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공영방송 NHK가 자신들이 과거에 방영한 군함도(하시마 섬) 다큐멘터리에 대해 옛 하시마 도민들이 영상을 날조했다며 반발하고 있음에도 이들과의 ‘대화 거부’를 선언, 일본 자유보수 진영의 분노를 사고 있다. 논란의 영상은 1955년 11월 17일 방송된 NHK 다큐멘터리 ‘초록 없는 섬(緑無き島)’에 등장하는 탄광 내부 영상이다. NHK ‘초록 없는 섬’은 일본 군함도를 ‘지옥섬’ 이미지로 고착화시키는 데 크게 기여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이는 다큐에 등장하는 군함도 탄광 내부 영상이 매우 충격적이었기 때문이다. 영상에는 앙상한 몰골을 한 노동자들이 허리조차 펼 수 없는 좁을 굴 속에서 훈도시 하나 걸친 알몸으로 탄을 캐고 손수레를 밀고 있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지금도 이 NHK 영상은 한국에서 정치적으로 반일감정을 고취시키는 데 적극 활용되고 있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MBC는 2017년 7월 4일자 PD수첩 ‘군함도, 그리고 아베의 역사 전쟁’ 편에서 이 NHK 영상을 사용했다. 2017년 7월 26일 개봉한 영화 ‘군함도’는 사실상 이 NHK 영상을 모티브로 제작됐다. 부산의 ‘국립일제강제동원 역사관’에서는 이 NHK 영상을 자료화면으로 전시에
한일간 군함도(하시마 섬) 역사 왜곡 논란이 잦아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최근 우리 국회에선 일본 군함도 역사 왜곡 규탄 결의안이 통과됐다. 비슷한 시기 일본 산케이신문에는 일본내 군함도 역사 왜곡 세력을 규탄하는 칼럼이 실렸다. 지난 7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군함도를 포함한 일본 근대산업시설의 세계유산 등재 ‘후속조치’ 불이행에 대한 유감을 표명하고 충실한 이행을 촉구하는 결정문을 채택했다. 등재된 세계유산에 한국 측 주장을 전시하라고 했는데 일본이 이를 지키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군함도에 실제로 살았던 옛 주민들은 이 사태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진정성 있는 목소리들이 일본 재단법인 산업유산국민회의 유튜브 채널 ‘군함도의 진실: 조선인 징용공의 검증(軍艦島の真実 朝鮮人徴用工の検証)’에 2021년 8월 20일 공개됐다. 영상의 제목은 ‘유네스코 결의문에 대한 도민의 목소리’이다. 하시마 섬의 옛 주민 나카무라 요이치(中村陽一)씨는 “유네스코의 이야기를 듣고 저는 크게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라며 “하시마, 통칭 군함도에 강제노동이나 학대는 없었다고 확신을 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다음은 그의 말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태평양)
22일 낮 12시, 한일우호단체인 위안부법폐지국민행동(대표 김병헌, ‘국민행동’)과 반일동상진실규명공동대책위원회(대표 이우연, ‘공대위’)가 광화문 주한일본대사관 앞 위안부상 옆에서 정의연 규탄 연대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번 연대 기자회견은 추석 연휴 마지막날 임에도 불구하고 ‘국민행동’ 및 ‘공대위’ 관계자 및 유튜버 등 20여 명이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이날 김병헌 국민행동 대표는 “포주와 계약한 일본군 위안부가 어째서 성노예라는 것이냐”며 “새빨간 거짓말을 당장 철회하라”고 일침을 가했다. 그는 “위안부 강제동원설은 불쌍한 노인을 앞세워 국민과 세계를 속인 국제 사기극에 해당한다”면서 이에 대한 “국정 조사를 즉각 실시할 것을 촉구한다”고 외쳤다. 이날 국민행동 기자회견에는 오는 10월, 100회차 수요맞불집회를 앞두고 있는 공대위도 함께 했다. 공대위 참가자들은 "수요집회를 중단하고 정의연을 해체 할 것을 촉구한다"면서 공공조형물로 지정된 "위안부 동상을 당장 철거하라"고 외쳤다.
※ 본 칼럼은 일본 산케이신문(産経新聞)에 2021년 9월 20일자로 게재된 가토 고코(加藤康子) 일본 산업유산국민회의(産業遺産国民会議) 전무이사의 ‘군함도 문제까지 왜곡하는 아사히신문(産業遺産情報センターと朝日新聞)’ 제하 칼럼(원제 번역 : ‘산업유산정보센터와 아사히신문’)을 가토 고코 이사의 허락을 얻어 완역게재한 것이다. (번역 : 요시다 켄지) 군함도 문제까지 왜곡하는 아사히신문(産業遺産情報センターと朝日新聞) “‘전시(展示)를 개선하라’에 대한 의문” 나가사키 시의 하시마(한국명, 군함도) 탄갱(통칭, 군함도)을 포함한 세계문화유산 ‘메이지 일본의 산업혁명유산’에 대해, 유네스코(유엔교육과학문화기관)는 7월 22일, 전시(戰時) 징용된 조선인 노동자에 관한 ‘산업유산정보센터’의 설명이 불충분하다며 “강한 유감”이 담긴 결의를 채택했다. 결의에 첨부된 유네스코 및 이코모스 (국제기념물유적회의)의 공동 조사 보고서에는 일본 정부가 도쿄 도 신주쿠 구에 개설한 ‘산업유산정보센터’의 하시마 탄갱의 전시(展示)에 대해, “희생자의 기억을 남기는” 조치로써 “보다 어두운 측면”을 내포한 “다양한 증언”을 전시하도록 촉구하고 있다. 본 결의 내용에 호응하듯, 7월
※ 본 칼럼은 일본의 유력 영자신문인 ‘재팬포워드(JAPAN Forward)’에 2021년 9월 18일자로 게재된, 니시오카 쓰토무(西岡力) 일본 레이타쿠 대학 교수의 ‘한국의 ‘류석춘 사건’, 학문의 자유 위기 촉발(In South Korea, Lew Seok-choon Case Sparks Crisis in Academic Freedom)’을 니시오카 교수 본인의 허락을 얻어 완역게재한 것입니다. (번역 : 요시다 켄지) 한국의 ‘류석춘 사건’, 학문의 자유 위기 촉발(In South Korea, Lew Seok-choon Case Sparks Crisis in Academic Freedom) 일본과 한국은 여전히 같은 가치관을 공유하고 있는가? “한국은 중요한 이웃 국가지만, 가치관을 공유한다고는 말할 수 없다”, 이것이 현재 일본 정부의 한국에 대한 평가다. 일본은 2014년까지만 해도 양국의 가치관 공유를 인정했었다. 당시 아베 신조 총리는 “한국은 기본적인 가치관이나 이익을 공유하는 가장 중요한 이웃 국가”라고 연설했다. 하지만, 그 뒤로 당시의 박근혜 대통령에 관한 기사를 두고 산케이신문의 서울 지국장이 기소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아베 총리는
[이우연 · 전 낙성대경제연구소 연구위원] 위안부를 연구하는 한국이나 일본 학자들이 그동안 식민지기 조선의 “미우리(身賣り)”라는 계약 형태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놀랄만한 일이다. 조선 여성이 위안부가 되는 경로 그간 이야기해 온 것은 “강제연행”, “취업사기”, 그리고 “인신매매”다. 단, 취업사기와 인신매매 모두 식민지기 당시에도 불법이었으며, 양자는 결합되어 하나의 범죄를 이루었다. 즉 법적으로 “유괴”로 규정되는 취업사기를 벌여 여자를 확보하고 그녀를 본인이나 부모의 의사와 무관하게 유곽이나 매춘숙이, 또 위안소에 팔아 넘기는 행위다. 만약 가난한 부모가 자신의 딸이 매춘부나 위안부가 된다는 것을 알고도 당시 계약관행인 미우리에 따라 판매한다면 어떻게 될까? 이것은 합법이었다. 통계가 없으니 단언할 수 없지만, 미우리는 당시 성매매산업에서 여성을 조달하는 기본적인 방법이었을 것이다. 이 계약에서 대부분의 부모는 딸이 무엇을 하게 될지 잘 알면서 매춘숙이나 알선업자나 주인에게 딸을 양도했다. 부모는 대신 전차금이라는 돈을 받았고, 딸은 정해진 계약기간동안 성노동을 하면서 급료의 일부로 그 돈을 상환했다. 전차금 상환 이후 그녀들은 자유를 회복
대만의 유엔(국제연합) 복귀를 주장하는 칼럼을 최근 국내 영자신문에 기고했던 우자오셰(吳釗燮) 대만 외교부장(장관)이 한국 유력지에도 같은 주제의 칼럼을 기고했다. 대만이 국제사회 복귀를 위해 한국 국민들을 설득하기 위한 외교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국내 부산 지역 유력 매체인 ‘국제신문’은 지난 16일 우자오셰 부장이 기고한 “대만 품은 UN을 상상하며” 제하 칼럼을 게재했다. ‘하나의 중국’을 외치는 중공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유엔 회원국이자 당당한 독립국가로 인정받기 위한 대만의 근래 강력한 동북아 외교 캠페인 일환이다. 우 부장은 칼럼에서 코로나바이러스 델타 변이의 출현으로 인해 세계 각국이 또다시 위기에 처했다는 사실을 언급하면서 “이러한 시점에 UN은 주도적 역할을 통한 세계의 위기 국면 타개를 위해 더욱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할 것을 요구받고 있다”고 밝혔다. 우 부장은 대만이 코로나바이러스 방역을 가장 모범적으로 해낸 국가 중 하나라는 사실을 소개했다. 그러면서 “대만의 탁월한 전염병 방역 능력, 글로벌 공급사슬에 대한 신속한 공급 능력 및 동반자 국가에 대한 지속적이고 실질적인 협력으로 볼 때 UN은 대만이 UN 안에서 건
일본 유력 자유보수 신문이 한국 내에서 간첩 활동을 전개해온 ‘자주통일 충북동지회’(이하 동지회)가 2019년에 북한으로부터 ‘반일’ 운동 지령까지 받은 사실을 1면 특종으로 보도했다. ‘세카이닛포(世界日報)’는 15일자 ‘북조선, 한국 지하 조직에 ‘반일’ 지령 2019년(北朝鮮、韓国の地下組織に「反日」指令 2019年)’ 제하 우에다 이사미(上田勇実) 편집위원의 기사를 통해 동지회가 수령한 반일 지령과 북한 체제의 거창한 정책적 이념을 집중 해부했다. 동지회가 북한의 공작금과 정보를 기반으로 그간 종북 성향의 활동, 예컨대 한국의 스텔스기 F-35A 도입 반대 운동 등을 전개해온 사실은 국내 언론을 통해서도 널리 알려진 바 있다. 이번에 세카이닛포는 입수한 자료를 토대로 동지회가 적어도 2019년부터 한국 내 반일운동에도 역시 관여해왔음을 밝혔다. 국내 정치에 결부된 정책에만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알려진 동지회가, 실은 한일 관계 개선의 사기를 꺾고 한미일 동맹 체계 또한 파괴하려 했다는 것. 특히 문재인 정권하 전후 최악의 한일 관계에 직면한 가운데, 동지회는 위안부·징용공 문제와 같은 양국 간의 현안인 역사 문제를 악용하여 반일 공작을 획책했던 것으로
한일우호 시민단체인 ‘위안부법폐지국민행동’ 김병헌 대표(국사교과서연구소 소장 겸임)가 15일 오후 1시, 윤석열 대선 캠프 소재지인 광화문 이마빌딩 앞에서 윤 후보를 규탄하는 1인 시위를 진행했다. 이날 김 대표는 “이용수와 손잡은 건 윤미향과 손잡는 것과도 같다”면서 “윤석열 후보가 위안부 문제로 일본의 사과를 받아내겠다며 이 씨에게 한 약속은 지킬 수가 없는 헛된 약속”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김 대표는 “이용수 씨는 일본군 위안부도 아니고 위안부 피해자도 아니다”라고 단언했다. 김 대표는 “이 씨는 대만에서 위안부 생활을 했다고 증언한 바 있는데, 애초 일본군 위안소 시설도 없었던 대만에서 어떻게 위안부가 되었다는 것이냐”면서 이 씨에 대해서 거짓말 의혹을 제기했다. 김 대표는 이 씨를 만난 윤석열 후보의 행보에 대해서도 비판을 이어갔다. 김 대표는 “위안부 문제 관련 윤 후보의 언행은 과거 문재인 대통령의 위안부팔이를 벤치마킹하여 페미니스트의 표를 얻으려는 언행”이라며 “대선 후보로서 국격을 실추시키는 언행”라고 지적했다. 김 대표는 이날 1인시위가 윤 전 총장의 잘못된 근현대사 인식에 대해 지적할 목적이지, 제20대 대통령 선거 예비후보로 등록한 윤
※ 본 칼럼은 일본의 유력 시사잡지 ‘겟칸하나다(月刊Hanada)’의 인터넷판인 ‘하나다프러스(Hanadaプラス)’에 2021년 7월 8일자로 게재된, 야마오카 데츠히데(山岡鉄秀)의 ‘고노 담화를 지금 당장 파기하라!(河野談話を今すぐ破棄せよ!)’를 ‘겟칸하나다’ 측의 허락을 얻어 완역게재한 것입니다. (번역 : 요시다 켄지) 고노 담화를 지금 당장 파기하라!(河野談話を今すぐ破棄せよ!) [필자소개] 야마오카 데츠히데(山岡鉄秀)는 정보전략 애널리스트로, 레이와전공학원(令和専攻塾) 원장이며, 설풍모임(雪風の会, DMM 온라인 살롱) 주재(主宰), 그리고 공익재단법인 모라로지(公益財団法人モラロジー) 도덕교육재단 연구원이다. 1965년 도쿄 출생. 일본 주오대학교 졸업 후 시드니대학교 대학원, 뉴사우스웨일즈대학교 대학원 석사과정 수료. 2014년 4월 호주 스트라스필드시에서 한국계와 중국계 반일 단체가 추진하는 위안부상 공유지 설치 계획을 알게 되고 시드니를 중심으로 ‘재호방인의 유지(在豪邦人の(有志, 호주의 일본계 지식인들 모임)’와 함께 위안부 동상 반대 활동을 전개했다. 호주 현지 주민의 협력을 얻어 일치단결, 2015년 8월 동상 건립 저지에 성공했다. 현재는
에포크미디어코리아 중국전략연구소가 9일, 정동1928 아트센터에서 1990년대 중공 수교, 대만 단교의 손익을 30여 년만에 다시 따져보는 ‘한·중 수교 29주년 회고와 전망’ 주제 세미나를 개최했다. 이날 세미나는 정부 방역지침을 준수하며 진행된 가운데 참석인원 숫자가 제한됐다. 하지만 구상진 헌법을 생각하는 변호사 모임 회장, 한민호 공자학원 실체알리기운동본부 대표, 한영복 자유민주통일교육연합 사무총장, 이순임 전 MBC 공정노조 위원장 등 사회 주요 인사들이 자리를 빛냈다. 세미나는 차광명 에포크타임스 취재본부장의 사회로 개회선언, 국민의례 등의 순서로 진행됐다. 발제에 앞서 이광훈(그랜트 리) 중국전략연구소 이사장은 유창한 한국어로 중국 출생에 한국 서울대 유학, 그리고 현재 미국에서 중국 공산당 비판 매체(‘에포크타임스’)에서 일하고 있는 독특한 이력을 인사말로 소개했다. 김석우 “한중 수교, 성공적이었으나 미흡했던 점 많아” 세미나 기조발제는 김석우 북한인권시민연합 이사장이 맡았다. 통일부 차관 등을 역임한 김 이사장은 한중 수교 당시 외교부 아주국장으로 실무를 담당했었다. 이날 김 이사장은 한중 수교가 한반도 분단 고착 상태를 깨는 ‘북방외교’의
세계 각지에서 통일전선부(統一戰線部, United Front)를 앞세운 공작을 벌이는 것으로 악명이 높은 중공이 한국 대선에 노골적으로 개입하는 발언을 한 것도 모자라 민간 언론에까지 외압을 가하는 등 폭주하고 있다. 최근 중공이 문제 삼은 것은 우자오셰(吳釗燮) 대만 외교부장(장관)이 지난달 24일 국내 영자신문 ‘코리아타임즈(The Korea Times)’에 기고한 칼럼 “대만의 활동을 허용하면서 UN을 더 탄력적으로 운영하라(More resilient UN system - with Taiwan in it)”다. 우자오셰 부장은 이 기고문에서 “국제 무대에서 대만 국민들을 대표할 수 있는 것은 투표로 선출된 정부 뿐”이라면서 “문제는, 현재 유엔이 대만의 시민사회 참여까지도 방해하고 있으며, 대만 기자들이 유엔 행사 취재조차 할 수 없다는 점”이라고 지적하는 등 유엔이 보다 유연한 운영으로 대만의 참여를 보장할 필요가 있다고 호소했다. 이에 대해 주한 중공 대사관은 지난달 25일 대변인 성명을 통해 “최근 한국의 일부 언론이 ‘대만 대외 교류부분 책임자’ 우자오셰의 기고문을 게재했다”면서 “중국은 이에 대해 단호한 반대를 표한다”고 밝혔다. 이후 싱하이밍
※ 본 칼럼은 일본 산케이신문(産経新聞) 2021년 8월 25일자로 게재된 니시오카 쓰토무(西岡 力) 교수의 ‘일본과 한국의 관계를 악화시킨 원흉(日韓関係を悪化させた元凶は)’ 제하 칼럼을 니시오카 교수의 허락을 얻어 완역게재한 것이다. (번역 : 요시다 켄지) 일본과 한국의 관계를 악화시킨 원흉(日韓関係を悪化させた元凶は) 니시오카 쓰토무(西岡力) (모라로지 도덕교육재단(モラロジー道徳教育財団) 교수, 레이타쿠(麗澤)대학 객원교수) 아사히신문(朝日新聞)이 위안부 문제와 관련 날조 보도를 내고, 일본과 한국의 관계를 악화시킨 계기를 만든지도 30년이 지났다. 국제사회에 퍼져나간 거짓 아사히는 1991년 위안부 문제로 회사 전체가 대대적인 캠페인을 벌였고, 같은 해에 무려 150개에 달하는 위안부 기사를 게재했다. 그 결과, “8만 명에서 20만 명의 조선인 여성을 정신대(挺身隊)의 이름으로 강제연행하여 위안부로 삼았다”라는 거짓이 일본과 한국 외에 국제사회에서도 돌연 확산되었다. 본 언론사의 캠페인을 지탱했던 두 가지 기둥은 가해자인 요시다 세이지(吉田清治)의 증언, 그리고 피해자인 김학순의 증언이다. 양자(両者)의 증언은 아사히가 한국과 일본 언론 중에 최초로
※ 본 콘텐츠는 ‘위키피디아 일본어판(ウィキペディア 日本語版)’에 게재된, ‘나오에쓰 포로수용소 사건(直江津捕虜収容所事件)’ 항목을 번역한 것이다. (기준일자 2021년 8월 30일판, 번역 : 요시다 켄지) 나오에쓰 포로수용소 사건 (直江津捕虜収容所事件) ‘나오에쓰 포로수용소 사건(直江津捕虜収容所事件)’이란, 태평양전쟁 중에 도쿄 포로수용소 제4분소(현재 니가타(新潟) 현 조에쓰(上越) 시 소재)에서 호주인 포로가 학대를 당한 것으로 알려진 사건을 말한다. 전후(戰後) 수용소 경비원 8명이 포로 학대를 이유로 BC급 전범으로 몰려 요코하마 군사 법정에서 사형 판결을 받고 처형되었다. 목차 1 개요 2 요코하마 재판 결과 3 평화기념공원 4 참고문헌 1 개요(概要) 도쿄 포로수용소 제 4분소는 1942년 12월 7일에 니가타(新潟) 현 나카쿠비키(中頸城) 군 나오에쓰(直江津) 정(1954년에 시정시행(市制實行), 현 조에쓰 시)의 신에쓰(信越) 화학공업공장 내에 개설되어, 1943년 2월 나카쿠비키 군 아리타(有田) 촌의 가스가신덴(春日新田, 현 조에쓰(上越) 시 카와하라(川原) 정)으로 이전되었다. 이후 1945년 9월에 폐쇄되었다. 사역(使役) 기업은 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