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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식민지 시대 조선인, 30대 유권자

참을 수 없는 중간자의 괴로움

지난 6월 KBS 심야토론에서는 지방선거에 드러난 30대들의 목소리를 듣는 프로그램이 방영되었다. 그동안 사회적 발언권을 가지지 못했던 자들을 배려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기획이었다. 패널로 출연한 이들은 386논객만큼 익숙지는 않은 얼굴로 우리사회 30대들의 존재감을 보여주는 듯 했다. 하지만 드물게 찾아온 기회는 생산적이지 못한 채 마무리되었다.

지방선거에서 나타난 표심을 긍정하는 측으로 참여한 고재열과 탁현민은 마치 한국의 30대들이 여전히 오렌지족이기라도 한 듯 묘사했다. 특히 탁현민은 30대들이 민주화 운동에 무임승차한데 대한 부채의식이 있다고 발언함으로써 자학적 역사관을 드러냈다. 이 정도면 세뇌교육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수준이다. 가치관의 차이를 떠나 사실관계 자체가 왜곡되었다. 하지만 이런 현상도 무리는 아니다. 전대협 의장님께서 솔방울로 화염병을 만들고 나뭇가지로 쇠파이프를 만들었다는 전설을 만들어 내지 않은 게 다행인지 모른다. 이날 토론은 의식 있는 척 하는 젊은이들이 어떤 프레임에 갇혀있는지 잘 보여주었다.

오늘날 386의 권력은 역사를 장악한데서 나온다. 그것은 자신들을 미화하기 위해 철저히 조작된 역사다. 386정치건달들이 무위도식으로 기생하면서도 당당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지만 그들에 대한 과잉평가만큼이나 한쪽에서는 과소평가된 부분도 있게 마련이다. 탁현민의 발언처럼 1970년대 생들이 민주화운동에 무임승차했다는 것은 얼마만큼 근거 있는 소리일까? 역사를 거슬러 가다보면 386들에 의해 완전히 지워진 부분을 발견하게 된다.

1991년 당시 갓 스무 살의 젊은이들은 분신자살로 공안정국에 항거했다. 이른바 분신정국이다. 군사정권의 끄트머리에서 90년대 학번 새내기들은 그렇게 자신을 내던졌다. 그러나 똑같은 죽음이라도 이들을 기억하는 이는 드물다. 독자들 중 그들의 이름을 떠올릴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현대사의 수많은 열사들 가운데 이들은 유독 협소한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돌이켜보면 1991년 분신정국은 1970년대 생들의 운명을 예감케 하는 사건이었다. 이들은 끊임없이 386세대에 이용당하고 폐기되기를 반복했다. 그 시절 김지하는 사회의 어른으로서 할 말을 했다. 꽃다운 젊은이들이 도대체 누구를 위해, 무엇 때문에 죽어가야 했는가. 훗날 국회의원이 된 386정치인들이 룸살롱을 들락거린 것은 그로부터 채 십년도 지나지 않아서였다. 그들의 권세가 절정에 달했던 시절도 그렇다. 그 수많은 금배지 중에 1990년대 학생운동 지도자를 위한 자리는 하나도 없었다. 그들은 끝끝내 끼리끼리 해먹는 패거리 집단에 불과했다.

훗날 386운동권 귀족들은 그 시대의 대학생들에게 ‘신세대’ 운운 하며 학생운동이 사라진 책임을 전가했다. 그러나 신세대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도 아니고, 어느 날 문득 서태지 가 등장한 것도 아니다. 1991년 소련이 해체되고 1993년 문민정부가 출범하자 대한민국에는 운동의 진공상태가 발생했다. 한때의 운동권 리더들은 모두 제각기 길을 갔다. 김문수와 이재오가 보수정당의 국회의원이 되고, 유시민과 진중권은 독일 유학을 떠났으며, 송영길은 고시공부를 했다. 이것이 1990년대 초반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납작 엎드려 있던 자신들의 역사는 언급하지 않는다. 오로지 학생운동이 사라진 책임을 그 시대의 대학생들에게만 묻고 있다. 1990년대의 역사를 조작하는 386들에게 30대들은 이렇게 되물어야 한다.

“그때 너희는 어디에 있었느냐?”

스톡홀름 신드롬

역사적 체험으로 볼 때 30대들은 앞선 세대와 뚜렷이 구분된다. 그러나 놀랍게도 이들은 386정치세력의 가장 든든한 지원자들이다. 이런 현상은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스톡홀름 신드롬이 아니고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30대들은 역사와 언론을 장악한 386프레임에 갇혀있다. 자신들은 가장 큰 피해자이면서도 386깡패들의 비난이 두려워 또 다른 희생자를 찾아 나선다. 스스로를 진보주의자라고 착각하는 30대들이 실상 바이러스에 감염된 좀비들과 동일한 행태를 보이고 있다는 것은 깨닫지 못한다.

작년 한 해 인터넷에서는 소위 ‘20대 개**론’이라는 글이 세대론을 자극했다. 많은 이들이 그 글의 필자를 386세대일 거라고 예상했지만 뜻밖에도 원작자는 30대였다. 도대체 30대가 왜 이토록 모진 발언을 후배들에게 던진 것일까? 이 사건은 오늘날 30대들이 세대 간의 대립에서 중간자로서 처한 입장을 보여준다.

일제시대 조선인들은 제국주의자들을 따라 만주로, 동남아로 진출했다. 그곳에서 현지인들과 가장 격렬히 충돌한 것은 조선인들이었다. 이런 현실은 종전이 되었을 때 조선인 포로수용소 근무자들이 B급 전범으로 심판받는 계기가 되었다. 우리는 일본제국주의만을 절대악으로 기억하지만 뜻밖에도 제3세계 원주민들은 조선인을 더 혐오했다. 지금 세대 간의 갈등에서 30대들은 식민지 조선인과 닮았다. 386들의 수탈에 끊임없이 시달리면서도 자신의 존재감을 또 다른 피압제 집단을 통해 확인하는 딜레마에 빠져 있다. 하지만 식민지 조선인들처럼 30대들도 자신의 정체성을 깨달아야만 한다.

2007년 대한민국은 한 권의 책을 통해 젊은 세대의 문제를 인식하기 시작했다. 우석훈이 쓴 ‘88만원 세대’였다. 그는 한국에서 최초로 젊은 세대의 문제에 관심을 가진 공로로 진보경제학자의 브랜드 가치를 높였다. 하지만 지식인으로서 그가 과연 앞서간 것일까? 젊은 세대의 빈곤문제는 이미 십년 전 외환위기가 터지면서부터 시작된 것이다. 그 시대의 20대들부터 빈곤의 늪으로 빠져들었고 88만원 세대의 미래가 이미 30대들에게 펼쳐지고 있다. 하지만 그 사이 어떤 지식인도 이들이 겪는 고충에 대해 주목하지 않았다. 우석훈은 무려 십년이나 지각했음에도 한국 지식인 사회의 무관심과 무능으로 인해 선구적 학자로 인정받게 되었다.

이렇게 한국의 30대들이 사회적으로 잊혀진 존재가 된 것은 일정부분 자초한 면이 있다. 자신들이 역사적으로 어떤 단계에 처해 있는지 인식하지 못한 채 앞 세대에 휩쓸려 간 결과다. 지금처럼 30대들이 386의 전위부대로 남아 있다면 어떤 평가를 얻게 될지 너무도 자명하다. 또 다른 난닝구 집단으로 자리매김 하는 것이다. 난닝구는 선거 때마다 민주당에 무조건적인 지지를 보내던 호남 서민들을 지칭한다. 이들은 열린우리당 창당과 분당 과정에서 철저히 배신당하는 경험을 했다. 그들 대다수는 김대중 정권 하에서 콩고물 한번 묻혀본 적이 없는 이들이었지만 졸지에 구악의 근원으로 심판받아야 했다. 이것이 무조건적인 지지를 보낸 자들이 맞이하는 최후다.

30대들은 자신의 역사적 체험에 대해 독자적 목소리를 내야 한다. 깡패 같은 운동권 문화를 청산하고 문화적 민주주의를 완성한 세대, 날벼락 같은 외환위기를 만나 사회진입을 거부당한 세대, 한때는 주목받는 신세대였지만 이제는 부채만 떠안은 세대로 사회에 인식시켜야 한다. 자기 목소리를 내지 않을 때 주변인화는 더욱 심각하게 진행된다. 앞선 세대를 극복하는 것은 선택사항이 아니라 역사가 부여한 책무다. 후배들을 이끌고 새 시대 맏형의 길을 걸어가야 한다. 30대들의 정신적 독립으로부터 한국사회의 진정한 혁명은 시작될 수 있다. / 정해윤 미디어워치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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