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후 · 문명개화TV 대표 (전 MBC 베이징특파원·국제부장)] 뤼슈렌 전 대만 부총통의 역저 ‘대만은 왜 중국에 맞서는가 : 뤼슈렌 전 대만 부총통이 진단하는 동아시아 위기와 전기’는 중국어판 원제인 兩岸恩 怨如何了?, 그리고 영어판 원제인 Taiwan and China : Whither to Go? 를 훨씬 넘어서 대만의 모든 것들을 일목요연하면서도 포괄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뤼슈렌 전 부총통은 여성으로서, 또 민진당 출신으로서는 최초로 10대, 11대 부총통을 지냈다. 일치(日治) 시기인 1944년에 태어난 뤼슈렌은 엄혹했던 국민당 계엄통치 시절인 1979년 이른바 ‘메이리다오(美麗島)’ 사건에 연루돼 12년형을 선고받고서 5년을 복역한 바 있다. 또한 11대 대선 유세를 치르던 중에는 당시 부총통으로서 천수이벤 당시 총통과 함께 괴한의 총격을 받기도 했다. 대만 현대사의 굴곡을 그야말로 몸소 경험한 것이다. 대만 민주화, 여성운동, 나아가 대만독립 운동의 기수로 평가받는 뤼슈렌 전 부총통은 대만이 나아갈 길을 일찍이 제시해왔다. ‘9.6공식(九六共識)’과 ‘평화중립(和平中立)’이 바로 그것이다. ‘9.6공식’은 리덩후이 총통이 대만해협의 군사적 위
※ 본 서평은 캐나다 유력지 ‘밴쿠버선(Vancouver Sun)’에 2019년 1월 25일자로 게재된 미로 세르네티크(Miro Cernetig)의 ‘중국이 발톱을 세우자 캐나다가 품은 잘못된 신화가 드러났다(Book review: China bares its claws, exposing several misguided myths)’ 제하 기고문을 ‘밴쿠버선’ 측의 허락을 얻어 완역게재한 것이다. (번역 : 최인섭) 중국이 발톱을 세우자 캐나다가 품은 잘못된 신화가 드러났다(Book review: China bares its claws, exposing several misguided myths) 캐나다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선교적 열정으로 중국에 매달렸었다. 그런 캐나다가 중국에 대해 품고 있는, 잘못된 인식으로서의 신화가 하나 있다. 그것은 ‘중국의 14억 대중들’은 민주주의를 향한 불타는 열정이 있다는 것이다. 이 신화는 “서구의 민주적, 인권적 가치가 결국 중국 공산당의 일당 독재를 압도할 것이며, 캐나다가 그 가치로 중국의 변화를 부드럽게 이끌 수 있을 것”이라는 내용으로 이뤄져 있다. 1989년 천안문(Tiananmen) 광장에서의 민주화 시위가
[이상면(李相冕) ·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명예교수(Harvard, SJD)] 대만은 한국인에게 가장 친근한 나라다. 일제하 독립운동 시기에 중화민국에 큰 은혜를 입었고, 1943년 11월 카이로 선언에서 한국의 독립이 약속된 것도 장제스(蔣介石) 총통이 애쓴 보람이었다. 1950년 6월 25일 한국이 공산침략을 당했을 적에도, 중화민국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 국으로 미국·영국·프랑스와 함께 유엔군을 파병케 해서 나라를 지켜내게 해주었다. 비록 한국이 1992년 냉전 종식 바람을 타고 대륙 중국과 국교를 맺게 되어 대만과 단교를 했지만, 한국인이 대만에 느끼는 심정이 어찌 달라질 수 있겠는가. 한국인은 심정적으로 대만인을 세계에서 가장 가까운 사이로 여긴다. 역사적 문화적 배경이 비슷해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대륙과 대치해 여러 민족이 어우러져 살면서 서로 이해하고 협력하여 아시아에서 드문 민주 문명을 이루어낸 것을 선망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대만은 명목 GDP가 우리와 비슷하지만, 물가가 싸서 구매력(PPP)으로 환산하면 홍콩·싱가포르와 함께 아시아 최고 수준으로 한국·일본·영국·프랑스·독일을 앞지르고 미국을 따라갈 태세다. 대만 물가는 우리의 3
[한민호(韓民鎬) · 공자학원 실체알리기 운동본부 대표] 이 책의 저자 조너선 맨소프는 중공을 두고 “캐나다의 자유민주체제를 위협하는 유일한 존재”라고 말한다. 사실 중공은 캐나다만이 아니라 인류에 대한 유사 이래 최대의 위협이다. 중공의 실체를 알게 되면 전혀 과장된 표현이 아니라는 데 동의할 것이다. 미국 하원의원들이 올해 6월 초당적으로 발의한 중공 규탄 결의안은 중공 100년의 만행을 잘 요약하고 있다. 중공이 정권을 수립한 이후의 사례만 하더라도 소위 토지개혁, 대약진운동, 문화대혁명, 천안문사태를 거치는 과정에서 수천만의 국민이 참혹하게 살육을 당했다. 수억의 국민이 잔인하게 체포, 감금, 고문을 당했다. 유엔 인권이사회도 지적했듯이, 중공은 최근에는 신장 위구르족에 대해서 민족 자체를 말살하는 만행을 저지르고 있다. 100만 명 이상의 위구르인들이 수용소에 갇혀 강제노동을 당하고 있으며, 부녀자들과 심지어 아동들에게까지도 강제 장기적출을 비롯, 차마 입밖에 낼 수도 없는 야만적인 탄압을 자행하고 있다. 일국양제를 약속한 홍콩에 대해서는 국가안전법을 내세워 기본적인 자유와 인권을 무참하게 짓밟고 있다. 자유민주 독립국가인 대만에 대해서도 자국 중심
※ 본 칼럼은, 일본의 유력 시사잡지 ‘먼슬리위루(月刊WiLL)’의 온라인판 ‘데일리 위루 온라인(デイリー ウィルオンライン)’에 2021년 10월 4일자로 게재된, 레이타쿠(麗澤)대학 객원교수 니시오카 쓰토무(西岡力)의 기고문 ‘‘지폐’도 인쇄 못하는 북조선, 드디어 국가체제의 위기(【緊急寄稿】北朝鮮はもはや「紙幣」が刷れない!:経済崩壊でいよいよ国家体制の危機か)’(원제 : [긴급기고] 북조선은 이미 ‘지폐’를 인쇄 못 하고 있다!: 경제 붕괴로 인해 드디어 국가체제의 위기)를, 니시오카 교수와 ‘먼슬리위루’ 측의 허락을 얻어 완역게재한 것이다. (번역 : 요시다 켄지) ‘지폐’도 인쇄 못하는 북조선, 드디어 국가체제의 위기(【緊急寄稿】北朝鮮はもはや「紙幣」が刷れない!:経済崩壊でいよいよ国家体制の危機か) 조선반도로부터 충격적인 정보를 입수했다. 경제제재에 따른 외화 부족과 중조(中朝) 국경 폐쇄 등으로 북조선은 지폐 인쇄에 필요한 용지를 입수하지 못했고, 여태 쓰여 왔던 지폐를 인쇄할 능력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북조선은 그 대체지폐로서 ‘돈표’라 불리는 질 떨어진 통화를 발행하고 있으나, 가치의 담보나 위조의 위험성의 측면에서 매우 위태로운 대물(代物)이라 사료된다.
※ 본 서평은 캐나다 유력지 ‘글로브앤메일(Globe and Mail)’에 2019년 1월 25일자로 게재된 마이클 바이어스 (Michael Byers)의 기고문 원제 ‘조너선 맨소프의 신작 ‘판다의 발톱’이 말하는, 캐나다는 왜 중국에 더 강력하게 대응해야 하는가(Why Canada should take a stronger approach to China, according to Jonathan Manthorpe’s new book Claws of the Panda)’를 ‘글로브앤메일’ 측의 허락을 받아 게재하는 것입니다. (번역 : 요시다 켄지) 캐나다는 왜 중국에 더 강력하게 대응해야 하는가(Why Canada should take a stronger approach to China, according to Jonathan Manthorpe’s new book Claws of the Panda) 중공은 지난달 밴쿠버에서 체포된 멍완저우 화웨이 최고경영자에 대한 대응 방식을 후회하게 될 것이다. 베테랑 기자인 조너선 맨소프(Jonathan Manthorpe)는 그의 괄목할 만한 신작 ‘판다의 발톱, 캐나다에 침투한 중국 공산당(Claws of the Pa
‘대만은 왜 중국에 맞서는가(원제 : 兩岸恩怨如何了?)’의 저자인 뤼슈렌(呂秀蓮) 전 대만 부총통은 독립국가 대만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먼저 ‘대만섬’의 유래와 ‘대만인’의 유래부터 설명한다. 대만이 선사 시대에 오늘날 태평양 원주민인 오스트로네시아어족의 원 고향이라는 사실, 그리고 역사 시대에는 중국인보다도 대만섬에 오히려 네덜란드 사람, 스페인 사람이 먼저 살기 시작했다는 사실은 대부분 한국 독자들에게는 생소한 얘기로 들릴 것이다. 하지만 실은 대만은 그렇게 일찍부터 대륙 중국과는 무관한 해양 태평양의 나라였다. 대만인은 자신들이 비록 과거 중국인의 피를 이어받았다고 하더라도 스스로를 중국인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단 한 번도 대만섬을 점령해본 적이 없는 국가인 중공의 국민이라고는 더더욱 생각하지 않음은 물론이다.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대 중공의 지도자들은 무책임하게 폭력적으로 중국 통일론을 부르짖으며 대만을 겁박해왔는 사실이다. 대만에 대한 이른바 ‘하나의 중국(一個中國)’ 강요는 지금껏 국제사회가 묵인, 방조해온 스토킹 범죄나 마찬가지다. 대만은 이러한 지난 수십 년간 엄혹한 환경 속에서도 오히려 자유, 법치, 인권의 가치는 물론 소프트파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는 1960년대부터 최근까지 일본에만 최소한 열네 번 이상 방문했다. 하지만 달라이 라마는 2021년 현재까지 아직 단 한 번도 한국의 땅을 밟아보지 못했다. 수교 이후 한국과 중국의 관계를 보여주는 단면이다. 당신이 이런 사실을 이제야 알게 됐다면 그부터가 이미 중국 공산당의 한국 언론계, 정치계 침투의 결과물일 공산이 높다. 중국 공산당은 은밀한 침투공작으로써 자유민주주의 사회의 기본적 가치인 인권, 법치 등을 무너뜨리는데 세계 최고 전문가들이다. 그리고 그들의 침투 대상은 비단 중국과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자유민주주의 국가인 한국만이 아니다. 태평양 건너 미국의 바로 뒷마당에 있는 국가인 캐나다조차도 중국 공산당의 전복 공작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을 ‘판다의 발톱, 캐나다에 침투한 중국 공산당(Claws of the Panda : Beijing's Campaign of Influence and Intimidation in Canada)’의 저자인 조너선 맨소프(Jonathan Manthorpe)는 준엄하게 고발한다. 화웨이 사건으로 인해 날벼락을 맞은 캐나다 화웨이의 최고재무책임자(CFO) 멍완저우는 미국의 대이란
일본 공영방송 NHK가 자신들이 과거에 방영한 군함도(하시마 섬) 다큐멘터리에 대해 옛 하시마 도민들이 영상을 날조했다며 반발하고 있음에도 이들과의 ‘대화 거부’를 선언, 일본 자유보수 진영의 분노를 사고 있다. 논란의 영상은 1955년 11월 17일 방송된 NHK 다큐멘터리 ‘초록 없는 섬(緑無き島)’에 등장하는 탄광 내부 영상이다. NHK ‘초록 없는 섬’은 일본 군함도를 ‘지옥섬’ 이미지로 고착화시키는 데 크게 기여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이는 다큐에 등장하는 군함도 탄광 내부 영상이 매우 충격적이었기 때문이다. 영상에는 앙상한 몰골을 한 노동자들이 허리조차 펼 수 없는 좁을 굴 속에서 훈도시 하나 걸친 알몸으로 탄을 캐고 손수레를 밀고 있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지금도 이 NHK 영상은 한국에서 정치적으로 반일감정을 고취시키는 데 적극 활용되고 있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MBC는 2017년 7월 4일자 PD수첩 ‘군함도, 그리고 아베의 역사 전쟁’ 편에서 이 NHK 영상을 사용했다. 2017년 7월 26일 개봉한 영화 ‘군함도’는 사실상 이 NHK 영상을 모티브로 제작됐다. 부산의 ‘국립일제강제동원 역사관’에서는 이 NHK 영상을 자료화면으로 전시에
한일간 군함도(하시마 섬) 역사 왜곡 논란이 잦아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최근 우리 국회에선 일본 군함도 역사 왜곡 규탄 결의안이 통과됐다. 비슷한 시기 일본 산케이신문에는 일본내 군함도 역사 왜곡 세력을 규탄하는 칼럼이 실렸다. 지난 7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군함도를 포함한 일본 근대산업시설의 세계유산 등재 ‘후속조치’ 불이행에 대한 유감을 표명하고 충실한 이행을 촉구하는 결정문을 채택했다. 등재된 세계유산에 한국 측 주장을 전시하라고 했는데 일본이 이를 지키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군함도에 실제로 살았던 옛 주민들은 이 사태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진정성 있는 목소리들이 일본 재단법인 산업유산국민회의 유튜브 채널 ‘군함도의 진실: 조선인 징용공의 검증(軍艦島の真実 朝鮮人徴用工の検証)’에 2021년 8월 20일 공개됐다. 영상의 제목은 ‘유네스코 결의문에 대한 도민의 목소리’이다. 하시마 섬의 옛 주민 나카무라 요이치(中村陽一)씨는 “유네스코의 이야기를 듣고 저는 크게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라며 “하시마, 통칭 군함도에 강제노동이나 학대는 없었다고 확신을 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다음은 그의 말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태평양)
22일 낮 12시, 한일우호단체인 위안부법폐지국민행동(대표 김병헌, ‘국민행동’)과 반일동상진실규명공동대책위원회(대표 이우연, ‘공대위’)가 광화문 주한일본대사관 앞 위안부상 옆에서 정의연 규탄 연대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번 연대 기자회견은 추석 연휴 마지막날 임에도 불구하고 ‘국민행동’ 및 ‘공대위’ 관계자 및 유튜버 등 20여 명이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이날 김병헌 국민행동 대표는 “포주와 계약한 일본군 위안부가 어째서 성노예라는 것이냐”며 “새빨간 거짓말을 당장 철회하라”고 일침을 가했다. 그는 “위안부 강제동원설은 불쌍한 노인을 앞세워 국민과 세계를 속인 국제 사기극에 해당한다”면서 이에 대한 “국정 조사를 즉각 실시할 것을 촉구한다”고 외쳤다. 이날 국민행동 기자회견에는 오는 10월, 100회차 수요맞불집회를 앞두고 있는 공대위도 함께 했다. 공대위 참가자들은 "수요집회를 중단하고 정의연을 해체 할 것을 촉구한다"면서 공공조형물로 지정된 "위안부 동상을 당장 철거하라"고 외쳤다.
※ 본 칼럼은 일본 산케이신문(産経新聞)에 2021년 9월 20일자로 게재된 가토 고코(加藤康子) 일본 산업유산국민회의(産業遺産国民会議) 전무이사의 ‘군함도 문제까지 왜곡하는 아사히신문(産業遺産情報センターと朝日新聞)’ 제하 칼럼(원제 번역 : ‘산업유산정보센터와 아사히신문’)을 가토 고코 이사의 허락을 얻어 완역게재한 것이다. (번역 : 요시다 켄지) 군함도 문제까지 왜곡하는 아사히신문(産業遺産情報センターと朝日新聞) “‘전시(展示)를 개선하라’에 대한 의문” 나가사키 시의 하시마(한국명, 군함도) 탄갱(통칭, 군함도)을 포함한 세계문화유산 ‘메이지 일본의 산업혁명유산’에 대해, 유네스코(유엔교육과학문화기관)는 7월 22일, 전시(戰時) 징용된 조선인 노동자에 관한 ‘산업유산정보센터’의 설명이 불충분하다며 “강한 유감”이 담긴 결의를 채택했다. 결의에 첨부된 유네스코 및 이코모스 (국제기념물유적회의)의 공동 조사 보고서에는 일본 정부가 도쿄 도 신주쿠 구에 개설한 ‘산업유산정보센터’의 하시마 탄갱의 전시(展示)에 대해, “희생자의 기억을 남기는” 조치로써 “보다 어두운 측면”을 내포한 “다양한 증언”을 전시하도록 촉구하고 있다. 본 결의 내용에 호응하듯, 7월
※ 본 칼럼은 일본의 유력 영자신문인 ‘재팬포워드(JAPAN Forward)’에 2021년 9월 18일자로 게재된, 니시오카 쓰토무(西岡力) 일본 레이타쿠 대학 교수의 ‘한국의 ‘류석춘 사건’, 학문의 자유 위기 촉발(In South Korea, Lew Seok-choon Case Sparks Crisis in Academic Freedom)’을 니시오카 교수 본인의 허락을 얻어 완역게재한 것입니다. (번역 : 요시다 켄지) 한국의 ‘류석춘 사건’, 학문의 자유 위기 촉발(In South Korea, Lew Seok-choon Case Sparks Crisis in Academic Freedom) 일본과 한국은 여전히 같은 가치관을 공유하고 있는가? “한국은 중요한 이웃 국가지만, 가치관을 공유한다고는 말할 수 없다”, 이것이 현재 일본 정부의 한국에 대한 평가다. 일본은 2014년까지만 해도 양국의 가치관 공유를 인정했었다. 당시 아베 신조 총리는 “한국은 기본적인 가치관이나 이익을 공유하는 가장 중요한 이웃 국가”라고 연설했다. 하지만, 그 뒤로 당시의 박근혜 대통령에 관한 기사를 두고 산케이신문의 서울 지국장이 기소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아베 총리는
[이우연 · 전 낙성대경제연구소 연구위원] 위안부를 연구하는 한국이나 일본 학자들이 그동안 식민지기 조선의 “미우리(身賣り)”라는 계약 형태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놀랄만한 일이다. 조선 여성이 위안부가 되는 경로 그간 이야기해 온 것은 “강제연행”, “취업사기”, 그리고 “인신매매”다. 단, 취업사기와 인신매매 모두 식민지기 당시에도 불법이었으며, 양자는 결합되어 하나의 범죄를 이루었다. 즉 법적으로 “유괴”로 규정되는 취업사기를 벌여 여자를 확보하고 그녀를 본인이나 부모의 의사와 무관하게 유곽이나 매춘숙이, 또 위안소에 팔아 넘기는 행위다. 만약 가난한 부모가 자신의 딸이 매춘부나 위안부가 된다는 것을 알고도 당시 계약관행인 미우리에 따라 판매한다면 어떻게 될까? 이것은 합법이었다. 통계가 없으니 단언할 수 없지만, 미우리는 당시 성매매산업에서 여성을 조달하는 기본적인 방법이었을 것이다. 이 계약에서 대부분의 부모는 딸이 무엇을 하게 될지 잘 알면서 매춘숙이나 알선업자나 주인에게 딸을 양도했다. 부모는 대신 전차금이라는 돈을 받았고, 딸은 정해진 계약기간동안 성노동을 하면서 급료의 일부로 그 돈을 상환했다. 전차금 상환 이후 그녀들은 자유를 회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