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전문가들은 2일 타결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해 협상 시작당시의 기대만큼은 아니지만 경쟁 촉진, 경쟁력 제고, 산업구조 고도화 등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달 줄 것으로 기대했다.
또 개방의 정도만을 비교해 협상 결과를 평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기대 효과를 제대로 얻기 위해서는 정부가 피해 분야에 대해 철저한 보완책을 시행하고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기업도 효율적이고 투명한 경영으로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한미 FTA 반대쪽의 전문가들은 "국민의 기본을 포기한 FTA로 결코 낮은 수준이 아니다"고 지적했고 "농업의 개방이 덜 됐다는 평가는 착시효과이며 FTA에 따른 개방 압력이 현재 수준으로 고정되는 것이 더 높아질 것"이라고 개방의 긍적적인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안심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박태호 서울대 국제대학원장 = 협상이 졸속으로 시작됐지만 협상이 어느 정도 진행되면서 김종훈 수석대표 등 우리 협상팀이 뚜렷한 전략을 세우고 침착하게 대응했다.
전반적으로 우리가 많은 부분을 개방했는데 '미국에 너무 많이 줬다'라고 생각하면 안된다. 협상 타결 이후에 손익에 포커스를 두는 것은 의미가 없다.
정부가 해야할 일은 FTA의 잠재적 이익을 극대화시키는데 있다.
FTA는 기업들에 일종의 규제완화와 같다. 기업들은 이번 기회를 100% 활용할 것이다. 정부는 기업들에 정보를 제공하는 역할만 하면 된다.
다만 피해가 예상되는 농업이나 서비스업에 대한 정부 지원은 빠를 수록 좋다. 무조건적인 지원은 안된다. 피해 산업과 계층이 더 나은 부문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한미 FTA 타결로 유럽연합(EU)과 일본도 우리와의 FTA에 더 관심을 기울일 것이다. 한미 FTA를 이들 국가와의 협상 카드로 사용한다면 유리한 입장에 설 수 있다. 중국과의 FTA는 저가 제품의 유입 등 중소기업과 농업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으므로 신중해야 한다.
◇조동근 명지대 사회과학대학장 = 한미 FTA 체결은 참여정부의 유일한 치적이다.
넓어지는 시장을 잘 활용해 FTA의 목적을 달성해야 한다. 국내 산업의 구조조정도 진행해야 한다. 농업의 구조조정 현황을 잘 봐야 한다. 국가만 믿고 있다 보니 변한 것이 없다. 피해가 생기는 산업에서 사람을 끄집어 내 다른 부문에서 쓸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타결한 FTA를 뒤집기는 힘들다. 이제는 받아들이고 위험요소를 줄이는데 힘을 모아야 한다. FTA가 새로운 기회가 될 수도 있지만 많은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협상 과정에서 아쉬운 점도 많다. 미국이 지적재산권이나 신약 최저가 보장 등을 들고 나올 것을 충분히 예상했어야 하는데 준비가 부족했다.
동시다발적 FTA 체결은 부정적이다. 미국과의 FTA의 득실을 충분히 지켜본 뒤 이를 보완하는 데 우선해야 한다. 장기적으로 중국과의 FTA는 필요하다. 중국과의 FTA가 체결되면 우리나라는 미국과 중국을 아우르면서 주도권을 쥐게 되고 동북아 허브도 가능해진다.
◇박현수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 애초 기대의 최대치를 달성했다고 보긴 힘들지만 실패도 아니다. FTA의 성공 여부를 평가하려면 우리가 무엇을 얻고자 했는 지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우리 목표에는 단기 교역 이익 뿐 아니라 개방을 통한 서비스 등 국내 산업의 고도화 같은 것도 있는데 그동안 여러 가지 이유에서 초점이 왜곡돼 논란이 있었다.
또 협상 후반부에 타결 못한 부분만 부각돼 `퍼주기 논란'이 있었다. 모든 부분을 감안하면 미국에 다 주기만 했다는 평가는 무리하다. FTA는 제로섬이 아니라 윈-윈(win-win) 게임이다.
또 산업구조의 개선이나 선진화라는 측면에서 보면 타결 이후에 이뤄지는 국내 규제, 역차별적 규제를 어떻게 개선하느냐가 관건이다.
기업들은 시장변화를 예측하고 전략적인 선택과 집중을 통해 경쟁력을 강화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김형주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 = 국내 반대 세력, 정부 내 의견 조율 미흡 등을 감안하면 협상단이 열심히 했다. 하지만 국민설득 등이 어렵다는 이유로 소극적으로 진행한 점은 아쉽다.
교육이나 의료 등 핵심 부분이 빠졌다. 이로 인해 당장 피해는 줄일 수 있지만 애초 목표했던 이익을 포기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긍정적인 것은 이번 협상을 통해 우리 경제 주체들에게 개방이 대세라는 신호를 충분히 준 점이다.
정부가 내놓을 대책은 융자나 폐업지원 등 피해 당사자에게 직접 금전적인 지원을 하는 금융보상을 최소화하는 대신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컨설팅, 지식.기술이전 등의 지원을 해야 한다.
중소기업이나 내수 기업들은 기술이나 자본이 약하면 미국 자본과의 제휴 등을 통해 업그레이드 해야 하고 생산규모에 경쟁력이 없으면 틈새시장을 노려야 한다.
◇이시욱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 = 교육, 의료, 회계 등 서비스의 큰 분야들이 논의되지 않았고 이에 따라 성과가 없어 아쉬운 면이 있다.
양국의 수치적 득실 만 따진다면 불평등 얘기가 나올 수 있다. 미국은 우리보다 많이 개방돼 있기 때문에 불가피한 면이 있다. 하지만 개방을 통한 경쟁 확산, 경제 체질 및 산업구조 개편, 경쟁력 향상이 진정한 목표라는 것을 고려해서 평가해야 한다.
한미 FTA의 효과를 얻기 위해서는 정부의 규제 개혁이 필요하다. 규제를 개혁해야 기업들이 자유로운 경영으로 경쟁력을 높일 수 있고 외국인 직접투자 유치를 확대할 수 있다. 현재 세계 경제 전체의 수출은 1980년대 중반에 비해 3배 정도 늘어났지만 외국인 직접투자는 14배 정도 증가했다. 외국인 직접투자 유치가 중요하다는 의미다.
기업들도 효율적이고 투명한 경영을 통해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 정부에 기대거나 현실에 안주할 수는 있는 상황이 아니다.
◇정태인 전 청와대 국민경제비서관 = 모든 것을 포기한 FTA다. 협상이 연장된 이틀 동안 미국의 자동차나 섬유 부문 관세를 조금 인하받기 위해서 우리 국민의 기본권, 건강권에 해당하는 제도를 전부 포기하면서 억지로 FTA를 타결한 것이다. 미국이 '유전자변형 생물체'(LMO)를 한국에 팔 때 규제를 완화한 것이나 광우병 우려가 있는 뼈있는 쇠고기를 다시 논의하도록 한 것은 그 대표적 예다.
이번 FTA는 결코 낮은 수준의 FTA가 아니다. 공공서비스가 빠졌고 단계적인 관세 인하를 합의했다고 해서 낮은 수준의 FTA라고 하는데 FTA 강도를 얘기할 때는 지적재산권이나 서비스, 투자 등이 포함됐느냐가 중요하다. 특히 서비스, 투자 등의 '최혜국대우(MFN)' 적용 시점을 미래로 하면서 FTA가 현재로 고정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갈수록 개방 압력이 더 강해진다. 한미 FTA보다 더 좋은 조건이 자동적으로 적용되므로 이번 FTA는 전세계 FTA 중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가장 강력한 FTA다.
수출입 쪽에서 우리나라가 얻을 것은 별로 없다고 본다. 비관세장벽이 무너지면 미국의 압력에 의해서 우리나라의 법과 제도를 바꿔야 할텐데 이를 선진화로 볼 것이냐, 교란 요소로 볼 것이냐는 가치판단의 문제다.
농업에서 개방이 덜 됐다는 것은 착시효과다. 워낙 기대수준을 낮춰 놓아서 그렇게 보이는 것이다. 쌀은 원래 논의 대상이 안되는 거였고 오렌지도 계절관세는 별 효과가 없을 것이다.
◇김상조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소장 = 한미 FTA 협상 결과를 대내와 대외로 나눠보면 우선 대외협상이 일방적으로 퍼주기였다는 지적은 다소 과장된 것 같다. 그러나 우리가 수지균형을 맞췄다거나 우리가 이익을 본 협상이라고 평가하기에는 미흡하다. 우리가 확실히 얻어야 한다던 무역구제 조치나, 개성공단, 섬유 부문 등에서 일정 정도 우리측 의사가 관철됐지만 대부분 부대조건이 달려있다. 확실히 얻어야 할 부분에서 명쾌히 손에 건진 것은 없는 반면 우리가 양보한 것은 상대적으로 크다. 대외협상 측면에서 우리가 조금 손해보는 쪽으로 결과가 나왔다.
더 심각한 것은 대내협상이다. FTA를 통해서 얻고자 하는 중요한 목표가 개방을 통해 소비자 후생을 증가시키고 국내 제도 및 경제질서를 선진화한다는 '외부충격론'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개방에 따른 충격이 가져올 사회 양극화를 제어하고 구조조정을 원활하게 추진할 수 있는 제도 개혁이 필요하다. 그 과정에서 이견을 조정하는 것이 정부 입장에서는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지난 1년2개월동안 협상 과정을 지켜본 결과, 특히 최근 1주일 동안을 돌이켜볼 때 정부가 내부 이해관계 충돌을 조정할 능력을 결여하고 있다는 것이 확인됐다. 내부 이해관계 충돌을 조정하고 이를 제도화해서 집행할 능력이 안 갖춰진 상태에서 FTA가 과연 소비자 후생을 증가시키고 제도화하는 계기가 될지 의문스럽다. 오히려 불확실성을 증대시켜 위험 요인이 될 가능성이 더 높다고 판단된다.
정부가 지금까지와는 달리 FTA 이행을 위한 구조조정이나 제도를 개선할 때 이해관계자들의 충분한 참여를 보장해 투명성을 확보해야 한다. FTA가 기득권층 보호를 위한 것으로 왜곡되지 않도록 제도를 엄정하게 집행해 형평성을 확보하는 것도 필요하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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