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헌 · 국사교과서연구소 소장] 사리원역 7여인 납치 미수 사건은 당시 조선일보, 동아일보, 매일신보, 시대일보 등 네 군데 신문에 보도됐다. 사리원이 지역적으로 치우친 데다 취재원 접촉이나 경찰로부터 정보 취득이 용이하지 못한 탓인지 신문마다 사실 관계에 있어 다소의 차이가 있다. 관련 인물의 수와 장소가 다르고, 시간별 사건 전개가 다르다. 따라서 사건을 재구성하기가 쉽지 않다. 그 중 ‘일본인에게 팔린 작부, 법률상 계약 해석이 문제’라는 제하의 조선일보 기사도 마찬가지다. 200자 원고지 2.4매 기사가 한 문장으로 되어 있는데다 여타의 신문과 사실 관계에 있어 차이를 보이고 있다. 그럼에도 필자가 주목하는 이유는 이 기사에는 다른 신문에 없는 계약서(契約書)를 실어 당시 예창기‧작부의 고용계약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사리원 경찰서에 일본인 두 사람과 조선 여자 여섯 명이 함께였다 함은 이미 보도한 바, 일은 법률상 문제에 이르러 상당한 재판을 아니 할 수가 없는 사태에 미쳤으므로 그 여자들의 부모들 중 혹은 서신으로 신문지국에 그 계약된 사정을 말하기도 하며 혹은 그 계약서를 가지고 와서 도저히 그 책임자인 향정일지진의 죄악
7일 낮 12시, 한일우호단체인 반일동상진실규명공동대책위원회(대표 이우연, ‘공대위’), 위안부법폐지국민행동(대표 김병헌, ‘국민행동’), 주옥순TV 엄마방송(대표 주옥순, ‘엄마부대’)가 광화문 주한일본대사관 앞 위안부상 옆에서 연대 기자회견을 열었다. 정의기억연대(대표 이나영, ‘정의연’)의 정기수요집회에 대한 맞불 형식으로 치러진 이날 기자회견에서는 공대위와 국민행동, 엄마부대는 ‘수요집회 중단’, ‘정의연 해체’, ‘위안부상 철거’와 관련해서는 한 목소리를 내면서 위안부 문제와 정의연 문제와 관련해 각각 성명을 발표했다. 이날부로 공대위 정기 집회는 72회차, 국민행동 정기 집회는 25회차째다. 공대위-국민행동-엄마부대는 당분간 위안부상 근처에서 연대 수요맞불집회를 계속 같이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아래는 공대위-국민행동-엄마부대의 연대 기자회견 현장 사진과 성명서(기자회견문) 전문이다. 1. 반일동상진실규명공동대책위원회 성명 [반일동상진실규명공대위 제72차 성명서] 파렴치범 윤미향에 대한 철저한 수사와 정의연의 해산을 촉구한다 어제 3월 7일,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2017년에 갈비뼈가 부러진 전 위안부 길원옥에게 독일에서 노래를 시키는 등
[김병헌 · 국사교과서연구소 소장] 사리원역 인근 정방여관에 묵고 있던 일곱 여인들이 반환할 돈을 마련하기 위해 궁리를 하고 있던 차에 일본인 오산 형제는 이들에게 전차금 2,832원을 돌려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여인들은 2,100원은 돌려줄 수 있으나 732원은 오사카에서 계약 외에 매춘의 대가로 받은 돈이기 때문에 돌려줄 수 없다고 요구를 거절했다. 이에 오산 형제들도 물러서지 않고 청구 금액 전부를 반환하라고 협박하고, 여인들은 이에 맞서 2,100원만 받겠다면 약속한 날짜 안에 반드시 갚겠지만 거절할 경우 강경 대응하겠다는 단호한 입장을 전했다. 일이 뜻대로 돌아가지 않자 오산 형제는 안악으로 연통을 보내고 오사카에 전보를 치느라 분주한 가운데 강계 출신 조금선은 전치 10일의 진단서를 첨부하여 경찰서에 고소장을 접수하고 다른 여인들도 불일간 정식으로 소송을 제기할 것이라고 했다. 한편 경찰은 경찰대로 사실관계를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오사카 금궁 경찰서에 조회하느라 분주한 가운데 여인들의 가족들이 속속 사리원에 도착하거나 연락을 보내왔다. 일인들과 여인들 사이에 팽팽한 기싸움이 펼쳐지고 있는 가운데 또 다른 사건이 터졌다. 13일 새벽 4시, 일곱
최근 미국 상원이 중공이 운영하는 공자학원에 대한 감독을 강화하는 법안을 통과시킨 가운데, 중공 공산당에 반대하는 국내 자유우파 시민단체들이 공자학원 폐쇄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 예정이다. 시민단체 자유민주통일교육연합(이하 자교련)과 공자학원실체알리기운동본부(이하 공실본, https://blog.naver.com/gongbanmom) 등 15개 가맹단체는 오는 25일(목) 오전 11시 국회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개최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국회가 공자학원 추방 대책 수립에 나설 것을 촉구할 계획이다. 동시에 자교련 등은 대한민국 국회의원 300인 전원에게 공자학원의 실체를 알리는 서한을 발송했다. 공자학원이 중국공산당의 선전·첩보 공작기관일 뿐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 그 정체를 인식하고 추방운동을 전개하고 있기 때문에 국내에서도 국회의원들이 공자학원 추방운동에 나서줄 것을 요청하는 내용이다. 이들은 미리 배포한 성명서에서 “공자학원은 중국공산당이 공산주의와 마오쩌둥 사상을 선전하고 중국에 대한 환상을 유포하며, 주재국의 정보를 수집하고 한국 내 중국인 사회를 감시하는 선전·첩보 공작기관이라는 것이 세계 각국의 보편적 평가다”라며 “결론적으로 공자학원이 내세우
[김병헌 · 국사교과서연구소 소장] 국권상실기(1910~1945) 조선 땅에서 일어난 여인들의 수난사(受難史)를 통해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김병헌의 시간여행(時間旅行)’ 연재를 시작합니다. 이 연재를 통해 매소부(賣笑婦), 추업부(醜業婦), 위안부(慰安婦) 등으로 불리어진 당시 하층 여인들이 어떤 삶을 살았으며, 어떻게 일본군 위안부가 되었는지 궁금해 하시는 분들께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 저자 1925년 8월 11일 12시 50분, 경의선 사리원역! 만주 봉천행 기차가 멈추자 일곱 명의 여인과 세 명의 일본 남자들이 역사(驛舍) 개찰구를 나와 대기하고 있던 자동차를 둘러싸고 큰 소동을 벌였다. 일본어로 말하는 남자들이 여인들에게 자동차에 타라고 윽박지르고, 여인들은 타지 않겠다고 완강하게 버틴 것이다. 얼마간 밀고 당기며 옥신각신하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이윽고 남자들의 손에 들려있던 몽둥이가 둔탁한 소리를 내며 여인들을 가격하자 세 명의 여인이 쓰러졌다. 갑작스런 폭력 사태에 구경꾼들이 역 광장을 가득 매우고 웅성거리는 가운데 신고를 받은 경찰이 남녀 모두를 사리원 경찰서로 연행했다. 취조 결과, 이들 여인들
[김병헌 · 국사교과서연구소 소장] 호사카 유지의 글을 지적할 때마다 마음속으로 이제는 그만해야지 다짐하면서도 새로 발표되는 그의 글을 보면 또다시 키보드를 두들기게 된다. 늘 그의 글에는 역사적 사실에 무지하거나, 사료를 잘못 이해했거나, 불과 며칠 전의 말을 바꾸는 등 연구자로서의 자질을 의심하기에 충분한 내용들이 빠지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 3월 12일, 정의기억연대가 주최한 “램지어 교수 ‘사태’를 통해 본 아카데미 역사부정론”이라는 주제의 화상토론회에서 그가 발표한 “공창제와 일본군 ‘위안부’제의 차이”라는 제목의 글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먼저, 1938년 2월 7일의 ‘시국이용, 부녀자유괴 피의 사건에 관한 건’이라는 문건과 관련하여 ‘일본군이 업자들을 고용해 여성들을 유괴했다’고 하였으나 이는 명백한 거짓말이다. 일본군은 민간업자들에게 위안소 운영을 의뢰했을 뿐 직접 고용하지 않았으며, 여성들을 유괴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만약 군인이 민간인인 여자를 유괴했다면 중대한 전쟁범죄로 전범재판에 넘겨져 법정 최고형에 처해지고도 남을 일이다. 게다가 해당 문건에는 부녀 유괴 혐의로 조사를 받은 민간 업자에게서 혐의를 발견하지 못하여 별도의 조치를 취하
일본 최고재판소가 “위안부 문제로 날조보도를 했다”고 지적했다가 우에무라 다카시(植村隆) 전 아사히신문 기자로부터 명예훼손 소송을 당한 니시오카 쓰토무(西岡力) 레이타쿠대학 객원교수의 손을 들어줬다. 일본 산케이신문은 12일자 ‘전 아사히의 우에무라 다카시 씨, 패소 확정 위안부 기사에 대한 비판에 둘러싸여(元朝日の植村隆氏、敗訴確定 慰安婦記事への批判めぐり)’ 제하 기사로, 일본 최고재판소 제1소법정(코이케 히로시(小池裕) 재판장)이 11일자로 우에무라 기자 측의 상고를 배척하는 결정을 내렸다고 전했다. 우에무라 기자 측의 청구를 기각한 1, 2심 판결을 확정한 것이다. 일본 좌파 잡지인 ‘슈칸긴요비(週刊金曜日)’ 발행인인 우에무라 기자는 아사히신문 기자 시절인 1991년 8월 11일자 지면(오사카판)을 통해 위안부 첫 증언자인 김학순 씨에 대한 특종 보도로써 위안부 문제를 한일 양국 간의 외교 쟁점으로 촉발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다. 하지만 우에무라 기자의 특종 보도는 보도 직후부터 니시오카 교수로부터 김 씨의 전력을 조작해서 작성한 날조보도라는 지적을 계속해 받아왔다. 우에무라 기자는 2015년 1월, 니시오카 교수에게 손해배상 등을 요구하는 명예훼손 소송을
[이우연 · 낙성대경제연구소 연구위원] 미국 노스웨스턴대학의 에이미 스탠리 교수가 내가 일본 제이비프레스(JBpress)와 재팬포워드(JapanForward)에 기고한 글을 두고 “대응할 가치도 없는 글”이라며 트위터(Twitter)에 10개가 넘는 글을 썼다. 이성보다 감성이 앞선 유치한 모습이다. (관련기사 : '반일종족주의' 이우연, 램지어 옹호에…美역사학자 "대응가치 없다") 내 글의 요지는 1) 매춘부나 위안부의 매춘숙ㆍ위안소와의 관계는 계약이다. 2) 위안부에 대한 처우는 매춘부보다 양호하였다. 3) 관헌에 의한 위안부 강제연행은 근거가 없다. 4) 위안부의 다수는 부모에 의해 팔린 딸이나 전쟁 이전부터 매춘부로 일하던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1)과 2)는 램지어 교수의 주장을 소개하고 그가 옳음을 주장한 것이고, 3)과 4)는 그간 내가 여러 번 말해왔던 이야기를 다시 한 것이다. 스탠리 교수는 내가 4)번, 그중에서도 부모가 딸을 파는 일이 당시에 많았다는 사실을 쓰면서 옛 위안부 문옥주를 언급한 것을 지적했다. “업자보다 자신을 판 아버지가 더 밉다”고 문옥주를 지목한 내 실수를 지적한 것이다. 맞다. 이것은 문옥주가 아니라, 김군자의 증언 속
[김병헌 · 국사교과서연구소 소장] 3월 9일자 조선일보 32면에는 주경철 서울대 교수가 쓴 “자발적 매춘? 일본은 점령지서 네덜란드 여성들도 끌고 갔다”라는 제목의 칼럼이 실렸다. 제목만 봐도 주교수의 주장은 태평양 전쟁 시 수많은 여성들이 일본군에 의해 끌려가 성노예 생활을 했기 때문에 ‘자발적 매춘’이라는 말은 옳지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필자는 그가 과연 위안부 문제를 단 하루라도 고민하고 이 글을 썼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관계나 앞뒤 맥락이 전혀 맞지 않기 때문이다. 우선 ‘위안부피해자법’에 명시하고 있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정의부터 살펴보자.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란 일제에 의하여 강제로 동원되어 성적(性的) 학대를 받으며 위안부로서의 생활을 강요당한 피해자를 말한다.” - ‘위안부피해자법’ 제2조 1항(정의)> 주 교수는 “태평양전쟁 당시 소위 ‘위안부’로 징발된 희생자 중에는 한국과 중국, 필리핀 등 아시아 여성들 외에 유럽 여성들도 있었다.”고 하며 그 사례로 네델란드 여성 얀 러프-오헤른(Jan Ruff-O’Herne)을 거론했다. “1944년 2월 일본군 당국자와 인
[김병헌 · 국사교과서연구소 소장] 3월 6일 미디어워치에 “위안부 계약 없었다? 호사카 유지 저서에서 위안부 계약서 발견!”이란 제목의 기사가 보도되자 호사카 유지 (前) 세종대 교수는 이에 대해 발끈하며 자신의 페이스북에 필자를 대상으로 한 반박 글을 썼다. 발단은 3월 1일 호사카와 송영길(더불어민주당 위원) 등 36명이 참여한 ‘램지어 교수에게 보내는 항의 서한문’이다. 이 서한문에서 “수많은 여성들이 일본군에 의해 강제로 끌려가거나 취업사기로 일본군의 성노예가 되었다. 거기에는 일본 여성뿐만이 아니라 조선인, 중국인, 대만인, 동남아인, 유럽의 네덜란드인과 독일인도 포함된다.”며,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있어 ‘성 계약’ 자체가 존재하지 않으며 모든 여성들이 끌려가거나 다른 명목에 속아서 연행되어 도망갈 수 없는 환경에서 성노예가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 역사의 진실이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램지어 교수는 일본 정부와 일본군이 개입하지 않았다고 허위 주장을 했고, 업자와 여성들이 서로의 이익을 위해 성 계약을 맺었다는 허위에 입각한 논문을 썼다. 그는 논문을 통해 일본 내의 매춘업 상황을 확대 해석하면서 일본군 ‘위안부’가 모두 매춘부였다고 우기는
[편집자주] 본 반론서는 존 마크 램자이어 교수의 논문철회를 요구하는 미국 경제학자들의 성명(‘Letter by Concerned Economists Regarding “Contracting for Sex in the Pacific War” in the International Review of Law and Economics’)과 관련, 니시오카 쓰토무 교수가 작성해 한국에서는 미디어워치에 단독으로 투고한 원고를 번역 공개한 것입니다. 일본어 원문은 일본 역사인식문제연구소에 공개(‘慰安問題に関するラムザイヤー教授論文撤回を求める経済学者声明の事実関係の誤りについて’)돼 있습니다. (번역 : 미디어워치 편집부) 위안부 문제에 관한 램자이어 교수 논문 철회를 요구하는 경제학자 성명의 사실관계 오류(慰安婦問題に関するラムザイヤー教授論文撤回を求める経済学者声明の事実関係の誤りについて) 니시오카 쓰토무(西岡力, 역사인식문제연구회(歴史認識問題研究会) 회장, 레이타쿠(麗澤)대학 객원교수, 모라로지연구소(モラロジー研究所) 교수) 하버드 대학의 존 마크 램자이어(John Mark Ramseyer) 교수가 쓴, 전쟁 중 위안부에 관한 학술논문 ‘태평양전쟁에서의 성서비스 계약(Contra
‘위안부 논문’ 하버드 로스쿨 램자이어 교수의 학적 소신을 지켜주려는 한일 지식인들의 연대 활동이 이어지고 있다. 5일, 레이타쿠(麗澤)대학 객원교수이자 국가기본문제연구소(国家基本問題研究所, 이하 ‘국기연’) 기획위원인 니시오카 쓰토무(西岡力)는 국기연 ‘이번주 직언(今週の直言)’ 코너에서 램자이어 교수 논란을 다뤘다. 니시오카 교수는 ‘미국 교수 ‘위안부’ 논문에 대한 비판에 문제있다(米教授「慰安婦」論文への批判に問題あり)’ 제하 글을 통해 “램자이어 논문에 대한 비판에는 학술적인 상호비판에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조건이 결여된 것이 많다”고 지적했다. 학술적 논의를 하려면 논문이 일단 계속 공개돼 있어야 학술적인 상호비판은 무엇을 요구하는가. 그것은 일단 상대의 인격을 존중해야하고, 또한 논의를 학술적인 내용으로 좁혀야 함은 물론, 비판도 어디까지나 개인이 책임을 갖고 당당히 이루어지는 것 등이다. 그렇지만 지금 나오고 있는 램자이어 논문에 대한 비판에는 이것이 부족하다는 것이 니시오카 교수의 설명이다. 니시오카 교수가 문제시하는 것은 특히 논문철회 요구다. 니시오카 교수는 “학술적 논의를 하려면 우선 상대방의 논문이 계속 공개돼 있어야 한다”면서 “그럼에도
반일좌파 세력은 그간 ‘일본군 위안부’였던 여성들이 성노예였으며 별도의 계약도 없이 착취를 당했다는 주장을 지속적으로 해 왔다. 하지만 최근 반일좌파 세력 인사의 저서에서 오히려 위안부 여성들의 계약을 증명하는 계약서 양식이 발견돼 파문이 예상된다. 지난 1일, 호사카 유지 전(前) 세종대학교 교수 등 36명의 반일인사들은 미국 하버드대학 로스쿨 존 마크 램자이어 교수의 논문을 규탄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성명에서 이들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있어 ‘성(性)계약’ 자체가 존재하지 않으며 모든 여성들이 끌려가거나 다른 명목에 속아서 연행되어 도망갈 수 없는 환경에서 성노예가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 역사적 진실”이라고 주장했다. 성명을 발표한 인사들 중에서 호사카 유지 전(前) 교수는 같은날 ‘뉴스트리 KOREA’에 올라온 “램지어와 신친일파 엉터리 주장 저격 ‘위안부 강제동원’ 증거들”이라는 제목의 영상에서 전화 인터뷰로 다음과 같이 주장하기도 했다. “그 때 그렇지 않아도 글을 읽을 수 없는 분들이 거의 대부분이었거든요. 그런 사람들이 어떻게 계약서를 주도적으로 읽고, 이해하고 서명을 할 수가 있어요? 한국 여성들의 계약서 자체는 하나도 남아 있지 않습니
[이우연 · 낙성대경제연구소 연구위원] 하버드대 램자이어 교수의 위안부 관련 논문에서 계약서가 증거로 제시되지 않았다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법학 교과서에 따르면 “계약”의 본질은 “의사표시의 합치”이며 “계약서”는 단지 그 “증거”에 불과하다. 다음 상황을 보자. 한국정신대연구소가 발간한 ‘중국으로 끌려간 조선인 군위안부들 2’(한울, 2003년)에서 인용한다. 배준철(질문자): “그러면 그 집도 돈을 얼마 받고 간 거에요?” 500원 받구 2년 기한하고 갔어요. 500원은 어머니 아버지한테 드리고......이렇게 하구선 있으면 집이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또 다른 데로 가야 또 돈을 받아서 어머니 아버지를 드려야지(하고 생각했어). 나는 이젠 촌에 안 있갔오. 증언자는 이미 음식점에서 일했던 매춘부로 일한 경력이 있다. 그녀는 오빠로부터 결혼하라는 말을 듣고도 오히려 다시 돈을 벌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을 찾아나선다. 그래가지구 박가라는 사람한테, 내가 또 박천을 찾아 올라갔지......그래 어떤 여관에 갔는데 “어디서 색시 사러 왔는데, 여기 어디메 있소?”하니까는 “저기 저 여관인데, 저기 저 중국에서 색시 사러 왔답니다.