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얼마 전 원더걸스와 한국의 비보이들의 처지와 기회를 비교하며, 범죄적이라 할 정도로, 민주적 가치에 반하는 비극이 존재함에도, 인식조차 안되는 민주국가 한국사회의 상황을 그린바 있다. 그래서 필자는 인간의 감성emotion이란 것을 가진 인간으로써, 그들이 어떠한 방법을 써서라도, 강렬한 정서적 힘을 이용해서 그 어떤 외부의 가치를 다 뛰어넘어 자신의 감성emotion을 최고로 두고 현실 속에서 가능한 모든 방도를 통해 자신들의 성정을 잘 발산, 발전, 분출시키기를, 그러한 장을 만들어 내기를 바라는 마음을 적었었다. 1. 여기에 공교롭게 얼마 되지 않아 자타가 공인하는 천재 음악인 유진박의 황당한 처지가 공중에 드러나게 되었다. 이 가슴이 터질 것 같은 답답함에 결국, 가장 신기하게 느껴지는 것이 유진박씨는 왜 인간으로써 그러한 열악한 환경을 스스로 털고 나오지 못하였는가?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던지, 어디든 문명한 세상으로 갔더라면, 자신의 능력으로 충분히 존경받으며 자신의 성정을 한껏 만개하며 인정과 존중 속에서, 아름다운 삶을 살았을 것이지만 말이다. 그러나 어쩐 일인지, 자신의 잠재능력은 고사하고 기존의 가지고 있는 능력조차도 펼치지도 인정받지
최근 무엇이 진정 진보인가라는 화두를 보고, 진보라는 개념이 정치적 성향과 이념을 뛰어넘어 그 지평을 확대하게 되는 충돌을 볼 수 있다.여기에 현 이 대통령의 행적을 보면 그의 지지자와 비지지자를 넘어서 희망을 보게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지난 정권 당시, 비지지자들 뿐만 아니라 지지자들로도 하여금 깊은 혐오와 실망을 낳았던 노 정권과 비교했을 때 상당한 차이점으로 다가오는 부분이다. 오히려 자칭 개혁` 진보라는 사람들이 개혁 진보적인 정책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듯한 느낌을 낳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노정하고 있음이 보여져, 비로소 진보라는 것의 보다 정확한 의미는 무엇인가 하는 것의 회의적 사고를 부추기는 현실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1. 먼저 이 대통령은 자신의 임기 말 쯤 되면 면접만으로도 대학에 갈 수 있는 상황을 만들겠다고 했다. 대통령의 이 발언은 매우 파격적인 것이라 하겠다. 너무 파격적인 것이라 오히려 두려움을 느끼며 그래서 대중 속엔 오히려 부정적으로 여기는 정서가 감지된다. 특히 여권에서 일하는 사람, 행정부에서 일하는 사람마저 이를 보다 온건한 것으로 상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것으로 해석하여 전달하려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1. 원더걸스는 미국 대중문화 시장의 메이저를 노리고 진출했다기 보다, 틈새시장을 노렸다고 볼 수 있겠다. 일단 노래 가사에서부터, 종교적 보수적 색채가 나는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것이고, 그들의 춤 또한 그리 섹시 어필함을 드러내지 않는다. 집단으로 같은 춤을 추며, 그 춤도 그리 액티브 하지 않지만 뭔가 순애보적인 감성을 강조하는, 이는 특히 좀 보수적인 아시안들과 종교적 색체가 강한 사람들, 그리고 솔직한 이야기로 말 잘들을 것 같으며 바람피우지 않을 것 같은 아시안계 여자를 좋아하는 성향의 남성들에게도 어필할 수 있을 것 같다. 오죽하면 쇼에서 카메라맨이 잡은 앵글이, 춤추는 이의 속옷이 보일 정도로 잡았겠는가,(필자는 여기서 역시 미국하며 칭찬했더랬다.) 원더걸스의 몸 동작 자체가 그리 요란하고 활동반경이 넓지 않으며 제한적이란 이야기다.2. 이번에 이들을 보니 가장 먼저 떠오르는 가수는 중국계의 코코 리였다. 홍콩에서 태어난 미국계 중국인 코코 리와 뮤직비디오도 같이 촬영한 바 있던 박진영은, 코코 리의 미국 시장에서의 한계를 잘 인식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아예 코코 리와는 아주 다른 종류의 상품으로 원더걸스를 만든 것이다. 이러한 시도는 미국에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국민이 자유민주주의적이지 못하면, 자연 자연스러울 일과 마찰이 일어날 것이다. 지금 한국사회에서 이슈가 된 몇 가지 일들을 바라보면, 바로 이점 때문에 쓸데없는 소모적 마찰과 갈등이 일어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만약 이러한 마찰이 일어나기 쉬운 정신상태를 계속 유지하도록 책동하고, 그러한 왜곡된 정신에서, 자연스러운 일과도 마구 마찰이 일어나 부정적 정서가 쌓여 이러한 편협한 정서 속에 빠져있도록 획책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러한 사람을 인식하고 가려내는 것은 진정 자유민주주의가 진흥되고 그 기제가 제대로 작동하는데 반드시 필요할 것이다. 곧 망치가 아이에 손에 쥐어지면 정서적인 것에 휘둘려 아무 곳이나 마구 치고 부수고 하여 시끄러움이 많을 것이다. 아이에게 이러한 정서를 불어넣고 사역하는 권력, 그리고 아이의 수준으로 정신이 머무르고 사악한 어른의 말을 잘 듣게 되는 수준으로 소조하는 권력을 인식해야 함은 필수이다. 1. 먼저 요새 일어나는 시끌벅적한 일들을 보면, 큰 틀에서 모두 이것이 원인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첫째, 무료급식 예산 문제로써, 치사스럽게 애들 밥 가지고 싸우고 까탈부린다는 식의 인식이 있다. 필자는 정확히 예산
지난 주말 오마이 뉴스에 메인 최상단 헤드라인 기사에 “수입쌀이 어머니 아버지 보다 더 좋더냐” 라는 기사가 올라와 있던 것을 보고, 그 동안 차일피일 미루어 왔던 4대강 사업을 통해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문명사적 전환을 통한 희망에 대해 적어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다시금 떠오르게 되었다. 모든 문명의 시작은 강의 치수사업을 통하여 생겨나는 것을 볼 수 있다. 곧 강 유역에서 농경을 시작하다가 자연의 거대한 힘에 인간이 종속되어 버려 사라져 버리는 것을 끝을 내고, 이 자연의 거대한 파괴적 힘에 정복되지 않고 이를 막음으로써 지속가능한 발전의 모델을 세우게 됨으로써, 곧 자연을 컨트롤 할 수 있게 되고,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게됨으로써 문명이 생기고 발전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강을 이용한 인류가, 모든 문명이 지속되어 온 것은 아니고 중간에 사라지기도 하는 등 명멸을 거듭해 온 것이 또한 인류문명사의 또 다른 특징이다. 곧 강을 이용하고 각종 자연 요소를 이용하며 문명을 이루었지만, 그것이 한계에 다다라 또 다시 자연의 거대한 힘에 정복당해버려, 곧 더 이상 지속가능하지 못한 개발 모델로 인해 사라져 버린 문명 또한 수없이 많았다는 사실이다. 그러면 현
필자가 누차에 걸쳐 진교수의 정신에 안정을 찾아주기 위한 진단과 처방을 보여주었으나, 오히려 이를 더 무시하고 그 반대로 나오는 행동을 오마이뉴스 26일자 “MB는 유통기한 30년 지난 ‘우파의 답례품’ 제목의 기사 글에서 볼 수 있었다. 필자가 지적했지만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그 인식에 가치를 부여하여 그 가치에 종속, 지배당하는 습태를 오히려 발전시키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곧 그러한 인식에 부합하는, 자신이 원하는 자료만 수집해 와서, 그것을 신봉하여 왜곡된 정서적 인식이 지배하는 세상을, 자신의 내면세계에서 더욱 발전시키는 것은 도퇴와 퇴폐로 인도되는 길을 택하고 또 대중에 선전하고 있다는 것이다. 재언하지만, 진교수가 가지고 온 자료들이 얼마나 순수하게 사실을 반영하고 있는 것인지, 또 그와 반대되는 또 다른 자료들은 없는지 경각심을 가지고 고찰해 봐야 한다. 특히나 어떤 자료가 사람의 진술이라면, 그 의견은 얼마나 객관적인 정신의 소산물인지 또한 경각심을 가지고 바라보아야 된다. 집단지성은 사람 숫자로만 되는거 결코 아니다. 정치적 입장이 아무리 다르다 해도 꼭 같이 정서적 논리와 욕심에 빠져, 어떤 특수한 목적에 의해 사실을 왜곡하여 바
진교수는 스스로의 인식에 한계로 인해 정신적 고통을 받고 있다고 보인다고 필자는 지난 19일의 글에서 지적한 바 있다. 진교수가 솔직하게 오마이 뉴스에서 자신의 사고를 나열해 보여주니, 인식 상에 어떠한 한계가 있는지 지적하기 쉬워서 진교수의 피할 수 있는(preventable)정신적 짐을 해소해 주고자 한다. 진교수는 이 대통령의 범주오류를 지적한다. 진교수가 지적한 범주오류는 사물을 잘못된 범주에 집어넣는 경우에 해당한다. 그러나 범주에 갇혀서, 사물의 범주의 한계를 넘어서 존재하고 있는 부분을 인식 못하는 것도 범주에 의한 오류에 해당할 것이다. 진교수가 바로 이러한 인식을 드러내놓고 있지 않나 한다. 진교수는 필자와 비슷한 인식을 하고 있기에 반가왔었는데, 곧 현대 미학은 현대 자본주의 상품시장 속에도 녹아들어 발전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진교수의 블로그 6월 15일의 글에서 찾아볼 수 있다.)이렇게 미학, 인문학적인 것, 보다 강력한 정신과 고결한 영혼의 소산이 비단 과거 인문학 혹 철학이라는 영역 안에서만 발전하는 것은 아님을 인식하고 있기에 반가왔다. 조금만 더 넓게 관찰하면, 사실 이러한 미학이나 철학 등은 비즈니스계에서, 시장을 바탕에 두
어떤 분야에서든지 전문가, 장인master가 되기 위해선 태도가 결정적 요인이 된다고 하겠다. 일단 좋은 태도를 가져야 할 터이다. 곧 사업가가 되기 위해선 모든 방면에서 신뢰를 추구하는 태도를 가져야 하고, 학문을 탐구하는 길을 가면 학자로써의 미덕이 되는 자질을 갖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하며, 도기공이 되기 위해선 흙 하나도 세심하게 감각하려는 태도를 갖는 것부터 필요하다고 해야겠다. 이렇게 각 영역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써 필요한 미덕을 갖는 태도부터 가져야하고 그 분야에서 “~쟁이” 정도의 전문가가 되려면 그러한 태도가 습관이 되버려야 한다. 그래서 좋은 습관이 그 영역에서 한 사람의 성공을 가져다준다. 1. 빅뉴스에서 진중권 교수의 전문성 등 낡은 한국적 권력형 지식인들의 전문성을 비판한데는 다음과 같은 문제가 있는데서 비롯된 것으로 본다. 곧 필자가 지난 글에서도 지적했듯이, 진교수는 이명박 대통령의 머리에는 “삽 한 자루” 들어있는 수준이라고 평가하는데 학문을 업으로 삼는다는 진교수가, 만약 학계에 이명박 대통령의 정신이 어떠한지 결론을 도출하야 발표하는데 “삽 한 자루” 정도의 결론을 도출한다면, 엄청 두들겨 맞을 것임을 진교수 스스로도 알고 있을
한국사회는 강력한. 철권통치, 피의 통치를 획책했던 공포의 행정부를 가졌던 비극적 역사를 겪었었기에, 현재의 국민들이 법치와 현 정부에 대해 이성적으로는 이해가 안되는 신경증적 두려움과 거부 반응도 이해가 안가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과거의 음영 속에서만 계속 안주하려 하면, 발전과 진화로 나아오지 못하는 것이다. 이러한 어두운 정신의 몽매 속의 야만사회도 자신의 인식의 틀 속에 머물고자 하면 밝은 문명으로의 진화발전은 없는 것이다. 그래서 문명은 이들과 진정한 소통을 하려하고 손 잡아 주는 것은 그래서 매우 중요하다. 바로 이러한 간극에 지식인들과 언론, 시민 단체들이 들어가서 그 간격에 다리를 놓아주고 그들을 문명적이고 이성적, 합리적 정신의 밝은 빛으로 이끌어 주어야 할 것이나, 한국의 낡은 지식인들은, 그들도 야만적 여성적 문명의 자식들 아니랄까봐, 군중의 비합리적인, 왜곡된 정서 속에 오히려 안주하게 하고, 발전시키도록 하며, 이를 통해 강렬해진 집단 군중, 피해의식의 강렬한 감정, 이 거대한 감정의 힘을 자신의 영향력, 권력을 도모하는데 사용하는 것이다. 문명을 거부하며 도망가고, 문명에 적대적 태도를 취하는 야만인들, 그들을 몰살할
작년 이 맘때의 광우병 촛불 시위 때 필자는 민비의 예를 들며 당시의 군중심리를 묘사한 바 있다. 바로 조선민중의 삶의 공간에 있어서 가장 파괴적인 역할을 한 민비가, 죽으니까 갑자기 자신들의 사회 공동체를 대변하고 지켜줄 국모님께서 돌아가셨다며, 자신들의 삶을 파괴하고 위협하는 자들을 되려 외부로부터 찾고, 직접적 관계가 없는 상대로부터 찾고, 혹사건의 발생의 원인과 관계가 명확치 않은 상대로부터 찾는 모습을 보이는, 곧 모호한 정신상태에 안주함으로 공포로부터 벗어나려하는 것이었다. 이는 기본적 사회윤리체계를 갉아먹은 암적인 역할을 했던 민씨 세력의 주축 인물인 민영환이 을사조약 후 자결하자 갑자기 나라의 기둥이 사라져버린 것 같은 일이 일어난 것이나, 조선이 망하자 자결을 통해, 사실 소용없는 자살이라는 행위가, 그 사람을 숭상받아야 하는 그 무엇이 되게 하고, 그 중 많은 이들이 정작 조선을 무너지게 한 크고작은 원인이 된 사람들이지만 그것이 다 없어지고 갑자기 나라를 위하는 위인과 같이 된 것에서도 같은 현상이다. 그 뿐만이 아니라 원래 조선문명은 제사문명으로 제사지내느라 사람을 착취하고 개인의 성장을 가로막고, 집단을 매우 비효율적으로, 귀중한 자원
요새 노 전대통령의 자살로 온 나라가 매우 생명을 귀중히 여기고 그래서 애도하는 듯한 분위기 속에 있는 듯하다. 특히 정치권과 언론의 태도는 원려없이 대중심리 영합적인 비루함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현 한국의 전 사회적으로 깊은 애도의 감정적 물결에 빠져있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그것이 진정 생명에 가치를 부여하기 때문은 아니다. 비유하자면 아이들의 삶과 죽음에 대해 민감한 것 같은 것이지, 혹 세균에 민감한 장과 같은 것이지, 진정 삶, 생명을 귀히 여기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태도로 여겨지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삶과 생명을 사랑하는 것은, 감정적으로 강렬한 상태에 있음으로 이것을 드러내는 것이 아닌, 기술적인, 기능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곧 건강한 삶이란 세균에 지나치게 민감하여 두려움을 갖고 깊은 혐오를 들어내며 무균상태를 만들려 함으로 깨끗함을 높이는 것이 아닌, 어떻게 좋은 균을 잘이용하고 또 나쁜 균에는 면역이 되며 나쁜 균들이 몸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게 하느냐 될 수 있느냐의 보다 넓고 정교한 기술적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 전대통령의 자살과, 그의 통치기간중 유사한 비판으로 자살한 사람들을 생각했을 때 인터넷에선 주로 남상국 전 대우건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신당이 스스로 낡은 단어인 “좌파”라는, 낡은 개념의 틀 속에서 나온 정의 속에 머물고자 애쓰는 단체들은, 스스로 혹시 낡은 개념의 틀 뿐만이 아닌 자신의 태도마저 역사 속에서 부작용이 심히 방대하고 낡아 폐기처분된 저열한 태도로 움직여 지는 것은 아닌지 신중히 고찰해 봐야 한다. 진교수는 개혁적 지식인 중에서도 스스로 자신은 왼쪽임을 줄곧 주장해온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 정치적 스탠스야 어떻든 상관하지 않지만, 만약 좌의 스탠스를 좋아하면서, 이미 낡아빠져 세상 사람들이 매우 조심해 하는, ‘좌’쪽 사람들의 낡은 악습을 그대로 이용한다면, 그 좌쪽 스탠스는 위험한 것이라 하겠다. 이러한 상황에서, 2월10일 진교수가 진보신당 게시판에 올린 글을 보고 안타까움으로 현기증이 일어났다. 바로 그러한 낡은 좌쪽의 구태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음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를 알고 그런 것인지, 일부러 그런 것인지, 아니면 모르고 그런 것인지 모르겠으나, 논리적 사고가 뛰어난 진교수임을 고려했을 때, 필자의 직감으로는 좋지 않은 쪽에 더 무게가 실리기에, 그와 반대되는 수준을 더욱 인식하면 할수록 비례해서 현기증이 일어났다. 그 글의 면면을 보자.
진중권 교수는 그간 사회에 예지가 넘치는 글들을 수년간 제공해 왔기에 필자 또한 그 혜택을 입은 바 있어 내심 고맙게 여기는 사람이다. 그러나 인터넷 기반 사회가 되었고 이번 미네르바 사건에서 보았듯이 지식이라는 힘을 가진 사람이 인터넷이라는 파급효과가 큰 도구와 연결되어, 짧은 시간에 거대한 증폭효과를 내는 도구와 결합했을 때 그 힘의 파괴력은 훨씬 거대해 진다는 점을 반성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점은, 미네르바의 경우를 통해 볼 수 있었다. 힘을 가진 모든 이가, 특히 직접적으로, 지식을 가진 누구나가 명료히 인식해야 하는 점이다. 이는 미네르바가 구속당한 처지가 안타깝고 억울하게 느낀다 해서 그러한 윤리적 의무를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보았을 때 진교수의 아고라에서 26일과 28, 양일 찬성수 1위에 어떤 반대 답글도 달리지 않은 글은, 그러한 기준으로 보았을 때 문제가 없는지 반성해 볼 필요가 있다. 특히나 28일의 경우 찬성수 대비 반대 투표수가 100분의 1(반대21/찬성2300여)도 되지 않는 보기 드문 순도 높은 찬성을 받은 글이기에 더 그렇다. 먼저 진교수는 백분토론에서도 이미 인정한 바 있는데, 미네르바가 허위사실을 유포한 것은
미네르바 구속 문제로 인해 세간이 떠들썩하고 그렇지 않아도 추운 날씨에 사람들의 마음을 더 싸늘하게 만드는 것 같다. 이 문제로 인해 많은 논쟁이 오고가는 것 같은데, 사실, 사실에 근거한 판단과, 객관적인, 강력한 정신의 힘 단계에 있어서 초급 파워만 이용하여 이 문제를 바라봐도, 지금과 같이 시끄럽게 떠들고 소모적 논쟁이 벌어질 필요가 없다. 이는 기본적인 도덕과 윤리에 대한 기본 인식만 있어도 충분히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사안이라 본다. 먼저 강력한 정신의 힘의 필수적인 강한 근골격과 근육과 같은 이성의 힘으로 이 사안을 다루어 보자.1. 먼저 미네르바는 죄가 있느냐 없느냐 이다. 이는 두말할 필요도 없이 죄가 있다. 결정적으로 국가에서는 공문을 발송한 일이 없는데, 저급한 국가 권력에서나 할 짓(사기업의 외환업무에 대해 국가가 공문을 발송한 행위)을 했다고 하였으므로 허위 사실을 유포한 것이 맞다. 만약, 그런 권고를 구두로 했다라고 말 한 정도면, 사실에 부합하므로, 그 부분에 대해서는 법적으로 죄가 없다. 흔히 혹자는 그러면 이명박 대통령도 주가 3000간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냐고 주장하지만, 이는 본질적으로 다른 사안이기에 재고의 가치가 없는
1. 세상을 보면 거대 자본이 작은 자본보다 항시 더 낮은 윤리를 보였다는 것은 전혀 근거없고,(반면 그렇지 않은 경우가 너무도 많다) 국가, 공공의 힘이 사적 자본보다 항시 더 윤리적이라는 것 또한 전혀 근거 없으며(반면 그렇지 않은 경우가 너무 많다.) 오히려 더 나은 모습을 보여준 경우 또한 매우 많은 것이 분명한 현실임이고, 우리는 이 사실로부터 일단 도망가선 안된다.곧 항시 거대 자본이 비윤리적으로 나올 것이라는 생각은 잘못되었고, 그들의 윤리는 이러한 외부 변수에 의해 그렇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는 것이다 한국의 많은 정신들은 일반적으로, 방송법 찬반을 막론하고, 거대 권력과 거대 자본이 항시 비윤리적일 수 있다는 공포에서 모두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 이는 이 세상이 남성에 대한 이해가 너무 일천한 것과 같이, 권력자들에 대한 이해 또한 집안에서 남성의 공포스러울 수 있음을 주입받은 어린 소녀의 본능적 공포를 보는 것 같아, 언제 사회 속에서 발전적 관계를 통해 인생 최대의 복을 창출할 수 있는 스킬이 생기고, 이것이 모터가 되어 아름다운 세상을 창조해내는 수준에 오를까 하는 우려가 들었다. 2. 자본권력이 비윤리적인 태도로 변모하게 되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