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루지야 나토 가입 추진'에 러, `자치공화국 독립' 카드로 제동
(모스크바=연합뉴스) 남현호 특파원 = 옛 소련 산하 그루지야가 서방 군사동맹체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가입을 추진하자 러시아가 그루지야 내 자치공화국 독립이라는 카드로 제동을 걸면서 빚어진 양국 간 마찰이 군사 행동 가능성까지 거론되는 등 벼랑 끝 싸움으로 치닫고 있다.
세르게이 샴바 압하지야 자치공화국 외무장관은 28일 "압하지야는 러시아와 군사협정을 체결할 준비가 돼 있다"면서 "이는 그루지야의 침략으로부터 압하지야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그루지야가 전쟁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은 비밀이 아니다"며 "우리는 이를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샴바 장관은 러시아 라디오 `에호 모스크바'와의 인터뷰에서 "러시아가 우리의 안전을 확보해 줄 행동을 취해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으며 압하지야는 군사기지 등 러시아가 원하는 모든 것을 제공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발레리 케냐이킨 러시아 외무부 독립국가연합(CIS) 담당 역시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가까운 시일 내에 그루지야가 압하지야를 겨냥한 군사훈련을 시작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며 "러시아는 압하지야에서 군사적 충돌이 발생할 경우 군사적 조치로 대응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러시아와 압하지야가 이처럼 그루지야에 대해 거의 선전포고에 가까운 경고를 하고 나선 것은 지난 20일 압하지야 상공에서 격추당한 그루지야 무인 정찰기 사건이 발단이 됐다.
그루지야는 당시 사건을 군사적 도발로 간주하고 유엔 등 국제사회에 진상 조사를 요구했으나 러시아는 자신들의 소행이 아닌데 그루지야가 억지를 쓰고 있다며 감정 싸움을 벌였다.
이런 가운데 그루지야 내 러시아 평화유지군이 압하지야 주민들에게 러시아 여권을 소지하도록 강권했다는 주장과 함께 최근 러시아 군대가 압하지야로 이동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면서 양국 간 긴장이 격화됐다.
그루지야는 이번 기회에 압하지야와 남오세티야에 주둔하고 있는 러시아 평화유지군을 철수시킬 각오다.
데이비드 바크라드제 그루지야 외무장관은 29일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외무장관들을 만나 러시아 평화유지군을 철수시키고 유럽연합(EU)과 나토군이 포함된 다국적군으로 대체하는 방안을 논의할 계획이다.
이와 관련, 제임스 아파추라이 나토 대변인은 "러시아가 그루지야에서 군사력을 사용하겠다는 어떤 시도도 역효과를 가져올 것"이라면서 "나토 회원국들은 러시아 평화유지군이 압하지야에서 떠나야 한다고 믿고 있다"고 그루지야에 힘을 실었다.
두 자치공화국은 1990년대 초 그루지야와 독립전쟁을 치른 뒤 러시아 평화유지군을 불러들이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정전 협정을 체결, 독립국가임을 자임해 왔지만 국제사회로부터 독립을 인정받지 못했다.
하지만 코소보 독립 선언에 자극받은 이들 공화국은 지난 3월 국제사회에 공식적으로 독립을 인정해 줄 것을 요청했다. 러시아는 그루지야가 나토 가입을 추진하면 이들 공화국의 독립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며 그루지야를 압박하고 있다.
이에 그루지야는 또다른 협상 카드를 제시하면서 러시아를 압박하고 있다.
지난 16일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지시한 두 자치공화국과 러시아 간 협력 강화 방안을 철회하지 않으면 러시아의 세계무역기구(WTO) 연내 가입에 협조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28일로 예정돼 있던 양국 간 WTO 협상도 그루지야 측의 협상 거부로 취소됐다.
이와 관련해 러시아의 드미트리 로고진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대사는 "그루지야가 무책임하게 전쟁을 할 구실을 찾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며 일련의 사태에 우려를 표명했다.
hyunho@yna.co.kr
(끝)
ⓒ 미디어워치 & mediawatch.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