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석의 승부수, 회의록 공개
민주당 쇄신위원회의 활동이 본격화되고 있다. 김민석 쇄신위원장의 회의록 공개 덕분에, 언론은 물론 민주당 지지 네티즌까지 모두 참여하는 길이 열렸기 때문이다. 현재 쇄신위의 최대 논점은 박상천 체제의 교체냐 지속이냐이다. 쇄신위에 참여한 다수가 박상천 쪽 인사라는 점에서, 매우 조심스럽게 논의가 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공개된 회의록만 보자면, 쇄신위는 박상천 대표의 퇴진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많이 나오고 있다. 특히 5차 회의에서는 박상천 대표가 용퇴했을 시, 새 지도체제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 실무안까지 제출되기도 했다.
박상천 대표는 민주당 취임 직후부터, 당내외의 압박에 시달렸다. 박대표는 민주당이 중심이 되는 중도정당의 건설로 대선과 총선을 치르겠다는 전략을 갖고 있었다. 실제로, 신당의 김한길 그룹이 탈당하여 통합민주당을 구성했을 당시, 이러한 그의 전략은 실현되는 듯했다. 그러나 박대표와 민주당의 길을 막은 것은 예상치 않게도 김대중 전 대통령이었다.
박상천과 민주당의 길을 막은 김대중 전 대통령
김대중 전 대통령은 이번 대선에서 사실 상 최전방 스트라이커로 활약했다. 그가 맡은 분야는 민주당 죽이기였다. 박대표와 민주당은 친노세력은 그대로 열리우리당에 두고, 노정권 실패를 인정하는 세력과 함께 중도 정당 건설을 계획했지만, 김대중의 묻지마식 통합론에 밀려, 원내 6석의 초미니 정당으로 전락했다. 대선 득표율 역시 0.8%에 불과했다.
한창 김대중 전 대통령이 민주당을 압박할 당시, 박대표는 몇 차례에 걸쳐 흔들린 적도 있었다. 그러나, 내외의 모든 압박에도 불구하고, 박대표는 어쨌든 정권 책임을 지지 않을 야당 민주당의 지위를 지켜낸 것만은 평가받을 만하다. 실제로 만약 박대표가 아닌 장상 대표가 민주당의 당권을 쥐었다면, 민주당은 현재 흔적조차 없이 사라졌을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상천 대표의 용퇴는 불가피해 보인다. 박대표가 민주당을 지켜낸 것은 인정할 만하나, 박대표의 당 운영방식이나, 그의 대외적 이미지로 볼 때, 현재의 민주당의 당력을 끌어올리는 데에는 역부족이기 때문이다. 회의록에서도 나오지만, 당의 대표라는 것은 과정에서 잘못했다고 물러나는 것이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 잘했다 하더라도, 결과가 참담하다면, 당의 쇄신을 위해 물러나주는 것도 당대표의 책무이다.
박대표가 물러난다고 한다면, 민주당은 시급히 당 체질개혁에 나서야 한다. 현재 민주당은 한화갑 대표 시절부터 반민주적 방식으로 운영되어왔다. 모든 정당이 다 채택하고 있는 집단지도체제도 철폐했고, 모든 인사를 당 대표가 임명하는 1인 독재체제를 유지해왔다. 민주당의 외연이 확대되지 못한 내적인 원흉이기도 하다.
현재 쇄신위는 기존의 전당대회 방식과 모바일 전당대회 방식 두 안을 놓고 논의 중에 있다. 현재의 민주당의 당력이라면, 8000명의 대의원을 소집해야 하는 전당대회는 무리라는 의견이 많다. 특히 이러한 전당대회는 후보들의 기탁금과 선거운동비가 너무 과다하게 지출되어, 후보 출마자가 제한받을 수 있는 단점도 있다. 고로, 민주당이 전당대회를 치르겠다면, 모바일 투표 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민주당은 대선을 앞두고 너무 많은 대의원과 당원들이 탈당하였다. 또한 대선 경선 기간 중, 무차별적으로 당원을 늘리기도 했다. 이러한 당원과 대의원을 전면적으로 재정비를 해야 한다.
만약 모바일 경선을 한다면, 현재의 대의원 숫자를 2만명 이상으로 대폭 늘여, 참여를 유도해야 한다. 또한 극심한 경쟁을 유발하는 1인 1표 대신, 1인 2표제를 채택하여, 후보자들 간의 연대를 가능토록 해야 한다. 또한 집단지도체제를 도입하여, 차점자들이 자동적으로 최고위원이 되어, 합의체로 당을 운영해야 한다. 지도체제 개편은 비단 박상천 한 명의 용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민주당의 지도체제 전반을 정상화시키는데 의미가 있는 것이다.
진통 겪는 신당과 창조한국당, 민주당의 기회는 온다
현재 신당은 2월 중 전당대회를 예정해놓았지만, 친노세력들의 반발로 합의가 쉽지 않다. 특히 비노 진영에서는 전당대회가 문제가 아니라, 친노세력과 이번 기회에 완전히 선을 긋자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전당대회를 하든 안 하든, 신당이 당을 재정비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진통이 있을 전망이다.
또한 문국현 후보의 창조한국당 역시, 문국현의 대선출마를 위해 급조된 만큼, 당의 재정비에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만약 민주당이 1월 안에 모바일 전당대회를 거쳐, 지도체제를 정비한다면, 시간적으로 매우 유리한 고지를 점령할 수 있다. 다른 당이 당내 투쟁에 몰입할 때, 민주당은 새로운 정권에서 정책 정당의 면모를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에서는 아직까지도 전국적 지명도를 확보한 인재들이 여러 명 있다. 쇄신위원장 김민석부터, 김경재 최고위원, 김영환 전 과기부 장관, 손봉숙 의원, 이승희 의원 등등 인적 자원은 충분하다. 이에 당을 재정비하면서, 정권 실정에 책임없는 외부인사를 영입하기 시작한다면, 신당과 창조한국당과의 역학 구도 속에서 얼마든지 제 1야당으로 자리잡을 가능성이 높다. 만약 민주당이 쇄신에 성공하면, 신당 역시 이에 영향을 받아, 친노세력과 결별하여 민주당 중심의 정계개편에 참여할 수도 있는 일이다.
김민석 쇄신위원장의 회의록 공개 덕에 민주당은 여론의 관심도에서 아직 벗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내부에서 어떤 쇄신안이 나와도, 현재의 박상천 대표 체제의 퇴진이 없다면, 마지막 남은 관심조차 사라지게 될 것이다. 최소한 당 대표는 2선후퇴를 해주어야 “아, 그래도 민주당이 진짜 변하려나 보다”라는 인식을 지지층에 확산시킬 수 있다.
그러므로, 민주당 쇄신위의 성공은 박상천 체제를 바꿀 수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시 말하지만, 이는 박상천 대표를 심판한다거나, 그에게 책임을 묻겠다는 뜻이 아니다. 단지, 민주당의 재기와 부활을 위한 최소한의 조치일 뿐이다. / 변희재
ⓒ 미디어워치 & mediawatch.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