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장탈북 화교 유우성의 간첩 혐의 관련 재판을 두고 연일 온 나라가 벌집 쑤신 듯 난리다. 그런데 북한에 포섭되어 탈북자 200여명의 정보를 넘겼다는 간첩은 어디가고, 당초 이를 기소했던 검찰과 국정원이 언론과 정치권으로부터 뭇매를 맞고 있다. RO조직의 내란음모를 밝혀내며 국가 안보의 최후보루로서 위용을 뽐내던 국정원은 ‘국가조작원’이라는 비아냥 속에 피의자 신분으로 전락했고, 검찰은 간첩사건을 수사한 제 식구를 스스로 수사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다.
이런 상황은 어떤 이유로 연출된 것일까 ? 제대로 검증되지 않은 증거를 법원에 제출한 검찰과 국정원의 책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열 사람의 범인을 놓치더라도 한 명의 억울한 사람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런 점에서 보면 신뢰하기 어려운 증거를 법원에 제출함으로써 불신을 자초한 공안당국은 누구를 탓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곰곰이 되짚어보면 공안당국의 무능만을 탓하기에는 석연치 않은 구석이 너무도 많다. 논란의 불씨가 된 중국 당국의 사실 조회 회신문건은 왜 변호인측이 먼저 입수하게 되었는지, 국정원 협조자라는 김씨는 문건이 진짜임을 입증하겠다며 자진해서 들어와서는 자살 기도 쇼(?)까지 벌여가며 국정원을 국조원으로 전락시키는 중책을 자임하고 나섰는지, 유우성은 그토록 억울하다며 눈물의 기자회견을 열면서도 자신의 미심쩍은 행적에 대해서는 왜 분명하게 해명하지 못하는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언론과 정치권은 경쟁이라도 하듯 연일 그럴듯한 소설을 내놓으면서 자랑하듯이 자신들이 찾아낸 퍼즐조각들을 꺼내놓고 있다. 이런 와중에 수년간 비밀스럽게 구축된 중국내 우리의 정보망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고, 결코 세상에 드러나서는 안되는 비밀정보요원과 협조자들의 실체는 고스란히 밝혀지고 있다. 용도 폐기는 물론 신변마저 위협받을 수 있는 상황에 처해진 것이다.
더 심각한 것은 차제에 국정원이 가진 대공수사권을 없애고, 아울러 국정원을 해체하자는 주장마저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치열한 정보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와중에 무겁고 번거로우니 칼과 갑옷을 버리자는 말이나 다름없지 않는가? 이런 얘기를 듣게 되었을 때 미소를 머금을 이들은 과연 누구일까를 생각하게 되는 대목이다.
98년 개봉한 미국 영화 ‘웩더독’에서 로버트 드 니로의 대사가 문득 떠오른다. “개가 왜 꼬리를 흔드는 걸까, 그것은 개가 꼬리보다 똑똑하기 때문이다. 꼬리가 더 똑똑하면, 꼬리가 개를 흔들어 댔을 것이다”
작금의 本末顚倒 현상은 왜 일어나고 있는지를 되돌아보게 하는 대사다. 본디 간첩사건이 증거조작과 국기문란사건으로 변질되어 가는 과정에서 누구의, 어떤 의도가 작용하고 있는지를 냉철하게 살펴야할 것이다. 개가 혼자 미쳐 날뛰는 형국이라면 몽둥이 찜질이 약이 되겠지만 의지와 상관없이 똑똑한 꼬리에 휘둘리고 있는 상황이라면 집 잘 지키는 개만 잡는 遇를 범하게 될 것이다.
이를 감안할 때 지금은 검찰의 수사와 국정원의 대응을 차분히 지켜볼 시점이라는 생각이 든다. 국정원이 의도적으로 증거를 조작하여 죄 없는 이를 간첩으로 만들었다면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하는 영악한 꼬리에 의해 휘둘리고 있는 상황도 배제할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 우리의 대공 역량을 무력화하기 위한 불순세력의 개입은 없는지, 사소한 문제를 너무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지는 않은지 꼼꼼히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번 사건이 처리되는 과정에서도 검찰과 국정원의 주인인 국민들의 시선은 흔들리는 몸통만을 주시하면서 질책하기 보다는 영악하게 몸통을 흔들어 대는 꼬리는 없는지 다시 한 번 살피는 지혜를 발휘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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