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선없이 낙천하면 후원금 모두 갚아야"
(서울=연합뉴스) 류지복 기자 = 4.9 총선에서 경기 용인 지역에 공천을 신청했다가 탈락한 통합민주당 김상일 전 후보는 최근 선관위에 후원회 해산 신고를 하면서 황당한 경험을 했다.
예비후보로 등록한 후 설치한 후원회에서 500여만원의 후원금을 걷어 선거비용으로 이미 사용했는데, 김 전 후보가 개인적으로 이 돈을 마련한 뒤 국고로 반환해야 한다는 얘기를 선관위로부터 들었기 때문이다. 선거비용 부담을 덜기 위해 후원회를 설치했는데 결국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한 셈이 된 것이다.
이런 사례는 김 전 후보에게만 국한된 일이 아니다. 4.9 총선에 공천을 신청했다가 낙천한 이들이 후원금을 거뒀을 경우 대부분 똑같은 상황에 놓여있다. 실제로 강원도 한 지역구에 공천을 신청했던 박모 전 후보도 후원금으로 걷은 500여만원을 토해내라는 말을 들었다.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은 공천을 신청한 예비후보가 당내 경선에 도달하지 못한 채 공천에서 떨어졌을 경우 후원회를 둘 수 있는 자격을 상실하는 동시에 그동안 걷은 후원금을 모두 국고에 귀속토록 한 정치자금법 조항 때문이다.
다시 말해 예비후보가 여론조사든, 당원투표든 당내 경선을 거쳤다면 남은 후원금만 정당에 귀속시키면 되지만, 경선에 참여도 못한 채 낙천했을 경우에는 기부받은 후원금 총액을 국고에 반납해야 한다고 규정돼 있는 것이다.
선관위는 이에 대해 "예비후보들이 난립하는 것을 막고, 예비후보들이 후원회에서 모금한 돈을 실제 선거운동이 아닌 다른 목적으로 사용하는 일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선거에는 관심이 없으면서 후원금만을 노리고 예비후보로 등록하는 부작용을 막기 위한 것이라는 취지다.
하지만 김 전 후보는 이 규정이 `빈대를 잡으려다 초가삼간을 태우는 식'으로 정치활동을 지나치게 제약하는 과잉입법이라는 생각이다. 똑같이 선거운동 비용으로 사용했는데 경선 과정까지 도달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차별하는 것은 형평성에도 맞지 않다는 것이다.
강원도에 출마했던 박 전 후보는 "오히려 이 규정이 불법 정치자금을 양산할 수 있다"며 "낙천하면 후원금을 토해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정상적으로 후원금 처리를 하는 게 아니라 차라리 영수증을 끊지 않고 몰래 돈을 받는 게 나았을 것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김민전 경희대 교수는 "예비후보가 경선까지 못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모든 책임을 예비후보에게 전가하는 조항으로서 정의롭지 못하다"며 "결국 돈이 있는 사람만 선거에 나서라는 말로 해석될 수 있어 형평성에도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 조항의 적법성 여부는 결국 헌법재판소의 위헌 심판대에서 가려질 것으로 보인다. 김 전 후보는 "일단 500여만원을 국고에 귀속시킬 예정이지만 위헌성이 다분한 조항이라는 생각"이라며 "비슷한 상황을 겪은 예비후보들을 모아 조만간 헌법소원을 내겠다"고 말했다.
jbryo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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