끔찍한 일이 일어났다. 아군 내의 조준사격에 의해 4명이 죽고 2명이 부상당했다. 군기가 강하기로 이름났다는 해병대에서 말이다. 이를 두고 개인을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삼는 군대식 마인드 자체를 문제 삼는 지적이 많음을 볼 수 있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이러한 마인드 자체를 단번에 바꾸는 일은 기대하기 어렵다고 본다. 전쟁이라는 특성상 어쩔 수 없느냐는 논리의 장벽에 가로막힐 것으로 예측되기 때문이다. 그보다 강한 군대로 거듭나기 위한 것에서도 이번 총기사건은 문제가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군대가 건강한 개개인의 군인을 만드는 목적을 가지고 있는 것임을 생각한다면 총기 사건을 일으킨 군인을 만들어 낸 군은 건강한 정신을 가진 군인을 만드는데 실패한 것이다. 건강한 군인을 만들기 위해서 저마다 다른 신체적 능력과 특성을 가진 개개인을 똑같이 힘든 훈련을 받게함으로써 자신의 몸에 적합지 않은 훈련을 똑같이 받은 군인은 부상에 취약해지는 결과를 낳는다. 진정 강한 군인들을 만들려면 자신 개인의 신체적 능력치를 알고 그것에 맞는 훈련을 통해 점점 더 강한 군인으로 만들어가는 것이 맞을 것이다. 스포츠 팀의 트레이너와 같이 개인마다 부족한 근기능을 보완하고 단련하고
6.2지방선거가 끝나고 민주당은 마치 승자인냥 득의양양하고 여당은 패자인냥 충격을 먹은 모습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민주당이 승리했다고 득의양양할 상황일까? 각본을 좋아하는 언론들이야 스토리가 태동되는 것에 혈안되어 침을 질질 흘리며 다니는 속성을 가지고 있기에 그들이 만들어 내는 스토리에 자신이 실제보다 더 좋은 미사여구로 묘사되었다고, 자신을 그것과 혼동해선 안된다. 마치 김좌진 장군이 전쟁을 한번 이겼다고 해서 일본제국주의에 도전하는 경쟁자급로 올라섰다라고 여길 수 없는 것과 같다. 정당의 목표는 정권 획득이다. 곧 대선승리이다. 그러나 민주당은 대선 승리에 필수불가결인 서울 경기를 잃었다. 그리고 무소속 친노후보가 경남지사에 당선되었다 하더라도 대선 때 그 표가 민주당으로 가리라고는 상상하기 어렵다. 그렇게 본다면 민주당은 작은 전투는 이겼을지 모르나 전쟁에서는 패하고만 것이 된다, 한나라당은 여당의 입장으로 도전을 받는 방위하는 입장에서 적의 도전을 효과적으로 쉽게 물리치지 못하고 궤멸적 타격을 입은 후에야 도전을 물리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전쟁에서는 이긴 것이다. 상대로부터의 공격에 의한 피해를 최소화하는 목표는 달성하지 못했을지언정 사회
1. 낡은 담론이 새로운 생명의 싹과 그 원천(감성)을 자르는 한국 정치 평론계 화합에서의 으뜸을 자임하던 한화갑 전 민주당 대표가 신당창당을 강력히 추진하고 있다는 일설이다. 혹자들은 그의 나이를 들어 회의적인 시각을 표출한다던지, 역사적으로 소임을 다했다는 식으로 평가를 하여 부정적 시각을 보이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필자의 소견으로는 바로 그러한 고정관념과 편견이야 말로 사회와 역사의 발전을 위해 혁파되어야할 고정관념 껍데기 다름 아니다. 이미 의학기술의 상상을 초월하는 발달로 연령에 의해 인간의 육체와 정신적 능력이 크게 후퇴를 하는 점은 막을 수 있게 되었고, 동시에 현대 정신문명의 발전은 바로 정신의 힘도 놀랄 정도로 키움으로써 중요한 것은 바로 현 시대에 이러한 복이 내려진 것을 받아서 사용해 내었는지 아닌지가 관건인 것이다. 단순히 숫자가지고 자신의 판단을 서술해 내는 것은 낡은 정신이고 낡은 언어라는 낡은 도구에 실려나오는 낡은 정신의 공기를 보게 된다. 마치 자연의 거친 마신에 굴종하고 섬기며 정복되어 사는 운명론자의 퇴폐적 정신과, 자연을 이해해내고 이와 좋은 관계를 맺고 악수하는 현대문명의 진보한 정신이 이루었고 또 그려내는 정신,
필자는 작년 진중권씨의(이하 진선생) 약한 정신건강상태에 의한 편격(偏激)된 인식을 조정해주고자 하는 시도를 한 적이 있다. 그러나 최근 또다시 그의 사고형태를 보면 다시금 정신건강이 우려스러운 인식을 노정하기에 다시금 짚어줌으로써 도움을 주고자 한다. 최근 진씨는 자신의 블로그에서 세종시 관련하여 친이 세력이 세종시 수정안을 주장하는 모습을 강박증에 의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http://blog.daum.net/miraculix/18263844)동시에 수정안이 당론으로 바뀔 가능성도 작으며, 당론이 되도 국회를 통과할 가능성도 제로에 가깝다고 한다. 이는 국회의 의석을 구성하는 집단들의 현황 때문이라고 한다. 그렇기에 이는 수학적 명증성을 가질 정도로 진리라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수학적 명증성을 가질 정도의 확실한 것임에도 자꾸 도전하는 것은 바로 비합리적인 욕망이라는 것 때문에 그러한 것이며, 이렇게 비합리적인, 현실 속에서 이루어질 가능성이 없는 것에 자꾸 집착하는 것은 강박증이라고 진단한다. 진씨의 이러한 결론에 도달한 인식을 더듬어 보고자 한다. 이는 꽤나 중요한 것인 것으로 다시금 여겨지게 된 이유가, 그의 글에 동조하는 사람이 많기
최근 세종시 수정안이 발표되고 일각의 사람들에게 더 나은 대안으로 나오게 되어 다행으로 여기게 함과 동시에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게 하고 있는 반면, 어떤 이들은 보다 극렬한 반대를 하게 만들고 있다. 정부가 발표한 수정안에 따르면 주먹구구식 억지로 떼어다 나누어 줌으로써 맞추려 하던 원안에서 미래에 대한 희망을 통한 강한 동기부여와 적극적 감정을 들게 하는 것으로 훨씬 진보적이고 앞선 정책으로써 나타난 것으로 필자는 평가한다. 1. 보다 미래지향적이고 전략적으로 필요한 지역 먼저 수정안을 대략 들었을 때 필자가 생각난 것은 각각의 특징이 서로 유기적인 연계를 이루며 돌아가는 구체적인 구조가 그림으로써 그려진다는 것이다. 곧 기존의 대전의 카이스트와 대덕 단지 등의 산학협력 체제의 장점을 살리는 것으로 새로운 성장동력이 될 산업과 연관 기술로 혁신적 성장동력이 있는 도시이다. 동시에 이 대통령이 줄곧 주장해 온 하향평준화를 낳는 토양, 질서에 머무는 상태에서 국소적 손대는 것이 아닌, 과학고 같이 좋은 학교를 여럿 만드는 것을 통한 기회의 제공이다. 여기에는 이공계의 최고 명문인 카이스트의 장점을 더욱 살리는 쪽으로 나가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래서 대학도
한국사회에서 소위 G세대의 출현은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G세대들이 한국사회의 내일에 어떠한 영향을 끼칠 것인가라는 점에서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이러한 사회적으로 광범위한 관심은 G세대에 포함되는 20대 초반 정도의 젊은 세대들이 얼마나 큰 비율로 존재하는가 등의 의심을 일으키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20대 초중반의 인구 중 G세대에 분류될 수 있는 사람이 어느 정도의 비율이냐를 논하는 것은 중요한 부분을 놓치고 있다고 본다. 필자는 오히려 한국사회에서 G세대의 등장은 일종의 필연이다라는 점을 말하고 싶다. G세대들이 20대 초반의 인구 중에 얼마나 많은 비율로 존재하느냐는 사실 보다, 중요한 것은 G세대적인 특성을 가진 사람들이 한국사회의 변화에 얼마나 큰 영향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느냐가 더욱 중요한 문제라고 본다. 이는 마치 김옥균 등의 개화파가 당시 조선인구 비율로 볼 때 극소수이나, 역사상 영향을 평가하기에 언급되는 것과 유사하다. 아니 그보다 훨씬 명확한 현상으로 드러나고 있다. 곧 분명한 것은 G세대라고 일컬어지는 부류의 사람들이 과거 어느 때보다도 존재한다는 사실이고, 이들이 한국사회의 긍정적 변화에 영향을 줄 수 있느냐가
필자는 이전에 이명박 대통령의 높은 지지율은 어떤 방면에서 그의 앞선 태도에서 기인한 것임을 지적한 바 있다. 그와 경쟁상대를 자처하는 사람이라면 적어도 이러한 현실을 외면하고 승리하길 기대하면 안된다. 이는 한마디로 운동경기에서 많은 부분에서 경쟁자에 딸리지만 그러한 자신의 뒤처지는 게이지는 무시하고 반칙하고 때쓰고 하는 것으로 이기길 바라는 것 다름 아니다. 원래 거대한 잠재능력을 가졌던 타이슨이 결정적으로 몰락한 계기는 바로 경기의 룰을 어긴 핵이빨 사건이었음을 상기하자. 아무리 자신의 불우한 청소년기나, 억울한 재판 등으로 자신의 처지를 불쌍하게 보이려 오버까지 하고, 잠재능력 하나로 희망을 갖도록 어필하고자 하여도, 경기에서, 경쟁자에 비해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지 않고, 그러다 보니 이빨로 물어뜯는 떼를 쓰다 결국 스스로 퇴출당한 것이다. 그러다 결국 타이슨은 여자랑 경기하겠다느니 하며 스스로 코믹스런 발언이나 할 정도의 처지로 전락하고 말았다. 마치 여자같이 약한 정당의 대표 심상정한테 마저 같잖은 도전을 받은 처지로 전락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처지와 같이 말이다. 이와 관련 글은 필자의 빅뉴스 글 08년11월 25일 글 참조) 당시 심상정씨의
1. 필자는 광화문 광장을 만들려는 생각이 나오기 전부터 최소한 광화문에서 남대문까지는 공원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줄곧 주장해온 사람이다. 어쨌건 오세훈 시장은 광화문 광장을 만들었고, 초기에 이곳에 가보았을 때 역시나 예상했던대로, 서울사람 미의식을 600년간 지배해온 인왕산 북악산 둘러싸고 있는 산맥이 하나로 쏟아져 내려오고 있는 압도적 스펙타클한 장관을 볼 수 있었다. 이 아름다운 자연의 압도적 미감을 창출하는 기운이 그동안 콘크리트 벽에 갇혀 숨어있다가 한번에 터져 쏟아내려오는, 마치 청계천 물길이 터져 흐르듯, 그동안 갇혀 있던 미감의 댐이 터져 흐르듯 스펙터클한 아름다움이 압도하며 내려오는 기운을 느낀 것이다. 이 거대한 기운이 영혼이 삭막한 권력자들에 의해 옭아메어진 삭막한 영혼의 한국인의 정신을 크게 물들이고, 삶의 기운을 불어넣어주길 바랬었다. 이러한 자연과 문화 유산이, 곧 이러한 서울이라는 공동체가 가지고 있는 독특한 미감이라는 자원이, 일제시대까지만 해도 존속하다가, 개발독재시대에 서울인의 심령 속에서 삶속에서 유리되고 사라져버린 것이었다. 그러나 광화문 광장이라는 것을 통해 서울사람으로서 당연한 권리인, 그리고 조상의 유지인 이 전통적
필자는 이미 작년부터 민주당은 좌익정당이라는 이미지에서 탈피하고 강한 이미지를 키우라는 조언을 했다. 이 강자라는 이미지는 절대 극렬 투쟁의 이미지로는 안 된다고 한 것이다. 그러나 민주당은 개념도 모호한 ‘서민’정당이라고 하며 ‘중산층을 위한’ 정당이라고 한다. 이런 말장난 같은 것으로 뭔가를 이루어 보려 하는 것은 결국 진짜 현실 속에서 서민을 잡은 정당에게 강펀치를 한대 한대 맞아나가는 것 밖에 되지 못하는 미약한 포지션에 머무르게 된다. 정책적으로도 민노당이니 진보신당 같은 한줌 밖에 안되는 약한 정당에게 얻어맞는 포스를 보일 뿐 아니라, 한나라당이 서민에 조금만 잘해줘도 이는 민주당에게 또다시 강한 펀치로 작용하는 것이다. 현재 이러한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민주당은 직시하고 전략을 새판에서 아주 다시 짜지 않는 이상, 돈키호테 같은 정신을 기반으로 한 집단 국참당에게도 참담한 모습을 보이게 되지나 않을지 걱정해야 하는 판이다. 민주당은 스스로 신자유주의 비판을 극복하지도 못하고, 신자유주의에 대한 호도에 그대로 직격탄을 맞는 당이다. 한나라당이야 국민들이 그런 방면에서 기대조차 하지 않으니 걱정할 것이 없는 정당이다. 그리고 도덕을 이용한 가치판단이
필자는 지난 글에서 루저 사건을 어떻게 봐야하는지 언급했다. 당시 이 사태에 대한 반응들에 대해 필자는 핵심을 집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사건 발생 후 일주일이 지난 후 각 언론사에서 루저발언이 나온 것에 대한 칼럼들을 각계 지식인들로부터 받아 게제한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어떤 글도 핵심을 집지 못하고 있고 오히려 글에서 보이는 세계관에 있어서 상당한 왜곡과 위험성을 노출하고 있음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너무 보편적이라 언급하지 않고 넘어갈 수 없다. 사태가 이 정도이면 이제 우리사회도 그만 스스로의 정신수준에 대해 겸허한 인정이 가장 필요하지 않나 한다. 이 사실 인식을 자꾸 외면하고 엉뚱한 세계 몇위의 경제대국이니 가장 급속한 경제성장을 보였다는 식의 근거로 사실인식으로부터 도피하려는 정신의 기제를 이제 논리적 연결이 부족한 것임을 인정하고 사실을 직시하고 배워야 한다. 그렇지 않고 루저발언사건이 재발되는 것은 막을 수 없다. 1. 먼저 김호기 교수(이하 김교수)의 글을 보자. http://news.joins.com/article/aid/2009/11/17/3542402.html?cloc=olink|article|default김교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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