없다

현실과 유사한 인터넷의 통치룰 제정의 필요성

인터넷이 국경을 넘어 전 세계인들 간의 새로운 사이버 공동체가 될 것이라 꿈꾸던 시절이 있었다. 이러한 꿈을 실현하기 위해 미국의 존 페리 발로우는 1990년 전자 프런티어 재단을 창설하여 사이버 독립 선언문을 발표했다. 사이버 공간을 그 어떤 국가권력과 자본으로부터도 지켜내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인터넷을 순수한 독립공간으로 만들겠다는 발로우의 후원자들은 마이크로소프트와 선마이크로시스템 등 IT 대기업들이었다. 인터넷에 국가의 법과 제도가 도입되지 않았을 때, 가장 큰 이익을 얻을 거라 판단한 집단이 바로 IT 대기업들이기 때문이었다.

이는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거대 포털사의 저작권침해 등이 문제가 될 때, 적극적으로 포털사를 도와준 쪽은 이른바 진보적 시민단체들이었다. 심지어 한 유력 시민운동가는 공개토론회에서 “시민단체와 포털이 손을 잡고 인터넷의 표현의 자유를 지켜야한다”고 주장해 파문이 일기도 했었다. 그가 말한 자유가 실질적으로 포털사의 돈벌이만을 위한 자유라는 점을 그는 꿈에도 모르고 있을 것이다.

인터넷은 애초에 학자들 간의 학술적 교류를 위해 고안되었다. 그러다 검색, 메일, 블로그 등 인터넷의 기초분야부터 사업이 시작되었다. 인터넷에서 상품과 돈거래가 가능해지니 거래의 안전을 위해 법과 제도가 도입되었다. 그리고 그 법과 제도는 각각의 국가마다 달랐다. 필연적으로 미국, 중국, 한국 등의 인터넷은 각국의 환경에 따라 다르게 발전된 것이다.

결과적으로 존 페리 발로우의 순수한 사이버 공동체의 꿈은 좌절되었다. 전 세계의 모든 나라는 인터넷을 자국의 관습과 법에 따라 관리하고 있다. 또한 기업가치가 100조원이 넘는 초대형 인터넷기업들도 탄생했다. 인터넷에도 국경이 있고, 각국의 통치원리가 있으며, 실물 경제가 있었던 것이다.
인터넷에도 국경이 있다는 뜻은 인터넷이라는 공간이 하나의 새로운 사이버 영토적 성격을 지닌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사이버 공간의 활동은 현실의 연장이다. 인터넷에서 뉴스를 보고, 은행거래를 하고, 상품을 사고, 교육을 받고, 배우자를 찾는 등, 현실의 행위를 사이버로 옮겨서 하고 있을 뿐이다. 이렇게 자국민들이 경제와 문화활동을 영위하는 인터넷공간의 안전성을 위해 정부가 적절한 법과 제도를 도입하는 것은 당연한 의무이다.

하버드 법대의 잭 골드스미스 교수는 <인터넷 권력전쟁>이란 책에서 미국 최대의 경매 사이트 이베이의 성공은 미국 정부의 철저한 상거래 관리 덕택이라고 분석한다. 이베이 역시 초기시절 법규 없이 자율적으로 사업을 진행시키고자 하였다. 그러나 사기성 경매가 급증하자 이베이는 사업의 존폐의 위기를 맞았었다. 이때부터 미국 정부가 위법행위 등을 자국의 법에 따라 처벌해주었기에 수많은 네티즌들이 이베이에서 안심하고 경매를 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프랑스의 시민단체들은 야후에서 나찌 관련 기념품이 거래되자 법적 소송을 통해 이를 삭제시켰다. 당시 야후 측에서는 “인터넷은 현실과 다르다”고 항변했지만, 프랑스 시민단체들은 “프랑스의 모든 영역에서 나찌를 찬양할 수 없다. 왜 유독 인터넷에서만 가능하단 말이냐”며 반박했다. 프랑스에서 해선 안 되는 일은 프랑스인이 접속하는 인터넷에서도 해선 안 된다는 너무나 간단한 논리였다.

한국에서는 최근 거대 포털사에 대해 독과점 및 언론권력 남용 등에 대해 비판 여론이 거세지고 있다. 독과점을 해소하여 현재 79조원의 한국인터넷경제규모가 100조 이상으로 성장할 수 있다면 정부는 당연히 공정경쟁을 위한 정책을 내놓아야 한다. 또한 대기업은 언론권력을 누리지 못하는 것이 한국 언론의 원칙라면, 인터넷재벌인 포털도 예외가 될 수 없다.

지금껏 한국의 인터넷 정책은 좌파신자유주의자들(?)이 주도하며 표현의 자유와 자본의 자유만을 지키는데 급급했다. 하지만 수많은 네티즌들이 포털에서 표현의 자유를 누리려다, 바로 그 포털과 경찰의 협조로 처벌받고 있는 점을 감안한다면, 그들은 결국 자본의 자유만 지켜준 셈이다. 인터넷은 표현만을 위한 단순한 미디어가 아니라, 정부, 기업, 가계 등 현실의 모든 요소가 개입되어있는 복잡한 사이버 영토라는 점을 그들이 간파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에서의 그릇된 일은 인터넷에서도 그릇된 일이라는 점만 알면 그리 이해하기 어려운 공간도 아니다.

* 조선일보 시론에 기고한 글을 수정보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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