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강성대국의 문을 열어제낀다는 북한의 허풍은 목전에 도달했다. 과연 북한은 김정은으로의 3대 세습이라는 전근대적인 정치결단을 안착시키고 고사 직전의 북한 사회주의체제를 재생산할 수 있을까. 리더십의 고갈, 재화의 고갈, 희망의 고갈이라는 '3대 고갈'에 직면한 북한의 속사정은 다급하기 그지없는 듯하다. 김정은 체제의 명분은 나름대로 체제전환을 통해 북한 사회주의를 복구하겠다는 것이다.
케네스 퀴노네스(Kenneth Quinones)가 지적한 대로 북한은 주체사상의 유연성의 확대와 '현대화' '적응' '재활' '복구'등의 이름으로 개혁·개방과 구분되는 '변화'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즉 주체사상은 '선군사상'이란 실천이데올로기 등장 이후 가치불변의 원칙에서 유연성을 암묵적으로 허락하였으며, 김정일에서 김정은으로 이어지는 3대 세습과정에서 당 지도부가 재편되면서 당과 군부의 이념적 재해석권의 범위를 넓혀주고 있는 것이다. '체제전환'이라는 표현을 쓰기에는 어렵지만 권력은 이동하면서 순화된다는 진리를 잘 드러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제 주체사상은 수성으로서 자기의 낡은 가치를 보존하려 하기보다 소폭적인 개방을 통해 자기실험을 거치고 보다 발전된 통치이념으로 거듭나야 하는 절박한 상황 앞에 서게 되었으며 3세대 지도자 김정은과 그의 참모들은 어느 정도 그 필요성을 공감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바로 이 점에서도 북한의 개방가능성은 드러난다고 할 수 있다.
2011년 6월에는 중앙당 계획재정부장을 맡고 있던 홍석형(2010.7~)이 해임되었다. 홍석형의 해임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알려져 있다. 6월 6일 정치국 확대회의가 열렸고, 여기서 김정일의 방중 결과에 대한 설명을 듣고 북·중 관계를 대를 이어 강화하기로 결의했다. 2000년부터 김 위원장의 7차례 방중 후 노동당이 회의를 열어 방중 결과를 논의한 것은 처음이었다.
이 회의에서 홍석형 당 비서가 직무 조정을 이유로 해임됐다. 홍석형은 함경북도당 책임비서(2001.7~2010.9)를 거쳐 2010년 9월 당 중앙위 비서, 당 정치국 위원, 당 중앙위 위원으로 승진했었다.
그의 해임 이유에는 세 가지 추정이 있다. 첫째, 북·중 경협 부진에 대한 책임 때문이라 추정되었다. 둘째, 홍석형은 이 회의에서 중국식 모델을 일부 수용하자고 발언했다가 중국의 첩자로 몰려 숙청되었다는 추측도 있다. 셋째, 중국에 간첩행위를 했다는 것이다. 북한 당국이 8월 초에 홍석형과 박남기의 간첩활동에 대한 ‘통보자료’를 만들어 각 도보위부 부부장 이상급 간부들에게 돌렸다 한다. 이 통보자료에 따르면 홍석형이 북한 내부 비밀들을 아들에게 넘겨주었고 라진·선봉에서 무역부분 사업을 하던 그의 아들이 중국을 오가며 중국 국가안전국 요원들에게 비밀을 전달했다는 것이었다.
1998년 농업담당비서 서관히가 ‘미제의 간첩’으로 몰려 처형되었던 것과 비교하면, 북·중 경협이 강화되고 있는 2011년에 홍석형이 ‘중국의 간첩’으로 몰린 것은 하나의 강력한 경고일 수 있다. 이미 알려졌듯이 2010년 9월 홍석형이 함경북도를 떠난 후 함경북도는 대대적 비사검열의 대상이 되었다. 평양시당 책임비서 후임에는 문경덕이 임명되었다.
문경덕은 2010년 9월에 당중앙위 비서, 당 정치국 후보위원이 되었다. 이태남 평안남도당 책임비서(2003.9?~2010.6)는 내각 부총리가 되었고 그를 대신하여 홍인범이 임명되었다. 황해남도당 책임비서였던(2005.6~2010.6) 김낙희는 내각 부총리가 되었고, 2010년 9월에 당정치국 후보위원이 되었다. 황해남도당 책임비서에는 노배권이 임명되었다. 그는 황해북도당 책임비서 겸 인민위원장(1998.9~2006.4)을 거쳐 2007년 3월부터 중앙위 부부장으로 있었다.
다음으로 2010년 9월 당대표자회를 거쳐 지방당 책임비서가 중앙당 보직을 갖게 된 경우이다. 최용해 황해북도당 책임비서(2006.4~2010.9)가 박태덕으로 교체되었다. 아울러 최용해는 당중앙위 비서, 당정치국 후보위원, 당중앙군사위원, 인민군 대장이 되었다. 김평해 평북도당 책임비서 겸 인민위원장(1997.9~2010.9)은 당정치국 후보위원, 당중앙위 비서, 당 간부부장이 되었다. 후임으로 이만건이 임명되었다. 함경북도당 책임비서 후임에는 오수용이 임명되었다.
2011년 1월 국가안전보위부 부부장이던 류경이 간첩죄로 처형당했다. 이와 함께 보위부 핵심 간부 30명이 처형되었다. 류경과 핵심간부 대량 숙청은 김정은의 국가보위부 장악을 위한 노력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2011년 3월에는 인민보안부장 주상성(2004.7~)이 해임되었다. 그는 평안남도 대동군 보안서장으로 철직(해임된 후 좌천)돼 근무하고 있다고 하며, 해임 명목은 북·중 국경관리 실패 및 김정일 열차사고 문책 때문으로 알려졌다.
어느 정도 상부구조에 대한 정비는 끝난 것 같지만 김정은 체제에는 경제의 고갈이라는 무서운 함정이 기다리고 있다. 또 등을 돌리고 있는 하층민과 중간층의 시선을 사로잡아야 하는 무거운 과제도 안고 있다. 2011년 세계를 뒤흔든 혁명의 바이러스가 북한에 '배반의 바이러스'를 유포시키고 있는 점도 세습의 골칫거리가 아닐 수 없다. 한 순간의 ‘반짝잔치’ 준비에 여념이 없는 평양 집권자들은 다가오는 2012년이 두렵기만 하다.
안찬일 논설위원<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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