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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연구 1. 당태종 (唐太宗)과 정관의 치 (貞觀의 治)

중국역사가들은 당태종을 5천년 중국역사에서 최고의 황제로 꼽는다. 가장 넓은 영토 (元이전)에 가장 찬란한 대당문화, 그리고 “정관의 치”라고 하는 혁혁한 치적을 남긴 장본인이 당태종이다.

당태종은 하늘의 축복을 받은 황제. 수양제 (隋煬帝)라고 하는 황음무도한 폭군으로부터 너무너무 많은 것을 배울 기회(?)를 가졌기 때문. 나라를 뒤흔든 대규모 토목공사, 사치향락에 빠진 사생활, 환관 · 간신에게 맡겨버린 국정, 큰 정부, 코드인사 ··· 수양제가 망해가는 과정을 보면서, 그를 반면교사 (反面敎師)로 삼아 그와 정반대되는 정치를 해서 크게 성공했다.

당태종은 수양제가 했던 대운하건설과 같은 대규모 토목공사를 금했다. 고구려 침공은 30만 대군을 동원해서 한번해보고 (수양제는 113만 동원), 실패한 후에는 깨끗이 단념했다. 사치향락을 경계하고 민생경제를 챙겼다. 정사는 자신이 직접 관장했다. 요즈음 같으면 문예를 진흥하고 (특히 시·문) 이벤트정치 · 포퓨리즘정치를 경계했다.

당태종의 진가는 작은 정부와 코드인사 타파에서 분명하게 나타났다. 태종은 정부가 커지고 관료가 많아지면, 국민의 부담이 늘어 난다해서 작은 정부를 지향했다. 당시 대당제국의 중앙정부의 관료수가 6백90명이었다는 기록이 나올 정도. 코드인사를 타파하고, 과거제도의 시행을 통해 천하의 인재를 널리 등용해서 중국 5천년 역사에 찬란한 정관의 치를 남겼다.

특히 자신의 형 (황태자) 건성 (建成)의 책사로서 틈만 있으면 자신을 죽이려했던 위징 (魏徵)을 간의대부 (후에 재상)로 기용해서 사사건건 자신의 잘못을 지적하게 하고 그의 간언을 받아들여 국사에 반영했다. 한번은 너무 참견을 많이 한다해서 위징을 죽이려했으나 문정왕후의 간언으로 살려준 일화를 남기기도 했다.

그는 또 물산을 장려하고 변방국가들과 교역을 늘려 국민을 잘살게 하고 편안하게 해주어 태평성대를 이루었다. 수양제가 당태종 (李世民)을 영웅으로 만든 것.


사례연구 2. 개혁 · 개방의 설계사 작은 거인 덩샤오핑 (鄧小平)

등소평은 중국의 공산화혁명과정에서는 모택동 (毛澤東)을 통해 정치적 리더십과 철학 · 통치방법을 배웠고, 문화혁명 이후에는 모택동의 실패를 통해 자신만의 독특한 지도적 이상을 실현해나간 3전4기 (三轉四起)의 부도옹 (不倒翁).

18년 동안 중국의 실질적 지도자로 군림하면서 개혁 · 개방을 통해 13억 중국 인구를 기아에서 해방시키고 중국을 세계의 공장으로 탈바꿈시킨 불세출의 영웅. 현대인은 영웅을 받들지 않은다는 명제를 깨고 중국현대사의 영웅으로 떠오른 사람이다.

등소평의 성공은 철저한 실용주의정책을 통해 개혁 · 개방정책을 일관되게 밀어붙였기 때문. 사회주의정치 기반위에 시장경제를 접목시켜 1국2체제 (一國二体制)를 도입하는 전대미문의 정치실험을 성공시킨 것.

문화혁명후 4인방의 몰락과 함께 등장한 등소평은 중국인민의 85%를 차지하고 있는 농촌개혁에 손을 댔다. 먼저 집단농장의 농민에게 3~4백평씩 자영 농지를 주어 경작케 했다. 단숨에 소출량이 5~6배씩 늘어나면서 세상을 깜작 놀라게 했다. 금방 인민공사가 폐지되었다.

다음은 도시경제체재의 개혁. 농촌 개혁에서 크게 성공한 등소평은 흑묘백묘론 (黑猫白描論), 즉 실용주의 경제정책을 내세워 개혁개방정책을 밀어붙였다. 검은 고양이면 어떻고 흰 고양이면 어떠냐. 쥐만 잘 잡으면 된다. 자본주의든 공산주의든 경제를 일으키고 중국인민을 잘 살게 하면 최고라는 것.

대외개방정책은 1단계로 심천 · 주해 · 하문 등 동남연해지역에서 실험적 경제특구설정 (1980~1984), 제2단계로 14개 도시를 연해개발도시로의 확대 (1984), 제3단계로 연해경제 개방구설치 - 선에서 면으로 확대 (1985~1989), 제4단계 전방위개방 (내륙지역까지 전면 개방)으로 확대해나갔다.

개방정책은 외자도입 (FDI - 외국인 직접투자)를 통해 중국의 경제개발을 추진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이과정에서 상당한 정도 문화와의 충돌이 있었다. 특히 1989년 천안문사태이후 중국사회전체가 표류한 상태에 있었다.

이런 표류상태를 타개하기위해 1992년 등소평은 우창, 심천, 주해, 상해 등을 시찰하면서 소위 남순강화 (南巡講話)에 나섰다. 사회주의와 시장경제 - 1국2체재를 유지하면서 외국인직접투자를 적극 유치하여 중국경제발전을 지속적으로 이끌어간다는 것.

동시에 거국적인 외자유치정책이 펼쳐졌다. 이때부터 우리나라 중소기업인들도 칙사 대접을 받아가며 중국진출에 나섰다.

등소평의 개혁개방정책은 몇 가지 특징을 갖고 있다.

첫째, 사회주의 이데올로기를 버리고 경제에서는 오히려 보수화하면서 철저하게 실용주의 노선을 추구 했다. 이에 따라 오늘날 중국의 경제 관련 규제는 우리나라의 4분의1 수준도 안된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One Stop Services가 된다)

둘째, 외자도입방식이 외국인직접투자유치방식을 택했다. 이점은 우리의 차관도입방식과 다른 것. 우리는 경제개발 초기 민족주의적 성향이 강하게 작용해서 차관(자본)따로, 기술 따로, 노하우 따로, 수출 따로 식으로 외자를 도입해서 외자관리가 복잡하고 낭비가 많았다.

그러나 중국은 외국인직접투자를 유치해 자본 · 기술 · 경영 노하우 · 비즈니스 네트워크를 패키지로 들여왔다. 아무튼 외국인직접투자는 요즈음 세계적 추세가 돼있다.

셋째, 행정기구와 경제체제의 개혁을 통해 개혁추진 간부들의 혁명화 · 연소화 · 지식화 · 전문화를 실현했다. 특히 이 과정에서 쓸모없는 문화혁명세대를 과감하게 도태시키고 (코드인사를 타파하고) 실용주의에 입각, 일하는 젊은이 · 전문가를 과감하게 발탁 기용했다. 이때 부성장 · 부시장 등 30대 · 40대 젊은 테크노크라트를 발탁, 행정관리체재를 일신했다.

넷째, 경제개발정책 추진방식이 우리나라의 새마을운동과 매우 흡사했다. 농촌개혁에서부터 시작한점, 하면 된다는 신념 (Can do spirit) 아래 외자도입과 경제개발에 국력을 기울었다. (최근 들어서는 한국의 새마을운동을 배우러 온다)

등소평은 천안문사태 무력진압 · 조자양등 자신이 선정한 지도자를 축출하는등 오점을 남기기도 했다. 그러나 당대뿐 아니라 후대의 지도자까지 키워내고, 중국 경제개발을 통해 세계사의 흐름을 바꿔놓은 현대의 영웅이다.

사례연구 3. 영국병 치료한 철의 여인 대처 (영국)

대처리즘, 영국병등 많은 유행어를 만들어낸 영국 최초의 여성 수상 - 마가렛 대처. 과다한 사회복지 지출과 노사분규로 멍들어가던 70년대 영국경제를 되살려낸 대처수상을 세계인들은 철의 여인이라 부른다.

대처의 가장 큰 업적은 영국병의 근원이었던 노사분규를 강력한 지도력으로 평정시킨데 있다. 그는 80~84년 중 4차례 노동법을 개정, 부당한 파업으로 피해가 발생했을 때는 노조 측에 배상책임을 묻는 초강경대책을 마련했다. 특히 영국의 고질병이었던 탄광노조와 대결에서 승리했다.

또 하나의 정책 성공은 경제부흥정책이다. 노동당정부 아래서 좌경화로 치닫던 경제운용시스팀을 시장경제체제로 회귀시키고, 국영화되어 있던 많은 사업을 과감하게 민영화했다.

대처수상은 영국이 IMF 체제로 들어서자마자, 비만증에 걸린 자기 몸에 먼저 메스를 댔다. 우선 중앙부처의 살빼기를 시작, 공무원 숫자를 1980년 70만명에서 1990년 56만명으로 줄였다. 공기업 종사자는 민영화를 통해 1백78만명에서 47만명으로 줄였다.

방대한 정부의 행정서비스를 민간에게 맡기는 넥스트스탭을 통해 군사우편, 고속도로관리, 기상대, 교도소, 여권발급 업무등을 공개입찰을 통해 민간에 이양, 예산을 크게 줄이고 서비스의 질을 높였다.

공공부문의 종사자는 대폭 줄였으나 민간부문에서 일자리가 대폭 늘어 실업율은 크게 떨어지고, 근로자의 실질소득은 20%나 늘었다.

대처수상은 말수가 적고 자신에게 엄격했으며, 솔선수범하는 지도자였다. 강한 리더십과 능란한 외교정책으로 성공한 세계지도자로 부상했다.

사례연구 4. 라인강의 기적 일군 에르하르트와 아데나워

2차 세계대전으로 독일은 철저하게 파괴되었다. 경제가 어려울 때는 좌파가 판치는 법. 당시 제1당이던 사민당은 국유화와 중앙계획에 따른 국가재건을 주장했고 기독민주당도 이에 동조하는 분위기였다.

이때 미국과 영국등 연합군 점령지에서 경제국장에 임명된 루드비히 에르하르트는 “강력한 사회적, 정치적, 도덕적 틀에 의해 유지되는 자유시장경제만이 독일의 생존과 번영을 가져다줄 수 있다”며 자유시장경제를 강하게 밀어붙였다. 그리고 히틀러시대의 유산인 가격통제를 풀어버렸다. 이조치가 독일재건의 계기가 되었다.
때마침 1949년 9월 총선거에서 아슬아슬하게 수상에 당선된 콘라트 아데나워는 에르하르트를 연방경제장관으로 임명해 14년 동안 함께 일하면서 라인강의 기적을 일구어냈다.

그러나 1970년대 들어 브란트수상이래 좌파정책으로 독일경제는 멍들기 시작했고, 해마다 약 900억유로 (약 120조원)를 동독에 투입해 생산성이 서독의 40%밖에 안되는 사람들을 부양하느라 지쳐 지금은 “유럽의 병자”라는 소리를 들어가며 경제의 활력이 크게 떨어졌다.

특히 노조의 힘이 너무 커져서 기업은 노동비용에 대한 부담 때문에 신규채용을 하지 않으려한다. 그리고 실업자들은 실업수당 · 사회보조금 때문에 일자리를 얻으려 하지 않는다. 그결과 독일의 실질 실업율은 18.8%나 된다. 지금 독일 경제는 좌파개혁으로 급격하게 무너져가고 있다.

례연구 5. 수정주의를 수정한 레이건과 클린턴

30년대 대공황을 극복하기위해 미국경제는 케인스의 수정자본주의를 받아들였다. 날이 갈수록 정부의 시장경제에 대한 개입의 폭은 커졌고 재정지출은 고무풍선처럼 불어났다.

마침내 70년대 들어 재정지출 확대를 통한 경제활성화정책은 한계에 부딪쳐 미국경제는 스태그플레이션이라는 중병을 앓게 된다.

80년대 초입에 대통령에 당선된 레이건은 아메리칸 르네상스와 공급경제를 내새워 시장경제로 회귀시키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했다.
과감한 감세 및 연방예산감축과 작은 정부의 실현, 과감한 규제철폐와 고질적인 노조파업분쇄 (콘트롤러 파업)를 통해 무너져 가던 미국경제에 회생의 발판을 마련했다.

부시를 건너뛰어 등장한 클린턴대통령. 다시 자유시장경제정책과 벤처 및 정보산업을 중심으로 이른바 신경제를 일으켜 미국역사상 최장의 경제상승기록을 세웠다. 클린턴은 고질적인 재정적자를 털어내고 균형재정을 실현했으며, 작은 정부를 실천하려 노력했다. 신경제의 성공에 힘입어 추잡한 섹스스캔들에도 불구하고 재선에 성공했다.

사례연구 6. 성공한 지도자 · 실패한 지도자

국민소득 1만달러를 달성하는데 일본은 100년이 걸렸다. 미국은 180년, 영국은 200년이 걸렸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61년부터 97년까지 불과 36년 만에 해냈다.

한국에서 국민소득 1만달러 설계자는 박정희 전대통령. 그래서 그는 비명에 갖지만 성공한 지도자로 역사에 남아있다.

박정희 모델을 따른 싱가포르의 리관유, 말레시아의 마하티르, 중국의 등소평도 성공한 지도자에 속한다.

이에 반해 러시아의 고르바쵸프, 폴란드의 바웬사는 실패한 지도자에 속한다. 경제를 살려내면 비록 독재자라 하더라도 (정치에) 성공한 지도자가 되고, 경제에 실패하면 (정치에) 실패한 지도자로 낙인찍히고 만다. (장기적으로 보면 경제가 정치를 결정한다.)

최근에 석유의 나라 두바이를 관광산업의 나라로 개조한 두바이의 지도자 셰이크 모하메드가 주목을 받고 있다.

셰이크 모하메드는 현실을 냉철하게 진단하는 통찰력, 도전과 모험정신으로 미래를 내다보고 발전상을 머리에 그릴 줄 아는 상상력, 불가능은 없다는 자세로 일사천리로 밀어붙이는 실천력 등 리더십 3대 조건을 고루 갖춘 지도자라는 것.

모하메드는 ① 리더십이란 국민이 자신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라고 규정하고, 행정규제철폐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 ② 인재양성에 총력을 경주하고 있다. 특히 리더십은 기초부터 단계를 밟아가며 차근차근 몸에 익혀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리더십 훈련과정을 거치지 않은 지도자는 문제가 있다는 것. 권위주의적 리더십을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시대에 어떻게 적응시키느냐는 별개로 하더라도 최근 10여년간 두바이가 일구어낸 변화와 발전은 기적에 가깝다. 그도 역시 성공한 지도자의 반열에 서있다.

/미디어빅뉴스이사회 회장




제1주제 <코리안 르네상스가 나라 살린다> 발제 목록

[주 발 제]
* 정치-개혁-정책 확 바꿔야(박병윤:미디어빅뉴스 이사회 회장)
* 위기 뒤에 찬스 있다
* 경제 살리기와 나라 살리기
* 역사의 물줄기를 바꾼 성공한 리더십
* 사례연구-시대가 영웅을 낳는다
* 탈이데올로기-국민통합으로 위기 극복
* 사례연구-유럽의 고아가 유럽의 부국으로

[공동발제]
* 정책 실패...국민적 합의로 대안마련(윤계섭:서울대 경영학과 교수)
* 동북아 물류-비즈니스 중심지 건설 급하다(김윤형:한국선진화포럼 이사)
* 의회민주주의:원내중심 정당체제 구축 방안(김형준:국민대 정치대학원 부원장)
* 사회적 갈등-차별 극복, 국민 통합(함인희:이화여대 사회과학부 교수)
* 영남 산업화-호남 민주화세력 화합이 과제(구해우:미래재단 상임이사)
http://www.bignews.co.kr/news/article.html?no=68334"target="_blank">* 인터넷 문화 선진화, 청년층이 사회 움직인다 (여원동:(주)마이미디어DS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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