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콘텐츠는 일본 ‘산케이신문(産経新聞)’이 2015년 1월 3일자 ‘하타 이쿠히코, 니시오카 쓰토무 대담 “아사히신문의 오보는 일본에 대한 명예훼손”(秦郁彦 × 西岡力 対談 「朝日の誤報は日本の名誉毀損」)’ 제하로 게재한 대담 기사이다. 위안부 문제 진상규명에 가장 혁혁한 공을 세운 하타 이쿠히코(秦郁彦) 전 니혼(日本)대학 교수와 니시오카 쓰토무(西岡力) 도쿄기독교대학 교수(당시)가 앞서 일본 아사히신문의 위안부 문제 오보에 대한 정정, 사죄건에 대해서 분석, 논의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한일위안부합의가 이뤄지기 1년 전쯤 일본 지성사회의 위안부 문제 논의를 잘 알 수 있다. 산케이신문 측의 허락을 얻어 전문을 게재한다. (번역 : 미나모토 히카루) 하타 이쿠히코, 니시오카 쓰토무 대담“아사히신문의 오보는 일본에 대한 명예훼손”(秦郁彦 × 西岡力 対談 「朝日の誤報は日本の名誉毀損」) 일본 정부가 ‘고노담화(河野談話)’를 검증하고 아사히신문 사장이 사임하는 등, ‘위안부 문제’가 큰 전환점을 맞았던 2014년. 이제 해가 바뀌어 올해(2015년) 조선반도 정세나 북조선에 의한 일본인 납치 사건에서도 과연 진전이 있을 것인가. 제30회 ‘세이론(正論)’ 대상
※ 본 서평은, 일본의 영자신문인 ‘재팬포워드(Japan Forward)’ 2018년 8월 19일에 게재된, 미국 마이애미대학(University of Miami) 정치학과 교수인 준 투플 드라이어(June Teufel Dreyer)의 기고문 '[서평] '위안부와 전쟁터의 성' 하타 이쿠히코([BOOK REVIEW] ‘Comfort Women and Sex in the Battle Zone’ by Ikuhiko Hata)'을, 재팬포워드 측의 허락을 얻어 완역게재한 것이다. (번역 : 요시다 켄지) [서평] '위안부와 전쟁터의 성' 하타 이쿠히코([BOOK REVIEW] ‘Comfort Women and Sex in the Battle Zone’ by Ikuhiko Hata)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일본, 한국, 그리고 중국 사이의 여러 이슈 중에서 아마 위안부 문제보다 더 논쟁적인 이슈는 없을 것이다. 당시 일본군의 책임 문제는 물론, 현 일본 정부의 책임론에 대해서도 갑론을박이 지금도 격렬히 이어지고 있는데, 특히 위안부의 정확한 숫자, 그리고 전쟁 당시와 전쟁 이후 그녀들이 처했던 상황에 대해서 다들 커다란 견해 차이가 있다. 위안부 제도 자체를 부정하
반중·반공을 지향하는 시민단체인 ‘공자학원 실체 알리기 운동본부’(이하 공실본)와 ‘중국공산당(CCP) 아웃’이 지난 24일 오전 11시, 부산시 서면 영광도서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공자학원 추방을 촉구했다. 두 단체는 앞서 언론사에 배포한 보도자료를 통해 “공자학원은 중국 공산당이 공자를 내세워 공산주의와 모택동 사상을 선전하고 주재국의 정보를 수집하는 선전, 첩보 공작기관”이라며 “대한민국에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39개의 공자학원이 준동하고 있다”고 밝혔다. 단체는 “공자학원은 중국 교육부가 관리한다고 하지만 실질적으론 중국공산당 통일전선공작부가 지휘, 통제하고 있다”며 “공자학원에 공자는 없고, 공자는 재물과 권력을 탐한 소인배에 불과하며 모택동이야말로 위인이라고 가르친다”고 주장했다. 이어 “중국에 우호적이었던 독일, 프랑스, 캐나다에서도 공자학원을 추방하고 있다”며 “일부과 호주에서도 정부가 나서서 공자학원의 실체를 조사하며 추방을 준비하는 중”이라고 전했다. 이들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대한민국 교육부와 시‧도 교육감, 공자학원을 수용하는 22개 대학 및 16개 중‧고등학교에 공자학원 폐쇄를 촉구하는 한편, 공자학원연합회 측에 공개 토론을 제안할 계
※ 본 기고문은 하타 이쿠히코(秦郁彦) 전 니혼(日本)대학 교수의 것으로, 일본 유력 월간지 ‘분게이슌주(文藝春秋)’가 1996년 5월호에 ‘왜곡된 나의 논지(歪められた私の論旨)’ 제하로 게재한 것입니다. 원 글은 위안부 문제 관련 유엔 인권위에서의 쿠마라스와미 보고서 발표(1996년 2월경)를 맞아, 해당 쿠마라스와미 보고서에서도 위안부 문제로 전문가로 언급됐던 학자인 하타 이쿠히코 교수가 보고서에서 자신의 전문적 의견이 왜곡돼 실린 사연을 담았습니다. 미디어워치가 분게이슌주 측과 하타 이쿠히코 교수의 허락을 얻어 번역게재합니다. 아래 사진과 캡션은 미디어워치의 것(도표 제외)입니다. (번역 : 요시다 켄지) 왜곡된 나의 논지(歪められた私の論旨) 올해(1996년) 2월 6일부터 7일에 걸쳐, 일본의 각 신문들은 일제히 종군위안부 문제에 관한 라디카 쿠마라스와미(Radhika Coomaraswamy) 유엔 특별보고관의 일본 정부에 대한 권고에 관해서 보도했다. 엄격하게 말하면, 권고의 표제는 ‘전시(戦時)의 군사적 성노예제 문제에 관한 보고서(Report on the Issue of Military Sexual Slavery in Wartime)’(일변련(日
하타 이쿠히코(秦郁彦) 교수는 위안부 문제 진상규명과 관련해 일본에선 니시오카 쓰토무(西岡力) 교수와 더불어 쌍벽을 이루고 있는 지식인으로 평가받는다. 니시오카 쓰토무 교수가 ‘피해자’역 김학순 등의 거짓말을 최초로 폭로하며 ‘선발투수’로 나섰다면, 하타 이쿠히코 교수는 ‘가해자’역 요시다 세이지 등의 거짓말을 확정하며 ‘마무리투수’로 나섰다고나 할까. 이번에 미디어워치 출판사에서 번역 출간된 하타 이쿠히코 교수의 역작 ‘위안부와 전쟁터의 성性’(원제 : 慰安婦と戦場の性)은 원래 일본 신초샤(新潮社)에서 1999년도에 출간된 책으로, 20세기가 끝나기 전에 일본내 위안부 문제 논의를 완전히 종결지어버렸다고 평가받는 클래식 중의 클래식이다. 실제로 위안부 문제의 최대 핵심 쟁점인 ‘강제연행’설이나 ‘성노예’설과 관련해선 2000년대 이후로 한일 양국 학계에선 더 이상 특별히 새로운 논의도 없는 것이 사실로, 이에 이 책의 내용은 20여 년이 지난 지금, 특히 한국 독자들에게는 마치 ‘신작’의 느낌이 나는 ‘고전’처럼 받아들여질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껏 우리 한국인들은 과거 일본인들이 그 어떤 사죄로도 지울 수 없는 잘못을 지질러 이에 위안부 문제를 일으켰다고
※ 본 콘텐츠는 ‘위키피디아 일본어판(ウィキペディア 日本語版)’에 게재된, ‘가라유키상(からゆきさん)’ 항목을 번역한 것이다(기준일자 2022년 9월 7일판, 번역 : 박재이). 가라유키상 (からゆきさん) 가라유키상(からゆきさん, 唐行きさん)은 일본 큐슈(九州)에서 쓰던 말로 19세기 후반 주로 동아시아, 동남아시아에 건너가 일한 일본인 노동자를 가리킨다. 해외 진출은 알선업자(제겡(女衒, 뚜쟁이))가 중개했다. 목차 1 어원 2 개요 3 가라유키상의 노동 조건 4 기타 5 관련 문헌 1 어원(語源)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통치하던 시기에 지금의 오사카 도톤보리가와(道頓堀川) 북쪽 강가에 유곽이 형성되었다. 그로부터 5년 후인 1589년(덴쇼(天正) 17년)에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일본 최초의 유곽으로 간주되기도 하는 교토 니조야나기초(二条柳町)의 유곽을 만들었다. 오사카와 교토의 유곽은 17세기 전반에 각각 신마치(新町) 유곽과 스자쿠노(朱雀野)(시마바라(島原)유곽)로 이전했다. 쇄국 시대가 되자 1639년(간에이(寛永) 16년) 무렵에는 서양과의 유일한 창구로 번영한 나가사키(長崎)에 마루야마(丸山) 유곽이 탄생했다. 에도 막부는 ‘시마하라의 난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으로 대만과 중국의 군사적 위협이 고조되는 가운데, 대만의 부총통이었던 뤼슈렌(呂秀蓮, 뤼슈롄)이 “펠로시 의장이 대만에 방문한 것은 정당한 행위였다”며 “중국 정부가 화를 내거나 제재를 가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지난달 초 한국에 방문했던 뤼슈렌 전 부총통은 당월 11일 본지 황의원 대표이사와의 단독 인터뷰를 진행하며 이같은 의견을 전했다. 이날 뤼슈렌 전 부총통은 “만약 미국의 중요 인사들이 중국 정부의 허락을 받고 다른 나라를 방문해야 한다면, 마찬가지로 중국의 중요 인사들이 다른 나라를 방문할 때도 미국 정부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 건지 의문이 든다”고 지적했다. 뤼슈렌 전 부총통은 중국이 대만을 위협하고 있는 현 사태에 대해 “대부분의 대만 사람은 중국의 통제를 받고 싶어하지 않는다”며 “중국 공산당은 70년 동안 대만을 위협했지만 대만 사람들은 이에 대해 마음의 준비가 됐기 때문에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대만 사람들은 민주국가로서 ‘민주’라는 방패가 있기 때문에 중국의 위협에 대해 긴장하거나 무서워하지 않는다”면서도 “하지만 대만 사람들 중에서도 70%는 중국과 평화로운 관계를 유지해야 할
서울에 특파원을 파견하고 있는 대만중앙통신사가 변희재 미디어워치 대표고문이 주최한 ‘제4차 한국-대만 국교정상화 선언식’을 대서특필했다. 대만의 연합뉴스 격인 중앙통신사(CNA, 中央通訊社)는 지난 24일 저녁, “한국-대만 단교 30주년, 한국 시민들이 모여 ‘한국-대만 국교정상화’지지(台韓斷交30年 韓國民眾集會支持恢復邦交)” 제하 기사를 게재했다. CNA는 “한국과 대만이 1992년 단교한 이래로 올해 30주년을 맞았다(台灣與韓國在1992年斷交至今滿30年)”고 전했다. 그러면서 “한국언론사 미디어워치(Media Watch)는 4년 연속 한국-대만 국교정상화를 지지하는 활동을 전개하고 있으며, 한국 정부와 대만-일본 간 정상적인 교류와 협력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韓媒MediaWatch連續第4年發起支持台韓恢復邦交活動,呼籲韓國政府與台灣、日本正常交流合作)”고 보도했다. 이어 CNA는 “1992년에 한국은 갑작스럽게 대만과 단교를 한 후 중국과 수교를 맺었고, 이후 한국-대만의 관계는 소원해졌다”며 “최근 한국과 중국이 수교 30주년을 맞이하여 기념행사를 열고 있는 상황 속에서, 여전히 한국-대만 국교정상화를 바라는 한국 시민들이 주한타이베이대
한일관계 개선을 가로막는 최대 장애물인 위안부 문제. 여기에 도사린 거짓말을 지속적으로 고발해온 한국의 ‘안티반일(Anti-反日)’ 시민단체가 일본 현지를 방문, 현지 시민단체와 함께 위안부상 전시 중단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어 한일 양국에서 화제를 모으고 있다. ‘위안부법폐지국민행동’(이하 국민행동, 대표 김병헌)은 지난 27일, 일본 아이치(愛知) 현 나고야(名古屋) 시에서 열리고 있는 ‘우리의 표현의 부자유전·그 후(私たちの『表現の不自由展・その後』)’ 전시장을 방문, ‘외국인참정권에 반대하는 시민모임’(대표 무라타 하루키(村田春樹)), ‘나고야애국클럽'(대표 이토 후지오(伊東富士夫)), ‘나데시코액션’(대표 야마모토 유미코(山本優美子)) 등 일본 시민단체들과 함께 전시장 바로 앞에서 연대 항의집회를 열고 ‘거짓과 증오의 상징물 소녀상 전시를 중단하라!’ 제하 성명서를 발표했다. ‘우리의 표현의 부자유전·그 후’ 전시장에는 현재 나흘 일정으로 조각가 김운성·김서경 부부의 위안부상이 주요 작품으로 전시되고 있다. 국민행동은 이날 성명에서 “단일 동상을 이렇게 많이 세우고 전시까지 하는 경우는 세계사에서 북한의 김일성·김정일의 동상에서나 그 유례를 찾아볼 수
변희재 미디어워치 대표고문이 한국과 대만의 단교 30주년을 맞아 8월 24일 오전 광화문역 6번 출구 앞에서 진행한 ‘제4차 한국-대만-일본 국교정상화 선언식’이 성황리에 마무리됐다. 3년만에 옥외 행사로 열린 이날 선언식은 황의원 미디어워치 대표의 사회로 진행됐으며, 변희재 고문과 조영환 올인코리아 대표 및 수십 명의 애국시민들이 참석했다. 앞서 2020년과 2021년의 제2, 3회차 선언식 행사는 차이나바이러스 확산으로 인해 실내에서 소규모로 열린 바 있다. 이날 선언식은 대만, 일본, 한국 3국의 국가가 차례로 연주된 데 이어 뤼슈렌(呂秀蓮, 뤼슈롄) 전 대만 부총통과 니시오카 쓰토무(西岡力) 일본 레이타쿠 대학 교수의 축사 영상으로 시작됐다. 뤼 전 부총통은 축사에서 “한국인들 중에서도 과거 대만과 국교를 맺으면서 만들었던 아름다운 추억을 떠올리는 분들이 많다”면서 “(이번 선언식을 준비해준) 미디어워치 독자들을 포함해서 대만과의 우호 관계를 바라는 모든 한국분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리며, 한국과 일본, 대만이 함께 민주국가로서 힘을 합쳐서 이 난관을 헤쳐나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니시오카 교수도 축사에서 “지금 우리 동북아시아의 가장 큰 적은 중국
[편집자주] 아래는 변희재 미디어워치 대표고문은 한국과 대만 단교 30주년을 맞아 8월 24일(수) 오전 11시, 주한대만대표부 인근인 광화문역 6번 출구 앞 세종로파출소 우측 인도에서 진행하는 제4회차 한국-대만-일본 국교정상화 선언식 선언문 전문입니다. 이하 대만-중국어 버전과 일본어 버전도 같이 공개합니다. [변희재 · 미디어워치 대표고문] 2019년 8월 23일, 저는 광화문 주한대만대표부 앞에서 제 1차 한국-대만 국교정상화 선언문을 낭독했습니다. 이는 제가 평소부터, 우리 한국이 중국과의 수교를 위해서 건국의 동맹국인 대만에 대해서 신의를 저버리는 수준의 갑작스런 단교를 했었던 것에 대한 반성과 성찰을 해왔기 때문에 이뤄진 일입니다. 특히 당시는 미국 트럼프 정권이 일본, 호주를 중심으로 인도태평양 전략을 구상하고 있어, 한국의 경우 일본과의 관계를 제대로 풀어내지 못할 경우 미국의 자유동맹 네트워크로부터 이탈할 위험도 있었습니다. 과거사 문제로 번번히 발목이 잡히는 일본과의 관계 회복 이전에 일단 대만과의 관계부터 회복시키는게 우선이라 판단했던 것입니다. 그 이후 우리의 행사 소식을 들은 대만의 뤼슈렌(呂秀蓮, 뤼슈롄) 전 부총통으로터 행사와 관
한국과 대만이 단교한지 30주년을 맞이한 해인 올해, 제4차 한국-대만-일본 국교정상화 선언식이 오는 24일(수) 오전 11시, 주한대만대표부 인근인 광화문역 6번 출구 앞 세종로파출소 우측 인도에서 열린다. 변희재 본지 대표고문은 한국 정부에 대만과의 재수교를 요구하면서 3년 전인 2019년 8월 23일, 주한대만대표부가 위치한 동화면세점 앞에서 한국-대만 국교정상화 선언식을 미디어워치 독자모임 회원들과 함께 사상 최초로 개최했다. 한국이 단교와 함께 주한대만대사관에 철수를 통보했던 날인 27년전 1992년 8월 24일을 기억하자는 의미에서였다. 선언식은 이후 매년 8월 24일을 전후로 연례행사로 진행되면서 다음해인 2020년부터는 역시 최근 한국과 국교 파탄 위기를 겪고 있는 일본도 국교정상화 대상국으로 추가, 한국-대만-일본 국교정상화 선언식으로 확대됐다. 이번 4회차 선언식은 방역조치가 완화되면서 모처럼 옥외행사로 진행될 예정이다. 재작년과 작년의 2회차, 3회차 선언식은 차이나바이러스 확산으로 인해 미디어워치 스튜디오와 덕수궁 상연재에서 소규모로 진행됐었다. 이번 행사를 위해 대만 측에서는 뤼슈렌(呂秀蓮) 전 대만 부총통이, 일본 측에서는 니시오카
지난 17일, 차이나바이러스 사태 이후 3년 만에 한국을 찾은 니시오카 쓰토무(西岡力) 일본 레이타쿠(麗澤)대학 객원교수가 한국의 ‘안티반일(Anti-反日)’ 지식인들과 위안부 문제를 주제로 장시간 소통의 기회를 가졌다. 이승만학당, 반일동상진실규명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 위안부법폐지국민행동(국민행동), 미디어워치는 공동으로 19일 오후 5시, 서울 퇴계로 이승만학당에서 니시오카 쓰토무 교수 초청 간담회를 개최했다. 이날 간담회에는 약 30여 명의 안티반일 인사들이 참여, 니시오카 교수와 위안부 문제에 대한 한국내 뜨거운 관심을 보여줬다. 본지 황의원 대표이사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행사에는 니시오카 쓰토무 교수를 비롯해서 이영훈 이승만학당 교장, 주익종 이승만학당 교사, 류석춘 전 연세대학교 교수, 이우연 낙성대경제연구소 연구위원, 김병헌 국사교과서연구소장, 정안기 전 서울대경제연구소 객원연구원, 주옥순 엄마부대 대표,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 소장, 손기호 한국근현대사연구회 회장, 진명행 작가 등이 참석했다. 우선 니시오카 교수는 모두발언에서 능숙한 한국말로 “여기 계신 분들은 제가 한 분씩 찾아가서 만나뵈야 하는 분들인데 이번에 이렇게 한꺼번에 만나는 자리
일본 보수 매체가 대만해협의 긴장상태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한국 내 분위기를 4면 톱기사로 다루면서 미디어워치가 3년전부터 매년마다 진행해오고 있는 한국-대만 국교정상화 행사에 대해 상세히 소개했다. 일본 ‘세카이닛포(世界日報)’는 지난 16일 우에다 이사미(上田勇実) 서울 특파원의 기사 ‘대만 유사시에 신경을 곤두세우는 한국(台湾有事に神経尖らす韓国)’에서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 의장의 대만 및 한국 방문 이후 한국 내의 분위기에 대해 상세히 보도했다. 세카이닛포는 서두에서 지난 2019년 8월에 한 보수계 시민단체가 한국과 대만과의 국교정상화를 요구하는 집회를 열었다고 설명한 후 한 집회 참가자가 연설에서 “대만은 작은 나라이지만 최근, 중국 공산당에 용감히 맞서고 있습니다. 한국도 일본, 대만, 홍콩, 인도 등과 연결된 민주주의의 최전선, 보루가 되어야 합니다”라고 주장한 사실을 소개했다. 이어 매체는 당시 다른 집회 참가자가 “대만은 6.25 당시 한국에 자금과 식량을 원조해줬습니다”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1992년 8월에 중국과 국교를 수립하고 대만과 단교했을때, 당시 서울에 있던 대만대사관을 새 중국대사관으로 쓰겠다는 이유로 대만 측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