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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광산, 강제노동인가 아닌가’, 한국에서 처음 열린 공개토론회 성황

이우연 연구위원 “사도광산과 관련 노예노동의 기억은 사실 아니다” … 1차 자료와 데이터는 오히려 사도광산이 비교적 좋은 조건이었음을 드러내고 있어

국내 반일 세력 사이에 근래 가장 화두가 되고 있는 일본 사도광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추천 문제와 관련, 사도광산에서 실제로 강제노동이 있었는지 여부를 검증하는 세미나가 한국에서 처음으로 열렸다.

대한민국 역사연구회는 지난 31일(목) 오후 2시부터 5시까지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 410호에서 한국근현대사연구회와 프리덤뉴스의 후원으로 ‘사도광산 강제노동의 진실’을 주제로 한 공개토론회를 열었다. 사회는 이명박 정권에서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위원회 위원장을 지냈던 박인환 변호사가 맡았다.




행사는 이영훈 이승만학당 교장의 기념사로 시작됐다. 이 교장은 첫 일성으로 “이 자리에 모이신 분들은 광야에서 외치는 선지자들”이라고 하면서 이번 토론회가 한국에서 열린다는 사실 자체에 큰 의미를 두는 기념사를 했다.

기념사를 통해 이 교장은 “대만, 호주를 포함한 동북아 자유 공동체를 건설하고 자유통일을 이룩하면서 공산 체제를 해체하는 일에 있어서 열쇠를 쥐고 있는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라며 “그러나 이 나라가 구한말처럼 또다시 용기도 없이 눈치만 보다가 중국에 빌붙는 그런 운명으로 갈 것인지 말 것인지를 가늠하는 문제가 바로 사도광산과 같은 문제를 통해 제기되고 있다”고 말했다. 역사적 진실 검증의 문제가 바로 국운 융성의 문제와도 직결된다는 것이 이 교장 기념사의 요지.

“반일세력, 집단적으로 형성된 선입관을 역사의 진실로 믿어”

이어 이날 유일 발제자로 나선 이우연 낙성대경제연구소 연구위원(박사)은 태평양전쟁 시기 노무동원의 전체상에 대한 설명으로 강연을 시작했다. 이 연구위원은 “전시기(戰時期) 사도광산으로의 조선인 이민과 동원에 대한 한국과 일본의 언론 보도와 선행연구는 대부분 조총련계 재일동포 박경식 교수가 1965년에 출간한 ‘조선인 강제연행의 기록’을 오려서 붙이거나 반일이데올로기와 어울리는 것들만 골라내는 식이었다”고 설명했다.

이 연구위원은 “1939년부터 1945년까지 이미 약 168만 명이 조선인들이 일자리를 찾아서 스스로 일본으로 건너갔으며, 그보다 훨씬 적은 약 72만 명의 조선인들을 일본 기업과 정부가 전시노무동원 형태로 데려갔던 것”이라면서 “이 72만 명조차 강제연행이 아니라, 일본의 기업이 민간에서 순수하게 모집을 하거나, 또는 관 알선이라고 하여 행정적으로 뒷받침된 모집을 통하거나, 또는 소집 영장을 통해 법적 근거를 갖고 하는 ‘징용’이라는 방식을 취해서 데려갔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집에서 자고 있는데’, ‘논에서 일하고 있는데’ ‘끌고 갔다’라는, 이른바 ‘노예사냥’의 기억은 사실과 다르다는 것.

이 연구위원은 일본으로 갔던 다른 조선인 전시노무동원 노동자와 비교했을 때 사도광산으로 간 경우는 조건도 더 좋았다고 설명했다. 무엇보다 ‘탄광’이 아니라 ‘금광’이었기 때문에 부상, 사망 등 산업재해를 당할 가능성이 일단 낮았다는 것. 추가로 이 연구위원은 “사도광산으로 간 조선인 전시노무동원노동자는 가족동반율도 20% 에 이르렀다”면서 다른 사업장의 경우 8% 정도였으므로 이 역시 사도광산의 호조건을 가늠해볼 수 있는 근거”라고 말했다.

이 연구위원은 당시 발생했던 조선인 집단쟁의와 관련해서도 이것이 임금을 주지 않았다거나 폭력 등 어떤 억압 때문에 발생한 것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이 연구위원은 “당시 조선인들의 집단행동이 대단히 많았는데,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는 식사 문제”라면서 “이는 이미 1800년대 후반 개항기부터 일본을 거쳐 조선을 방문한 서양인들도 잘 알고 있었을 정도로 당시 조선인들은 일본인들과 비교해 대식(大食) 습관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이 연구위원은 “조선인을 임금,  대우, 복지 등에서 일본인과 차별하는 일은 없었다”며 “영양섭취만 보더라도 사도광산을 포함하여 일본행을 택한 조선인들은 당시 조선에 거주했던 조선인들에 비해서는 영양섭취가 훨씬 좋았다”고 부연했다.





“조선인들은 전쟁 이전부터 이미 일본에서 일하고 있었다”

이 연구위원은 태평양 전쟁 때문에 조선인들이 일본에 갑자기 건너가게 된 것도 아니라고 말했다. 그는 “전쟁이 없었던 1920년대와 1930년대 당시의 센서스 조사 결과를 봐도 조선인들은 이미 상당수가 일본에 건너가서 탄광이나 광산 등에서 일하고 있었다”며 “전시에 비해 숫자가 적었을 뿐이며, 그렇게 기존에 일본에서 일하던 추세가 전시에도 이어진 것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이 연구위원은 일본인들이 조선인들을 차별해서 위험한 갱내노동에 종사시켰다는 일각의 음모론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그는 “갱내노동은 위험도와 난이도를 감안할 때 젊은이들이 해야 하는데, 일본 젊은이들은 이미 전쟁터에 나가 있던 상태”라며 “그러니까 상대적으로 건강하고 튼튼했던 20대 조선인들에게 그 일을 시켰던 것일 뿐”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그는 오히려 태평양전쟁 이전에도 이미 조선인들의 갱내노동 비율이 더 높았다는 통계를 소개하면서 “평시에도 젊은 조선인들이 일본에 가서 많은 돈을 벌기 위해서 그런 일을 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연구위원은 한국 측의 사도광산의 유네스코 등재 반대를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근대화 과정에서 눈부신 성과를 이룬, 우리의 이웃나라(일본)가, 근대화 유산을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하고자 한다”며 “유엔무역개발기구(UNCTAD)는 지난 2021년 7월 2일 대한민국의 지위를 선진국 그룹으로 변경하였는데, 이제 우리도 열등감을 털고, 적개심에서 벗어나, 이웃나라의 성취를 축하하고 응원해줄 만도 하다”고 말했다.

이우연 연구위원이 사도광산은 노예노동이 아니었다는 내용의 발제를 마친 후에는 정광제 한국근현대사연구회 고문과 한민호 공자학원실체알리기운동본부 대표의 토론이 이어졌다. 

정 고문은 일종의 반론 제기로서 “오늘 이우연 박사님이 제시하신 통계자료를 보고 (반일 쪽의 입장에 서있는) 동북아역사재단 측에서는 다른 해석을 할 것”이라며 그런 상이한 해석에 대해서도 검토해본 적이 있는지를 질문했다. 이어 그는 조선인과 일본인의 근무형태가 달랐다는 사실이 민족차별이 존재했다는 증거가 아니냐는 질문도 덧붙였다.

이에 대해 이 연구위원은 “일본은 당시 노동자들의 소득의 30% 까지 강제저축을 시켰다”며 “그러나 조선인이나 일본인 노동자 모두 합법적으로 계약기간을 마치면 그 돈을 받고 떠났다”고 답변했다. 차별은 없었다는 것.

또 이 연구위원은 “당시 조선인 노동자들의 사망률이 근소하게 높기는 했지만, 그건 사도광산에서 일하던 일본인들이 대부분 60대였기 때문에 당시 평균연령 20대였던 조선인 노동자들에 비해 현실적으로 갱내노동 시간이 훨씬 적었기에 그랬던 것”이라며 “하지만 갱내에서 일했던 양국 노동자들의 사망률 및 부상률만을 놓고 비교하면 거의 비슷했다”고도 말했다.





“맹목적인 반일정서는 반일종족주의 및 반일정신병”

이어 토론자로 나선 한민호 공자학원실체알리기운동본부 대표는 사도광산의 역사적 진실을 캐는 작업의 사회적, 정치적 의미에 대해서 논했다.

한 대표는 한국 사회의 맹목적인 반일 정서를 “반일종족주의, 반일정신병, 조건반사적 반일감정”이라고 규정했다. 한 대표는 또한 “이번 토론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사도광산에서 조선인들에게 강제노동을 시켰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도 발제와 토론을 간청했지만, 모두 거절했다”는 사실을 전하면서 한국 사회의 반일의 벽이 얼마나 높은 것인지를 실감시켰다.

사도광산 문제와 관련해 한 대표는 1938년에 제정된 국가총동원법에 따른 징용이 과연 강제노동이었는가, 그리고 조선인 노동자가 일본인 노동자에 비해 차별과 억압을 받았는가, 하는 두 가지 문제가 이 문제의 핵심이라고 지적하면서 객관적 진상규명이 가능한 사실의 영역 문제인 만큼 사료를 통해 한일 양국이 합의할 수 있는 결론을 도출해야 한다고 밝혔다.

토론 말미에 한 대표는 “한국은 이제 중국의 속국이 되어 쇠락할 것이냐, 아니면 미국의 동맹으로서 자유와 번영을 누릴 것이냐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 한다”며 “우리는 일본과도 경제적으로, 정치·외교적으로, 나아가 군사적으로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한미일 동맹이 우리의 생존과 발전을 위한 토대요 기둥”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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