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金泰榮 국방장관 내정자가 국회 인사 청문회에 나왔을 때 나는 기분이 상하였다. 밤중에 북한군이 댐의 水門을 열고 홍수를 일으켜 임진강의 언저리에서 놀던 여섯 명을 죽인 水攻 사태에 대하여 답변하는 것을 보고 실망하였다. 그는 계속 "고의성 여부를 모르겠다"는 식으로 이야기하였다. 그럼에도 언론은 金 당시 합참의장에 대한 재산문제가 나오지 않은 점을 지적, 好評을 하였다. 나는 戰時下의 국방장관에게 최우선적으로 요구되는 자질은 깨끗함보다는 군인정신이라고 보았다.
이번 天安艦 사태를 지켜보면서 金 장관에 대한 나의 생각이 바뀌었다. 대통령과 청와대가 '북한에 특이동향 없다' '북한 개입증거 없다' '豫斷 말라'는 말만 되풀이하여 국민들을 안개속으로 몰고 가고 그리하여 애국시민들이 '화병으로 急死 직전까지' 가는 가운데서 그래도 이 정도로 나라의 중심을 잡은 이가 金 장관이었다.
金 장관은 국회에서나, 기자들에게 이야기할 때 정직하고 정확하게 말하려고 노력하였다. 잘못된 발언은 즉시 고쳤다. 너무 솔직하다는 느낌이 없지 않았지만 그의 말에 신뢰가 갔다. 公職者의 말에 신뢰가 가는 경우는 드문 세상이다.
그의 용어 선택은 정확하였다. 야당의원이 '변명 말라'고 하니 '변명하는 게 아니라 해명하는 것이다'고 반박하였다.
그는 사건의 진상을 흐리지 않으려고 最善을 다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가 국회에서 "침몰 원인은 어뢰 가능성이 실질적이라고 생각한다"고 발언한 것이 이 사건의 성격규정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청와대 비서관이 이 발언을 보고는 金 장관에게 쪽지를 넣게 하여 '대통령이 너무 어뢰쪽으로 기운다고 걱정한다'는 요지의 견제를 하였다. 청와대는 이 사건의 진상을 은폐 내지 축소하려고 애썼고, 金 장관과 국방부는 진실을 놓지 않으려고 노력하였다.
특히 어제 金 장관이 천안함 침몰 원인을 '외부폭발'이라고 발표하게 하여, 북한정권을 사실상 犯人으로 지목하고 '국가安保차원의 중대한 사태'라고 규정한 것은 현 상황에 대한 정확한 판단이자 정부의 대처 방향을 올바르게 제시한 것이다. 이런 이야기가 대통령 입에서 나오지 않은 것이 이상하다. 어제는 金 장관이 대통령 역할을 대신한 셈이다.
천안함 침몰 사건에 대처한 그의 기본 자세나 판단에서도 큰 잘못이 없다. 3월26일 밤 9시22분 침몰 직후부터 북한 잠수함정의 공격에 의한 침몰이라고 판단, 군에 비상을 걸었다. 즉각적으로 발포명령도 내리고 對潛헬기도 출동시켰으며 공군 전투기도 출격시켰다. 실종자 인양에도 최선을 다하였다. 軍은 이번에 살 사람을 죽게 내버려둔 경우가 없다.
미시적으로 보면 문제가 있다. 하지만 軍艦이 한밤중에 격침되는 예기치 못한 상황에선 인간이 기계적으로 정확하게 대처한다는 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어느 나라에서나 있는 혼란상이었다. 사건 발생 시간 보고가 부대에 따라 엇갈린 것을 놓고 언론이 소설을 쓰는 데 악용하여서 그렇지 이는 단순실수였고 軍은 즉시 바로잡았다.
국방장관이 지시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천안함 생존자들에게 환자복을 입혀서 기자회견을 하게 한 것은 크게 잘못된 일이었다. 무책임한 언론에 너무 휘둘리는 모습을 보인 면도 있다.
합참의장과 국방장관이 함참 실무자로부터 사건 발생 보고를 청와대보다 늦게 받은 것은 실무자의 단순실수로 보이는데, 이 정보를 언론에 흘려 '전투중인 지휘관'을 흔들고 있는 것은 청와대가 아닌가 의심이 간다.
金泰榮 장관이 대통령을 대신하여 중심을 잡아가는 데 대하여 감사해야 할 청와대의 대통령 참모들 일부가 오히려 "너무 나간다. 대통령을 어렵게 만든다"는 식으로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시기, 질투심이 섞인 불만인 듯하다. 그러면서 문책이니 肅軍 운운하는 이야기도 들린다. 사건의 진상을 축소하려는 대통령의 생각에 동참하지 않은 데 대한 불만으로 문책, 肅軍을 한다면 북한군에 단호한 지휘관을 물먹이고 김정일과 청와대 눈치를 잘 보는 장교들을 중용하겠다는 것인지?
지금 金泰榮 장관은 외롭다. 좌경언론, 좌경정치세력은 청와대와 대통령의 말을 인용하여 국군을 공격하고 김정일을 감싸는 희한한 모습을 보였다. 한나라당에서마저 전투중인 장관더러 물러가라는 이야기를 한다. 軍 출실 의원들을 제외하곤 金 장관을 보호하려는 정치인들이 보이지 않는다. 물론 그런 언론도 없다. 청와대로부터 나오는 金 장관에 대한 비공식 논평은 敵對的이다.
金泰榮 장관과 國軍은 이번 사건의 피해자이다. 가해자일 수밖에 없는 김정일에 대한 분노가 들끓어야 할 터인데, 처음부터 청와대와 대통령은 '북한 개입 증거 없다'는 말로써 그 분노의 出口를 봉쇄하였다. 그러니 국민감정이 선동언론과 합세, 가해자인 국군을 욕하는 쪽으로 흘렀다. 국군을 동네북으로 만드는 언론과 정당일수록 이번 사건의 원인과 관련하여 北韓의 北자도 꺼내지 않는다. 가해자를 편들고 피해자를 욕하는 풍조는 일종의 정신이상 상태이다.
비겁한 인간은 용감한 사람을 존경하지 않고 질투한다. 정상적인 인간은 자신을 대신하여 싸우는 사람에게 고마워하는데, 비열한 인간은 용감한 사람 때문에 자신이 비겁한 인간이 되어버린 점에 원한을 품는다.
미국은 9.11 테러라는 기습을 당하여 3000명이 죽었지만 아무도 문책하지 않았다. 사태를 예방할 책임이 있었던 CIA와 FBI 수뇌부를 바꾸지 않았다. 국방부 청사가 공격당하였지만 국방장관도 바꾸지 않았다. 잘못이 없어서가 아니다. 미국이 피해자이기 때문이었다. 피해자를 격려, 보호하지 않고 그로기 상태인 피해자를 가혹하게 문책하는(그러면서 가해자에 대하여는 입도 뻥긋 하지 않는) 인간이나 조직은 노예근성의 소유자일 수밖에 없다.
이번 사건으로 국방장관, 합참의장, 해군참모총장 등 군의 책임자를 문책하여선 안 된다. 이들은 큰 방향에서 대처를 잘 하였다. 이들은 피해자이다. 국가가 보호, 격려해야 할 사람들이다. 청와대처럼 對국민 허위보고를 한 적이 없는 이들이다. 기습당한 책임을 묻겠다면 국가가 기습당하지 않을 만한 장비와 체제를 보장하였는지를 먼저 점검해야 한다. 기습당하였다고 軍 지휘관을 문책하면 군인은 싸울 수가 없다. 보복하여야 할 때 보복하지 않았다고 문책하는 것은 정당하다. 로마는 패전한 장군에게 위로연을 베풀어주었고, 카르타고는 패전한 장수를 죽였다. 망한 것은 가르타고였다. 미국 육군의 웨스터모어랜드 장군은 101 공수사단장일 때 낙하산 훈련도중 일곱 명의 사병이 죽었지만 다음날에도 훈련을 강행하였다. 물론 그 사고로 문책당하지 않았다. 군 부대의 사소한 사고 책임을 지휘관에게 묻기 시작하여 군대는 싸울 수가 없다.
李明博 대통령은 군대에 가지 않은 경험 때문인지 뭔가 군대에 대하여 거북해 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헌법기관인 국가안전보장회의(NSC) 기능을 사실상 폐지하고, 戰時의 후방통제기관인 비상계획위원회를 없애고 그 업무를 행정안전부의 일개 국으로 축소시킨 일, 국방보좌관 자리가 없어지고, 측근을 국방차관으로 임명, 장관과 불화하도록 방치한 일, 그리고 이번 사태 등.
김정일과 그 애숭이 아들에게 극존칭을 쓰고 反국가단체인 북한정권을 국가로 호칭하는 이가 천안함 사태에 대하여 대통령의 귀와 눈 역할을 하는 안보 수석이다. 김정일에 대하여 비굴한 모습을 보이는 사람들일수록 국군이나 국가, 그리고 애국세력에 대하여는 잔인한 경우를 많이 보아 왔다.
대통령과 청와대가 나서서 고군분투하는 김태영 장관과 군 지휘관들을 문책하려 한다면 李明博 대통령은 宣祖가 되고 金泰榮 장관은 李舜臣이 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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